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집에 있을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지. 망명이라고 하자.”
“망명 그 단어 좋다.”
-연극 <프라이드> 중
집을 나선 이유는 망명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나도 그 단어가 좋아졌어. 일을 한다고 바삐 나왔지만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빛이 내리쬐는 곳을 걸으며 따뜻함을 피부로 느끼고 싶었다. 조금씩 열이 오르며 땀이 날 때 맞이하는 다리 밑 그늘이 달콤했다. 잠시 쉬어가라는 듯 놓인 의자에 앉아 흐르는 더러운 강물을 보았다. 썩은 듯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한참 앉아 있던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강물만 볼뿐이었다.
발길을 돌렸다. 갈증이 밀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커피 한잔으로 목을 축였지만 역류한 듯 목구멍의 불편함이 올라왔다. 왜일까, 그저 목을 쓰다듬는 일밖에 하지 못했다. 밖은 여전히 밝은 낮이었다. 가장 기온이 높아지는 오후 4시.
어떤 이의 일상. 그 일상을 내다보는데 대부분의 것들은 머물러 있었다. 나무, 건물, 그 외에 어떤 물건들. 나는 나무 밑에서 느끼는 바람이 좋았다. 그리고 나뭇잎 따라 그려진 그늘도. 그때만큼 고요해지는 시간이 또 있을까. 누구의 말을 듣지도 하지도 않아도 되는 시간. 마치 멈춰있는 것 같은 순간. 말도 안 되게 몸은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