아들은 자동차를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 각종 자동차 장난감이 많이 있다. 꼬마버스 타요, 레고블록 자동차, 미니어처 자동차, 트럭, 붕붕카, 자동차 앞 머리만 따온 장난감, 타는 자동차까지. 온종일 자동차를 굴리고 바퀴가 굴러가는 것을 관찰한다. 어린이집 원장님은 농담으로 아들이 커서 기아 회장님 되겠다고 말씀하셨다.
어린이집 등원과 하원할 때 주차장에서 나오는 차를 보면 웃으면서 옹알이를 한다.
"자동차가 그렇게 좋아?"
그럼 아들은 활짝 웃는 얼굴로 나를 본다.
자동차 장난감 중에 25년, 아니 30년 가까이 된 자동차가 있다. 친정아버지께서 살아계실 적에 현대자동차에서 근무한 적이 있으셨는데, 그때 엘란트라랑 엑센트 미니어처를 회사에서 만들어 사원들에게 나눠준 적이 있었다. 그중 빨간색 엑센트는 어디로 간지 없고 파란색 엘란트라만 남아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아들은 그 장난감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장난감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문이 열리는 것이 거의 없고 모양만 있을 뿐인데, 엘란트라 장난감 자동차는 자동차 회사에서 만든 미니카답게 묵직하니 문도 열리고 안에 핸들도 있으며 트렁크까지 열렸던 것이다. 엘란트라는 종종 바퀴 축에서 바퀴가 빠졌다. 그렇지만 바퀴를 끼우면 되었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어느 날 엘란트라 바퀴축이 휘어졌다. 그래서 바퀴를 끼워도 잘 굴러가지를 않았다. 아들은 굴러가지 않는 자동차를 두고 한참 굴려댔다.
"어어, 어어(옹알이)."
"바퀴축이 휘어져서 굴러가지 않는 거야. 이제 바퀴축 못쓰게 되었으니 버리자~"
나는 바퀴축과 바퀴를 휴지통에 버렸다.
그런데 아들은 휴지통에서 용케 그걸 찾아내서 다시 들고 왔다. 그리고는 축 넣는 구멍에 맞춰 끼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아직 20개월인 아들은 그걸 끼울 능력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화가 났는지 던져버렸다.
다음날, 엘란트라 바퀴가 없는 채로 아들은 자동차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동차의 역할이 무엇인가? 바퀴가 굴러가서 목적지까지 가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아들이 굴러가지 않아서 시시해져 결국은 가지고 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은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장난감일지라도 여전히 파란 엘란트라 자동차를 좋아했다. 굴러가지 않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장난감일지라도 아들한테는 최애 장난감이었던 것이다. 아들에게 자동차가 굴러가는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바로 그 자동차 자체를 사랑했던 것이다.
20개월 아들에게서 깨달은 바가 있다. 정해진 역할에서 벗어날지라도 무엇이든지 다 가치가 있다고. 나 역시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는 못 해내고 있지만 아들은 그런 엄마라도 항상 좋아해 주고 사랑해 준다는 거. 남편도 마찬가지다. 아내로서 강박장애가 있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도 이상하다고 편견을 가지고 바라봐주기보다 "나는 은진이 이상하게 본 적 없어."라고 나 자체를 사랑해 주었다.
반대로 나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에 얼마나 그 자체로 바라봐주고 애정을 쏟았던가? 나는 그런 물건에 잘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실용성, 효율성을 추구하는 나는 물건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가차 없이 버렸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좀 다르게 사물을 바라볼 것 같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할지라도 다른 쓰임을 발견하고 아껴주면 나에게 또 다른 의미가 될 수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