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안부를 묻다

'대학시절의 강박장애' 번외 편

by 은진

"······."

"여보세요?"

"······. 어, 여보세요?"

"K선배 맞죠?"

"응. 은진아. 어, 진짜 오래간만이다."


나는 K선배에게 10년 만에 전화를 걸었다. K선배는 오래간만의 연락에 당황스러운 듯했다.


"어쩐 일이야?"

"그냥 안부 차 전화드렸어요. 뭐해요?"

"일하고 어."

"요새 무슨 일 하세요?"

"복사기랑 무기기 관리하는 사업 조그맣게 하고 있어."

"네. 전화하는데 용기가 필요해서 이제 전화했어요."

"전화하는데 용기씩이나 필요해? 전화 줘서 너무 반갑다."


선배와 나는 일상 얘기를 했다. 아기는 잘 크고 있는지, 두 돌이 안되었다고 하자 아직 그 시기면 힘들 거라는 둥 아기에 대해서 대화가 흘러갔다. 그리고 거처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주제가 넘어갔다. 선배는 계속 경남 지역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학교를 계속 옮겨 다녀야 해서 경북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여행 가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래. 여유도 가지고 해야지~"


선배는 내가 20살 때와 똑같았다. 차분한 음성, 꾸밈없는 백한 말들. 전화했을 때 혹시 반기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선배. 사실 할 말이 있어서 전화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개인적으로 힘들었어요. 근데 선배가 밥 사주고 당구 가르쳐주고, 바둑 가르쳐주고, 같이 PC방 가서 웹툰보고. 그때 참 고마웠어요. 한 번씩 생각났는데 그걸 표현하려니 용기가 선뜻 나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생각난 김에 전화했어요."

"그래. 그때 재미있었지. 네가 그렇게 말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감동인데! 근데 너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선배는 나한테 무슨 일 있는 거 아니냐고 두 번이나 물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다고 했다. 그냥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선배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날 걱정했다. 그런 선배가 고마웠다. 우리는 앞으로 종종 전화하자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종료했다.


브런치에 전 직장동료한테 전화 고맙다는 현을 서 글쓴이가 감동했다는 내용의 글을 보고 결심했다.

'아, 내가 살아있을 때 다른 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조금씩 표현해 보자.'

그래서 나도 상대방도 조금은 따뜻한 이 된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다.


강박장애 때문에 힘들었는데 선배 덕분에 도움이 되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고맙다고만 했다. 선배는 왜 힘들었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런 선배가 또 고마웠다.


나는 오래전부터 마음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에 서툴렀다. 친구에게 강박장애를 털어놨을 때 친구가 말했다.


"너는 다른 사람 얘기하듯이 말하는 것 같아."


인정한다. 내 브런치 글들은 감정이 별로 실려있지 않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잘만 글도 말랑말랑하게 쓰는데 나는 글조차도 덤덤히 고백할 뿐이다.


최근에 만난 직장동료도 나에게 말했다.


"쌤은 일도 자기 마음도 정리가 다 끝나고 나면 그때 말해. 일도 혼자서 다 해결하려고 하고 마음도 표현 안 하고. 꽁꽁 쌓아두다가 아픈 거야. 힘들면 미리 표현하고 그래."


그때의 난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상대방을 생각해서 대부분의 일을 내가 알아서 해결하려고 했었다. 강박증상과 우울증이 있을 때도 말하면 왠지 징징대는 것 같아서, 듣는 상대방이 부담스러울까 봐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대방은 좀처럼 말하지 않는 내가 서운했나 보다.


30대 중후반이 되고 두 번째 강박장애를 겪으면서 조금은 나도 바뀌었다. 나를 조금씩 드러내기로. 감정이 차올라 넘치기 전에 조금씩 따라내기로.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서로의 체온을 나눠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오늘 살면서 고마웠던 사람에게 그 마음을 표현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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