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어느 날, 시내에 사람들이 많다. 나는 어머니한테 어린아이마냥 붙어서 거리를 걷고 있다. 알록달록 벽돌 바닥이 보이고 그 위에 다른 이의 침들이 덮여있다. 나는 바닥을 보며 그것들을 피해 걷고 있다. 앞에서 남자가 다가온다. 그를 피해 어머니 옆에 더욱 바짝 붙어 걷는다. 그러면 어머니는 보디가드처럼 나의 어깨를 감싸고 같이 발맞추어 걸으셨다.
나는 17살의 강박장애 환자다. 이성에 대한 시선 의식, 이성이 나를 해칠 것만 같은 불안감, 타액에 대한 민감함 등이 나의 강박장애 증상이다. 모두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주 많이 불편한 요소이다.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차라리 팔이 부러지거나 독감이거나 어디 다친 것이라면 좋겠다. 또는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헐떡이는 것으로 자주 묘사되는 공황장애라면 사람들이 이해해 줄까. 강박장애는 각종 미디어에서 우스꽝스럽게 표현되곤 한다. 장갑을 끼고 버스 손잡이를 만지는 모습, 홀수가 아니면 불안한 모습, 특정 색의 벽돌 바닥만 밟는 모습, 불을 껐는지 몇 번이고 확인하는 모습 등 예민한 성미를 가진 사람으로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강박장애는 범위가 매우 넓다. 청결, 확인에서부터 종교에 이르기까지 스스로가 조절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부적절한 사고나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어떤 선생님이 나에게 귓속말로 말하며 성희롱 했다. 귓속말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다만 귓가를 스치는 입김의 불쾌함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을 뿐. 그전까지는 남자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 사건 이후로 남성에 대한 불안감이 생겼다. 그리고 이는 타액에 대한 민감함으로 작용하였다. 나의 경우 타액(침, 정액 등)에 아주 민감해서 거리를 잘 걷지 못했다. 땅만 보고 걸었다. 길바닥에 1cm 크기의 하얀 점만 보여도 정액이 말라붙은 것은 아닐까 하며 피해 갔고, 밟기라도 한 날이면 신발을 씻거나 버렸다. 남자 선생님이 다가와서 책상에 기대면 책상이 찝찝해서 쉬는 시간인 10분 동안 손을 씻었고, 남자 선생님이 '수학의 정석' 책에 기대면 그 책을 버렸다. 남자와 부딪히면 옷을 입고 있는데도 마치 성기가 부딪힌 것처럼 찝찝해하였다. 또한 거리를 걸으면 누군가 나를 해칠 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할 수 있는 건 내가 장애물로 생각하는 타액과 남자를 피하면서 걷기, 아무것도 하지 않기였다. 처음에는 내가 왜 그러는지 몰라서 헤매다가 신경정신과(구 정신건강의학과 명칭) 진료를 받고 나서 강박장애임을 알았다. 10대인지라 강박장애가 뭔지도 몰랐다. 의사 선생님이 매주 오라고 하셔서 매주 병원에 들렀고, 약을 먹으라고 하셔서 약을 먹었다. 강박장애를 겪다 보니 우울증을 같이 경험하였다. 강박과 우울이 함께 몰려와 일상생활을 진흙탕으로 만들어 놨다. 매주 갈 때마다 약의 개수가 늘어갔고, 용량도 늘어갔다. 나는 학교에 등교해서 하교할 때까지 약을 입에 꾸역꾸역 넣으며 하루를 버텨냈다.
모순적이게도 성적 상상은 커져갔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관계하는 상상을 반복적으로 했는데, 현실에서는 남자들에게 적대적이었다. (반복적으로 성적 상상을 하는 것도 강박사고에 포함된다.) 10대인 난 남자 선생님에게 반항적이었다. 수업시간에 말도 없이 화장실에 가버리거나 남자 선생님의 질문에 쌀쌀맞게 대답하곤 했다. 한 선생님은 내가 싫으냐는 말씀까지 하셨다. 고등학교 3학년 때가 기억난다. 담임 선생님께서 지각한 사람들을 쭉 세워놓고 혼내셨는데 남자들 사이에 끼인 나는 벌벌 떨었다. 그리고 담임선생님에게 나의 병을 들켰다. 선생님은 나를 부르셨고, 나는 이제껏 있었던 일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남자인 담임선생님은 나를 안타까워하셨고 한 번씩 상담하며 나를 챙겨주셨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지낸다. 은사님께 항상 감사함을 느낀다.
2005년 고등학교 1학년 때 발현된 강박장애는 대학교에 들어가서 완치가 되었지만, 19년이 지난 2024년 아이를 낳으며 재발했다. 앞으로 이야기할 내용은 이제껏 세상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나의 고백이자 강박장애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바라는 외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