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때 강박장애를 극복하고 임용고사에 합격해서 교사가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장밋빛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착각하고 있었다. 강박장애는 주로 우울증을 동반하고 나는 그것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을.
교사가 되고 나서 처음에는 사명감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냈다. 서툴렀기에 더 열심히 해야만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였다. 학생이 대들기라도 하거나 학부모 민원을 상대하는 날이면 '내가 교사 자질이 없는 걸까?'라며 내 탓을 하였다.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4년 하고 만으로 27살이 되던 해 결혼을 했다. 그러나 결혼은 연애와는 달랐다. 연애할 때는 우리가 서로 비슷하네?라고 생각했었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우리가 왜 이렇게 다르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치 남편은 한국말하는 다른 세계 사람 같았다. 20대의 미성숙했던 나는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하면서 말하는 법을 몰랐다. 그래서 서운하거나 의견이 다르면 남편을 긁어 툭하면 싸웠다. 학교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집에 오면 마음이 좀 편해야 하는데,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겠다. 집에 왔는데 서로 성질을 긁어서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폭발하는 것으로. 무엇이 되었든 간에 학교와 가정에서 나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그래서 알코올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맥주로 가볍게 시작했다가 그다음에는 레모네이드를 사 와서 소주에 섞어 칵테일처럼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면 헤롱헤롱한 정신으로 잠들곤 했다.
그리고 2021년 대장암을 앓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불효자식이었던 나는 1년간 퇴근하고 나면 방구석에서 불을 끄고 혼자 조용히 울었다. 그러면 남편은 방문을 열어서 나를 지켜보곤 조용히 문을 닫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만의 애도 방식이었다. 그렇게 교사생활을 하며 느낀 회의감과 남편과의 불화, 아버지의 별세에 깊은 우울감에 빠지게 되었다. 우울감은 무쾌감증으로 나타났다. 무엇을 해도 재밌지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웃기는 상황에서 웃기지 않는데, 웃는 척 가면을 쓰기도 했다.
왜 나는 열심히 할수록 더 힘들어질까?를 생각하던 찰나 학창 시절부터 지속된 내 안의 깊은 우울감과 현재의 감정들이 뒤섞여 이를 소화하지 못한 채로 덮어두고 지냈던 건 아닐까 하고 되돌아보게 되었다. 강박장애나 우울증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부족을 원인으로 꼽고 있는데 나의 뇌는 이놈의 세로토닌이 부족해서 이 모양 이 꼴인 걸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약물과 상담의 도움을 받고자 정신건강의학과(현 명칭)를 방문했다.
"무엇을 할 때 기분이 좋으세요?"
"수영을 할 때요. 물속에서 평온함을 느껴요."
의사 선생님의 상담은 모나고 상처받은 내 마음을 되돌아보게 하셨다. 내가 무엇을 하면 즐거운지, 어떤 행동을 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지 '나'를 '내'가 알아갈 수 있도록 하셨다.
"스스로를 격려해 주세요."
그 말에 나는 눈물이 났다. 왜 주위 사람들, 가족이나 학생은 챙기면서 나는 돌보지 않고 스스로를 비난하며 지냈는가.
우울감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으며 차차 나아져갔다.
나는 감히 말한다. 지독한 우울감에 빠진 분들은 무조건 정신건강의학과로 달려가셔라. 때론 의사 선생님의 스타일이 나와 맞지 않아서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다른 정신건강의학과로 가라. 그렇게 나와 맞는 선생님을 찾아라. 원래 인간관계가 나와 맞는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이지 않은가. 그렇게 나와 맞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라포를 형성하게 되면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 기꺼이 되어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