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증상(강박장애의 시작 편 참고)이 강박장애임을 알게 된 후, 매주 토요일마다 신경정신과(구 명칭) 병원에 방문했다. 평일에는 학교 수업과 야간자율학습으로 방문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는 곳이 병원과 멀리 떨어져 있어 아버지께서 토요일마다 시내로 데려다주셨는데, 무시무시한 대기시간으로 인하여 대기하면서 졸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면 21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은 늘 대기시간이 길다. 물론 의사 선생님의 진료 스타일에 따라 진료시간은 차이가 나지만 기본적으로 상담이 들어가기 때문에 다른 과에 비해 진료 시간이 긴 편이다.
약만 타서 가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21년 전 나를 진료해 주신 의사 선생님은 일주일 동안에 있었던 기억나는 모든 증상들을 말하게 하셨다.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에 일주일 동안 있었던 증상들을 곱씹으며 말할 순서를 머릿속으로 그렸다. 그 당시에는 청소년 환자는 많이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 20대에서 50대까지의 연령대가 많이 방문한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나는 손 많이 씻는 아이로 각인되어 있었다. 내가 증상을 말하면 어떤 친구는 " 너의 의지가 약해서 그런 것 아니야?"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 말이 가슴을 후벼 팠지만 딱히 반론할 수도 없었다. 나의 잘못이고 치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이상한 아이라고, 정상적이지 못한 아이라고 생각했기에 신경정신과에 다니는 것을 말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왜 감기로 내과에 방문하거나 눈이 아파 안과에 방문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어 신경정신과를 방문하는 것은 말하기 힘들었는지.
물론 내 곁에 이해를 못 하는 친구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옆에서 팔을 감싸주며 내가 남자들을 잘 피해 갈 수 있게 도와준 친구, 낫기를 응원한다는 친구, 내가 손을 씻거나 남과 다른 행동을 해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았던 친구, 힘들다고 울며 말하니 그저 묵묵히 안아주며 토닥이던 친구. 이 친구들 덕분에 지난했던 3년 간의 학창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
하루는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정신과 약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친척 중 한 분이 무슨 약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당황해하시며 그냥 몸이 좀 안 좋아서 먹는 약이라고 했다. 어린 나는 '우리 부모님은 내가 창피한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못내 섭섭해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아버지와 둘이서 집에서 점심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그날따라 기분이 좋지 않으셨다. 나는 평소와 같이 아버지를 피해 돌아가서 앉았다. 아버지는 “하, 그만 좀 해.”라고 하셨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없으면 울고 불고 아버지만 졸졸 따라다니던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강박장애가 생기자 아버지를 피해 다녔다. 나에게 피해야 하는 대상에는 남자인 아버지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매주 병원에 데려다주며 아무 말도 없으셨던 아버지인데, 사실 아버지는 당황스럽고 섭섭하셨을 것이다. 그날 나는 아버지에게 내 병을 이해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슬펐다. 그러나 지금은 이해한다. 오랜 투병은 그 병이 무엇이든 간에 가족들을 지치게 만들고, 직접 환자의 상황이 되어보지 못하면 100%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버지도 딸을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하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섭섭한 마음에 불쑥 튀어나온 본심은 서로에게 상처를 안겼다.
매주 약을 타가고 의사 선생님의 수기로 작성하는 진료기록은 점점 쌓여가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때때로 "불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만져보면 어떨까요?"라고 되물으셨지만 도전할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아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해 본 적이 없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 그것이 노출요법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나도 모르게 노출요법이 행해져 증상이 좋아졌다. 이 부분은 다음 편에서 얘기하겠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러갔고, 2008학년도 수능을 치렀다. 신경정신과 병원에서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나를 위해 수능 응원 선물을 준비해 주셨다. 지금이라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간호사와 환자는 사무적인 관계가 보통이지만 그땐 그랬다. 주마다 방문하는 오랜 단골환자에게 선물을 주기도 하는 나름 정 있는 관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이 아닌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자 아버지가 병원을 데려다주시는 일은 없어졌다. 아버지는 가끔 물으셨다. "이제 괜찮은 거지?"라고. 그럼 장녀인 나는 부모님을 걱정시켜 드리는 것이 싫어서 "응. 괜찮아."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나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고 부산의 신경정신과를 방문하기 위해 기존에 다니던 진단서와 진료기록 사본을 발급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병원을 고르는 한 가지 팁을 주셨다.
“너무 연세가 드신 선생님을 만나는 것보다는 40대의 선생님을 만나도록 하세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정신과 약은 조금씩 개선되기 때문에 최신의 동향을 알고 계신 젊은 선생님을 만나라는 의미 같다. 3년간의 진료기록은 A4용지 봉투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내가 먹던 약이 플루옥세틴 맥시멈 용량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음 편에서는 20대 초반 대학생활의 강박장애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