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수유에 집착한 이 시대의 별종

아들아, 젖먹던 힘까지 내렴. 제~발!

by 은진

2024년 5월 용띠 아들을 낳았다. 출산 후 아이를 얻은 기쁨도 잠시, 하루가 지나자 젖이 돌기 시작했다. 산모라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유축기의 사용방법을 알려주며 유축하면 아기에게 먹일 테니 가져 다 달라고 말하다.


말 잘 듣는 나는 3시간마다 알람을 설정해 놓고 밤마다 유축을 해서 신생아실에 갖다주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가 젖을 물리면 되는 거 아냐?


모유수유에는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1. 젖병을 세척하고 소독하지 않아도 된다.

2. 외출할 때 짐이 거의 없다.

3. 분유는 모유를 따라 만든 것으로 아기에게는 모유가 완전식품이다.

4. 분유, 젖병 등을 사지 않아도 되어서 경제적으로 이득이다.


그때부터였다. 모유수유에 집착하게 된 게. 모자동실을 하여 젖을 물리며 남편에게 말했다.

"이렇게 처음부터 물려야 엄마와 합이 맞아져서 모유수유를 잘할 수 있대."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들은 젖을 잘 물지 않았다. 이미 힘들이지 않고도 쭉쭉 잘 나오는 젖병에 길들여져 있었다. 아들아. 너는 갓난아기 때부터 쉬운 걸 알고 있었구나. 그래, 사람이라면 누구나 쉬운 길로 가고 싶어 하지.


산후조리원에 들어가서도 나의 모유수유에 대한 집착은 계속되었다. 수유콜을 받으면 무조건 갔고, 잘 물지 않는 아들을 1시간이고 안고 있었다. 그러면 야속하게도 아들은 젖을 빨다가 꼭 잠들어버렸다. 냉장고에는 산모들의 유축한 모유가 시간별로 줄 세워져 있었는데, 모유량이 많은 산모의 젖병을 보면 나도 모르게 비교가 되어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산모들은 안다. 모유량이 많으면 은근히 자랑스럽다는 거. 그리고 모두가 모여서 소파에 앉아 젖을 물리고 있는 모습은 시간이 지나도 적응이 되지를 않았다. 결국 산후조리원은 모유수유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임을 깨닫고 나는 산후조리원을 중간에 나왔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천국 같은 산후조리원을 두고 왜 나와?"


새로 이사한 집은 정리가 덜 되어 들어갈 수가 없어서 산후조리를 시어머니댁에서 했다. 시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모유가 좋다. 분유 말고 모유 먹여라."

네. 저도 알고 있어요 어머니. 그때부터 아들과 나의 모유수유 합맞추기가 시작되었다. 새벽에 위의 옷을 벗고 아기도 벗긴 채 안아주는 캥거루 케어, 모유 먹다 자는 아이 깨우는 방법인 발바닥 간질이기, 물수건으로 적셔서 아기 얼굴 닦아주기 등 별의별 방법을 시도했다. 그래도 아들은 꿋꿋했다. 엄마의 노력에도 아들은 먹는 것보다 자는 걸 택했다. 가슴마사지 샵의 모유수유 코치도 세 군데서나 받았다. 가슴마사지 샵의 사장님은

"보통 단유하러 오는데 산모님은 양 늘리고 모유수유 코치받으러 오다니 요새 그런 사람 거의 못 봤어요."라고 얘기했다.


모유수유에 시도한 지 한 달째, 시어머니는 모유수유에 집착하는 내가 걱정이 되셨는지 말씀하셨다.

"요새 분유 잘 나온다더라. 산후도우미 하는 친구가 그러는데 다 분유 먹인다더라. 분유 먹여도 된다."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말했다.

"당신 힘든데 이제 분유 먹이자."

그럼 나는 남편을 째려보았다. 내가 얼마나 지금 노력하고 있는데 감히 그런 말을 해?


남편은 직장 동료들에게 말했다.

"아기가 모유를 잘 안 먹고 분유를 먹어."

"그럼 분유 먹여야지."

"분유 먹여도 잘 커~"

남편은 밤 10시 술에 취해 이 얘기를 그대로 전했다. 화가 난 나는 당시 아기가 먹을 수 있는 최대용량인 120ml의 분유를 태워서 남편에게 먹여보라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 아들은 엄마 젖꼭지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젖병을 빨지 않았다. 물론 먹다 잠드는 건 여전했지만.

나는 남편한테서 아들을 휙 뺏어서 젖을 물렸다. 아들은 젖을 먹다가 또 잠이 들었다.

"보라고. 우리 아들은 내 젖 좋아한단 말이야! 흑흑..." 나는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나의 모유수유에 관한 신념을 주위에서는 자꾸만 꺾고 있었다.


2차 영유아검진을 갔다. 그런데 1차 영유아검진에서 백분위수에서 체중 50퍼센트를 찍던 아이가 2차 영유아검진에서는 20퍼센트대를 기록했다. 그때 멘붕이 왔다.

'내 고집 때문에 아이가 먹다 자서 체중이 별로 안 늘었나?'

'내 욕심 때문에 아이가 모유도 적게 먹으면서 젖병도 못 빠는 아이로 만들었나?'

그때부터 눈물 나는 혼합수유를 시작했다. 아기체중계를 구해 아들에게 모유를 먹기 전과 후의 몸무게를 체크하여 대략적으로 모유를 먹은 양을 체크하고 분유로 보충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모유를 먹다가 여전히 잠들었고, 아이의 성장을 고려하여 결국은 분유를 먼저 먹였다. 그랬더니 아이는 이때까지 못 먹은 것을 다 먹기라도 하듯 1000ml 넘게 며칠을 먹었다. 그때 엄마로서의 자책과 후회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강박장애가 재발하고도 모유수유가 포기가 안되어 약 먹는 것을 미루자 의사 선생님께서는 약물이 모유수유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며 논문까지 찾아 보여주시며 치료를 권하셨다. 그리고 나의 웃픈 모유수유는 끝이 났다.


엄마가 되면 자식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고 보통 생각한다. 하지만 때론 주객이 전도되어 굳센 신념 속에서 아이가 다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말겠다는 욕심이, 내가 성공시키고야 말겠다는 욕심이 아이의 성장을 방해다.

모유수유 사건을 이후로 꼭 해야만 한다 라는 신념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대신 이런 상황 저런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함이 육아를 함에 있어 필요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포기할 줄 아는 용기 가져야 함을 다시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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