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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Dec 17. 2016

무표정

아이템 조사와 취재 그리고 촬영. 매달 반복되는 패턴이다. 그러나 늘 새롭고 어렵고 미숙하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소재들을 다루는 매체는 아니다. 그래서 더 힘들고 이질감을 느끼곤 한다. 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들에게 보이는 외적인 나를 신경 써야 하는 것이 피곤한 일이 되었다. 화장이나 입은 옷, 내가 들은 가방. 이게 나를 판단하는 것 같았다. 찾아가는 공간들마다 꽤나 값이 비싼 것을 판매하는 곳들이며 그곳에 있는 담당자들이 내 모습을 스캔하는 것을 보곤 한다. 그래도 그들은 미소 띤 얼굴로 다가온다. 그들 또한 그것이 일이기에 나에게 친절하다. 나 역시 그들에게 친절하게 웃어 보인다.


때론 이런 나를 볼 때 가식적인 것 같아 싫었다. 다들 똑같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내 것을 채우기 위해 그들에게 웃음을 짓는 것은 언제나 익숙하지 않다. 또 그렇게 다가오는 이들에게 묘한 불편함이 몰려온다. “내가 이곳을 떠나고 나면 그들은 나를 평가하겠지”라는 과대망상도 함께 찾아온다.


점점 자신감은 떨어지고 표정도 없어진다.

아무런 표정을 짓고 싶지가 않다. 그것마저 피로해져 버린 것이다.


내가 일을 하며 느끼는 감정을 적는 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동료 기자가 말했다.  마치 지금 내가 이곳에 어떻게든 나를 맞춰보려고 스스로를 재단하는 것처럼. 다른 잡지로 갈 때 도움이 되는 포트폴리오는 아니겠지.


그러나 내 감정마저 검열하고 싶진 않았다.

일을 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은 다 사라지고 있는 불안감을 느낀다. 내가 예전에 어떻게 글을 썼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그때 쓰던 글들을 다시 쓰고 싶지만 손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바닥을 향해 목이 하염없이 구부러져 떨어질 듯 무거운 좌절감을 짊어진다.  

아무도 듣지 못할 소리로 중얼거린다.


정말 멍청이가 되었구나. 망가져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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