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Dec 10. 2016

잠들지 못한 밤의 기록

잘자


내가 느꼈던 감정은 슬픔이다. 나는 울어야 했다. “잘 자” 그녀가 건넨 아주 사소한 저녁 인사가 물꼬를 틀게 했다. 고요한 이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보내지 못한 시간이 점차 늘어나고 있음을. 잠에 깨있을 때 술과 함께하는 시간을 채우고, 꿈속에선 새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나의 잠자리를 걱정해주는 듯한 위로. 멍하니 앉아있는 나의 곁에 머무르는 이 아이 같은 말 한마디였다.


잘 자

애인의 손바닥. 눈을 감고. 어지러운 저녁들이 이불 속에 함께 들어와. 지난 꿈. 너의 무릎에 밀어 넣어두고. 네가 피우다 만 담배. 잠드는 날. 깨어날 시간. 혼자가 스스로의 눈빛을 아프게 기다리는 일. 야옹. 맥박. 내 이름을 불러주던 당신. 구부러진다 목... 뚝뚝. 그림자. 거울의 세계. 타박타박 걸어 들어왔다. 닿을 듯. 위태로움. 멈칫한 순간들. 반복처럼. 알아요.     김보연_서울문화재단 시시시작 프로그램


플려버린 신발 끈. 시선은 바닥으로 몸은 앞으로 걸었다. 마주 오던 사람들과 부딪히고 골목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차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걸어간다. 잠시 앉아 묶고 가면 앞으로 가기 더 수월할 텐데. 뭐가 그리 바쁘고 조급한지 그 시간에 얼마나 더 많은 걸음을 가겠다고. 불편하고 힘들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다가 아닌 걸 알면서 그 잠시가 아직도 어렵다.   


그는 바람처럼 사라진 지 오래다. 아주 가끔 그가 했던 약속들이 나를 외롭게 만든다. 꼭 돌아올게. 너무나 쉽게 믿었지.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변명도 없이. 우리는 제대로 헤어지지 못했다. 아주 작은 불씨를 품고 사는 기분이었다. 조금이라도 바람이 불면 크게 번질 것만 같았다. 시간이 지나도 남아있는 따뜻함이 싫었고 나는 작은 병에 불씨를 담아버렸다. 희미하던 불은 단번에 꺼졌다.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바라보는데 다른 곳을 본다. 왜 너인지 나도 알 수 없다. 너에게 더 다가가고 싶지만 달아날까 제자리에 서있다. 내가 용기를 내면 넌 어떻게 할까. 그 한 발짝을 떼기가 너무나 어렵다.


닫힌 문 너머,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무거운 문을 열어보겠다고 고군분투하던 나는 이제 없다. 다시 이 문을 두드리면 날 반겨줄지. 그저 그 문을 바라만 보며 생각한다. 하루에 수십 번, 문 앞에서 망설이다 되돌아간다.  

    


※이미지는 직접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무단도용을 금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