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수유와 강박장애 (1)

by 은진

출산이 다다를 무렵 새집으로 이사했다. 그런데 이사하고 보니 싱크대 하부장이 물에 불어 시트지가 터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살면서 인테리어를 한다는 게 께름칙했지만, 필름작업이 뭔 큰일이야 있겠냐고 생각하고는 싱크대 장과 냉장고 장을 필름 작업했다. 그리고 다음날 곧바로 후회하였다. 그나마 냄새가 안 난다는 수성 프라이머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코는 휘발성 화학물질의 퀴퀴한 냄새를 바로 알아챘다. 그전 집에서도 화학물질 때문에 걱정했는데, 새 집에서도 화학물질 냄새 때문에 불안해했다.


태아가 걱정된 나는 환기시킨다고 집안에 있는 문을 모조리 열어놓고 가까이 있는 시댁으로 피신했다. 출산준비도 제대로 못하고 진통이 와서 아기를 낳게 되었는데, 산후조리원에 있는 동안 급하게 아기침대, 기저귀갈이대, 기저귀, 젖병 소독기 등을 시댁으로 보냈다. 산후조리원이 모유수유에 적합한 환경이 아님이 깨닫고(모유수유에 집착한 이 시대의 별종 편 참고) 중간에 시어머니댁으로 왔다. 한 달간은 아이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 달을 환기시키고 냄새가 빠졌겠다 싶었을 때 아이를 잠시 시댁에 맡기고 새 집으로 와서 집 정리를 했다. 6월이라 송진가루가 집 안 곳곳에 퍼져있었다.


친정어머니가 오셔서 청소와 정리정돈을 도와주셨는데, 필름 작업 부분이 찝찝했던 나는 어머니에게 싱크대장과 냉장고장을 두 번이나 닦아달라고 부탁드렸다. 어머니는 뭐라고 하시면서도 다 닦아주셨다. 그리고 갓난아이를 데리고 새 집으로 왔다. 이제 모든 불안으로부터 해결되었다고 생각한 나는 곧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불안은 내 삶에 깊이 뿌리내려 삶을 흔들고 있었다.




싱크대장과 냉장고장을 닦았음에도 찝찝해서 만질 수가 없았다. 마치 필름을 붙이기 위해 발랐던 프라이머가 새어 나와 내 손에 묻는 느낌이었다. 싱크대장은 매일 사용하는데, 사용할 때마다 나는 손을 씻곤 했다.


플라스틱 제품을 사면 거스러미를 발견할 수 있다. 성형과정에서 깔끔하게 제조되지 못하고 붙어있는 플라스틱 조각들. 그게 보이면 불안했다.


'플라스틱 조각이 날려서 아이 입속에, 코 속에 들어가면 어쩌지?'


플라스틱 조각이 보이거나 먼지가 날린 날이면 남편이 출근한 시간인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청소했다. 먼저 청소기로 바닥을 민다. 그리고 걸레에 물을 묻혀서 바닥을 닦은 다음, 소파를 들어내고 소파 밑에까지 다 닦는다. 소파 위에 먼지가 묻어있을 수도 있으니 그 부분도 닦는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 나는 스마트폰의 불빛으로 넓은 바닥을 비춰본다. 그러면 티끌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부분을 박박 닦고 또 닦는다. 한 치의 티끌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동안 아이는 뭐 하냐고? 모빌만 보고 있다.

엄마와 교류가 없다. 이게 바로 주객이 전도된 현상이다. 아이는 모빌만 바라보다가 잠들거나 울다 지쳐있으면 그때서야 모유나 분유를 줬다.


그런데 어이없는 건 내가 육아휴직 하기 전에 학교에서 3D 프린터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플라스틱이 녹아 모델링한 형상대로 프린팅 되고 있는 모습을 수도 없이 지켜봤던 나인데, 후처리 한다고 거스러미 제거나 플라스틱 조각을 깎아냈던 나인데 지금은 플라스틱의 미세한 조각을 집안에 들인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또 한 번은 남편이 오래된 건전지를 책장 위에 올려놓았다. 건전지가 오래되면 하얀 가루가 생기는데 그 가루의 정체를 찾아보고는 기겁을 했다. 그 가루는 수산화칼륨이며 섭취하면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가루가 날려서 혹시 아이가 섭취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나는 청소기로 먼저 수산화칼륨 가루를 흡입한 뒤 걸레로 책장 위를 닦았다. 그래도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았다. 가루가 밑으로 떨어진 거라면? 나는 건전지를 놔둔 책장 밑의 칸에 있는 책을 모조리 갖다 버렸다. 고등학교 때의 증상이 다시금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옆 칸의 책에 옮겨갈 수도 있다는 찝찝함에 책들을 펼쳐서 다 닦기에 이르렀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책을 갖다 버리고 싶었지만 그건 비합리적인 생각임을 알기에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책과 책장을 몇 시간이고 계속 닦아대는 강박행동을 반복했다. 하지만 불안은 가시지를 않았고 책장 위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았다.


한 날은 남편이 에어컨 리모컨을 건전지를 놔뒀던 책장 위에 두었다. 나는 이미 다 청소가 되었고 수도 없이 닦아서 가루는 없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에어컨 리모컨을 만지면 마치 수산화칼륨 가루를 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손을 씻기 일쑤였다. 여름이라서 에어컨을 안 틀 수도 없던 나는 남편에게 부탁했다.


"내가 강박장애가 있어서 당신이 건전지를 놔뒀던 책장 위를 만지는 게 불안해. 그 위에 리모컨을 올려두는 것도 싫고. 다른 건 부탁 안 할 테니 제발 리모컨만 다른 곳에 놔둬줘."


남편은 알겠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도 사람인지라 까먹어서 종종 책장 위에 리모컨을 놔두곤 했다. 그럼 나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리모컨 하나 신경 써서 올려놓을 수 없는 건가. 하지만 이건 남편 잘못이 아니라 내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편 탓을 하고 있었다. 하얀 가루가 리모컨에 묻었을 것 같다는 비합리적인 생각 때문에 결국은 리모컨도 버리고 새 리모컨을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쯤 되니 남편도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하, 뭐만 하면 전부 다 갖다 버려. 필요한 건데."


또 혼합수유(모유+분유)를 하고 있었기에 젖병의 젖꼭지가 찝찝한 나는 젖꼭지도 열탕소독하고 또 열탕소독했다.


하루 종일 청소랑 열탕소독만 하다 보니 단기간 내에 체중이 8kg가 빠졌다.


치료를 받아볼 생각도 하였지만 나는 모유수유를 하고 있었다(모유수유가 뭐라고). 강박장애 약을 먹게 되면 모유수유를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쉽사리 치료를 받지 못하고 계속 미루고만 있었다. 엄마가 건강해야 아이도 행복한데 나는 그 진리를 잊고 모유수유라는 목표에만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아니, 이건 목표가 아니라 집착이었다. 초보엄마인 나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모유수유든 분유수유든 그건 중요하지 않음을. 중요한 건 아이를 한 번 더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표현하는 것임을 그땐 몰랐다. 수유 방법은 중요하지 않음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바람에 치료시기가 늦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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