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 강박장애의 재발

by 은진

결혼하고 나서 처음에는 신혼을 즐기자고 생각하고 따로 임신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불안해진 우리 부부는 난임병원에 방문해 몇 번의 시험관 시술을 하였고, 감사하게도 임신에 성공하였다.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고 있던 터라 임신 후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였는데, 의사 선생님은 약물 대신 포스트잇의 처방전을 수기로 적어 주셨다.


- 처방전 -
내 입을 즐겁게 하는 음식을 음미하며 드세요.


의사 선생님께서는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것 대신 언제든지 와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상담하러 오라고 하셨다. 더불어 지금은 깊게 생각하고 고민하지 말고, 당장 맛있는 거, 행복하고 재밌는 것만 하라고 하셨다.


병원을 갔다 온 날, 남편과 바로 냉면집에 방문했다. 남편은 라면 먹듯이 후루룩 냉면을 먹어치웠다. 그가 다 먹었을 때, 나는 반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남의 편이 아내가 먹고 있으면 먹는 속도 좀 맞춰주면 안 되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이 음식을 음미하면서 먹으래."

나는 짧게 말하고는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먹었다. 시원하면서 새콤달콤한 냉면 국물과 쫄깃한 면발을 느끼며 먹다 보니 후루룩 먹던 냉면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맛있는 것을 먹는데 집중하다 보니 우울한 기분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임신하고 먹는 것, 바르는 것 등 태아의 안위를 걱정하다 보니 임신 초기에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는 일은 줄었다. 그러나 인생이란 게 어디 쉽게만 흘러가는가(늘 쉽지 않았지만).




2년 전 일이었다. 셀프로 안방 화장실을 줄눈작업했는데, 실패해서 페인트 제거제로 줄눈을 제거하였다. 그런데 냄새가 너무 독해서 몇 번을 화장실 청소해도 냄새가 전부 가시지를 않았다. 결국 안방을 사용하기가 꺼려져 작은방을 사용했다. 알고 보니 페인트 제거제는 산업용으로 나와 가정에서 쓰기에는 부적합했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 나서부터 그 유해물질이 태아에게 미칠까 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환기도 시켜봤지만 임신하고 후각이 예민해진 터라 나에게는 특이한 화학냄새가 자꾸만 났다. 그리고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찾아보며 생식독성이라던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반복적으로 읽어보고는 더욱 불안에 떨었다. 때때로 가만히 있다가도 스스로를 자책하며 눈물이 주르륵 흐르거나 남편에게 불안감을 말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는 했다.


불안감이 고조되자 결국은 남편에게 화장실을 모두 부수고 새로 공사를 하자고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이사를 갈 계획이긴 했지만 언제 집이 팔릴지 모를 노릇이라, 아기와 이 집에서는 불안해서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집을 판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집주인에게 냄새나는 화장실을 판다는 게 양심에 찔렸다. 남편은 착하게도 임신한 아내의 말을 전적으로 수용해 주었다.


화장실 견적을 내러 온 업자는 크게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멀쩡한 화장실인데 왜 공사하지?라는 눈빛을 나는 느꼈다. 보통 화장실 리모델링은 타일 위에 다시 타일을 덮는 덧방을 하지만 나는 모조리 싹 뜯고 방수공사부터 시작해서 다시 해달라고 했다. 업자에게 페인트 제거제를 사용해서 그 화학물질이 타일 밑으로 들어가 계속 냄새가 조금씩 올라오는 것 같다고, 그래서 임신했는데 불안해서 공사를 하고 싶다고 솔직히 말했다. 업자는 알겠다고 했다. 견적은 500만 원이 나왔는데, 주변에서는 나의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하고 집 팔면 그만인데 왜 공사를 하냐고 그랬다. 하지만 그때 나는 돈보다 불안감을 해소하는 게 먼저였기에 500만 원이 들더라도 냄새만 없앨 수 있다면 그렇게 하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화장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친정으로 피신해 있었다.


친정 베란다에는 작업하고 남은 페인트가 있었는데, 뚜껑이 닫혀있었다. 그래서 냄새도 나지 않았는데, 나는 그것마저 불안하기에 이르렀다.

'아, 이건 보통 산모들이 가지는 태아에 대한 걱정의 범위를 넘어섰어.'


지나친 불안감, 부적절한 사고의 반복, 그리고 그러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물질 관련 자료를 찾아보는 행동의 반복. 나는 20년 전 나를 옥죄던 강박장애가 재발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친정에 가 있는 동안 20년 전 나를 치료해 주셨던 의사 선생님을 찾아갔다.


"물질과 관련한 자료를 안 찾아보면 어떨까요?"

"그게 안 돼요. 자꾸 찾아보고 불안해해요."

"그럼 애 안 낳을 건가요?"


여자 의사 선생님이시기에 가능한 질문이었다. 애를 어쨌거나 낳을 건데, 자꾸 불안해하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그런 의사 선생님의 단호한 모습은 내가 진료를 받아왔던 것 중 처음이었다.


"그건 아니에요. 다만 너무 불안해서……."

"아무래도 산부인과와 정신건강의학과가 연계된 큰 병원으로 전원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화장실 공사가 끝나고 다시 살던 곳으로 왔지만 불안감은 가시질 않았다. 혹시 화학물질이 남아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안방 화장실에 들어가기가 꺼려졌다.

‘아, 나 지금 정상 아니구나.’


하지만 전원은 하지 않았다. 전원 하게 되면 분명 정신과 약을 먹게 될 테고, 약물이 태아에 영향을 미칠까봐 그것마저도 걱정이 되었다.


생각보다 집이 일찍 팔려서 임신한 채로 이사를 하였다. 이사와 출산준비로 지친 나는 기존에 다니던 병원에 방문하고 이제껏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하였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포스트잇에 수기로 처방을 또 내려주셨다.


내가 나를 믿어주자


한 가지에 빠져 생각하지 말고 다각도로 생각하자. 그리고 "수고했어."라고 나 자신을 위로하고 내가 나를 믿어주라는 처방을 받았다.

보통 강박은 나를 믿어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의 경우, 화장실 공사를 한 나를 믿지 못했다. 확인강박을 예로 들자면 가스밸브를 잠그고 현관문을 잠갔는데, 불안해서 다시 몇 번이고 확인하는 경우가 있다. 이건 가스밸브를 잠근 나를, 현관문을 잠근 나를 믿지 못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은 내가 나를 믿어주라고 하신 것이다.


임신하고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제발 우리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기만 해 주세요.'였다. 보통 산모들이 하는 생각이지만 화학물질에 노출된 건 아닐까, 2년 전에 나는 왜 그 화학물질을 만졌을까 등등 끊임없이 자책하며 불안감이 가시지를 않았기에 차라리 빨리 애를 낳아 건강한 걸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2024년 5월, 나는 건강한 아기를 출산했다. 하지만 출산의 기쁨도 잠시, 강박장애가 내 삶을 갉아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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