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대학은 갈꺼가?”
아버지께서 고등학교 3학년 때 하신 말씀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그래도 공부를 좀 했는데, 2학년이 되고 강박장애와 우울증이 더 심해져서 공부를 손에 놓게 되었다. 점점 성적은 떨어졌고 일상생활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었다. 야자시간이 되면 자거나 낙서를 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아버지 말을 곰곰히 생각해봤다. 나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대학이 눈에 들어올리 없었지만, 남들 다 가는 대학을 안 간다니 그것도 억울했다(단순한 나다). 결국 수시로 3군데 대학에 원서를 넣었고, 운 좋게도 부산의 한 공과대학에 합격했다. 그때까지도 난 몰랐다. 공과대학은 남자로 득실거린다는 것을.
2008년도 대학교 1학년 시절,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자들과 있는 것이 익숙해질 수 밖에 없었다.
(휴학할 생각이나 학교를 그만둘 생각조차 하지 못한 나의 성격이 융통성 없긴 하지만 이런 성격으로 인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 무사히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남자와 여자친구들이 섞인 무리 속에서 나는 수업을 듣고 밥을 먹었다. 내친김에 바둑동아리에도 가입했다. 그런데 바둑동아리에도 남자들이 대다수였다. 그 곳에서 선배들이 밥 사주고 당구 가르쳐주고 같이 웹툰보고 게임하면서 이성에 대한 시선 의식, 불안감을 조금씩 떨쳐낼 수 있었다.
남자가 가까이 있어서 불안할 때는 '괜찮아. 아무 일 없어.'하고 속으로 되뇌고 다른 것에 집중했다. 그동안 신경정신과를 다니며 약을 먹긴 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불편한 상황을 버텨보고 손 씻는 것을 참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주제로 생각을 전환하는 행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강박증상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처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노출요법이 행해진 것이다.
그 때 사람 구실도 못할 것 같던 내가 거리를 걸어다니는 것이 두렵지 않고 남자와 부딪히는 것이 불안하지 않는 일상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소중했다. 강박장애로 인해 남들보다는 조금 빨리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깨달았다.
대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연애를 했다. 내가 연애라니! 지금 생각해도 기적에 가깝다. 그리고 그 연애로 인해 나는 이성에 대한 불안을 완전히 떨쳐낼 수 있었다. 그 사람은 같은 학교의 4살 많은 다른 과 남학생이었는데, 셔틀버스를 타는 곳에서 나를 보고 반했다고 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나의 증상을 말해주었고, 그 사람은 괜찮다며 안심시켜 주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는다는 것이 금기시되었던 그때의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봐주기보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그에게 나는 고마움을 느꼈다. 이성에 대한 비합리적이고 부적절한 생각을 연애를 통해 조금씩 바로잡아 갔고, 대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는 이성에 대한 오염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헤어지기는 하였지만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도와준 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강박증상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 24살,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자친구였던 남편에게도 지난 날 있었던 강박장애와 우울증에 대해 고백하였는데, 남편은 그럴 수도 있다며 이해해주었다.
교직이수를 한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임용고사를 준비했고 26살 합격해서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삶은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나에게는 해결되지 못한 '우울증'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