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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홍 Stanley Nov 26. 2018

2018년 11월 26일 오은 “먄약이라는 약”

‘만약’을 잘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현재, 지금 이순간만을 비라본다.


하나,

만약은 가끔씩 좋은 교훈을 주고

만약은 가끔식 휴식과 재미를 준다.

그리고, 시인의 말마따라,

“내가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이라는 말처럼

나를 항상 돌아보게 해주는,

그런 약이다.


만약이라는 약

                        오은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났더라면
지하철을 놓치지 않았더라면
바지에 커피를 쏟지 않았더라면
승강기 문을 급하게 닫지 않았더라면
 
내가
시인이 되지 않았다면
채우기보다 비우기를 좋아했다면
대화보다 침묵을 좋아했다면
국어사전보다 그림책을 좋아했다면
새벽보다 아침을 더 좋아했다면
 
무작정 외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그날 그 시각 거기에 있지 않았다면
너를 마주치지 않았다면
그 말을 끝끝내 꺼내지 않았더라면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닦아주는 데 익숙했다면
뒤를 돌아보는 것보다 앞을 내다보는 데 능숙했다면
만약으로 시작되는 문장으로
하루하루를 열고 닫지 않았다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일어나니 아침이었다
햇빛이 들고
바람이 불고
읽다 만 책이 내 옆에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만약 내가
어젯밤에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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