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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착한여성들 Feb 14. 2023

달여섯의 재미(味, 맛) 보고서

얼려먹는 초코부터 띠부띠부씰까지


 이 글은 거북알로부터 시작되었다. 진짜 알이 아닌, ‘거북알’ 아이스크림 말이다.

 이 아이스크림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저 평범한 초코맛 아이스크림일 뿐인데 질긴 고무 비닐로 포장되어 있다는 차이점 하나로 한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간식이다. 고무의 수축성으로 인해 갈수록 무자비하게 뿜어져 나오는 아이스크림을 침착하게 해치우는 짜릿함이 일품이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지금 아주 난처하다. 후식으로 먹기 시작한 거북알이 점차 빠른 속도로 쏟아져 나오는 탓에 글쓰기에 집중을 못 한 지도 벌써 10분째이니 말이다.

 오랜만에 먹으니 재미있다며 거북알과 씨름하다 보니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언제부터였을까? 음식에서 재미를 갈구하는 내 모습 말이다.     


 대한민국의 엄격하고 얌전한 밥상머리 교육을 철저히 받았던 어린 시절이 무색하게도, 지금의 나는 어떻게든 음식에서 재미를 찾으려는 개구진 어른이 되었다. 누구나 태어나 한 번쯤은 들어 봤을, “음식 앞에서 장난치는 것 아니다.”라는 잔소리와 정확히 대척점에 서 있는 어른 말이다.

 일상 속 무언가를 먹으며 느끼는 즐거움은 분명 음식 자체의 맛 그 이상의 무언가이다. 음식이 미각만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님은 우리 모두가 경험상 아는 자명한 사실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혀에 분포해 있는 미각 수용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즐거움의 근원은 무엇일까? 나만의 답을 찾기 위하여 이 기회에 재미(味, 맛)있었던 기억들을 반추해보고자 한다.

      

1. 사서 고생하는 재미를 배우다.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의 일이다. 그 당시 처음 출시되었던 ‘얼려먹는 초코만들기’라는 과자는 내 기억 속 가장 애틋한 간식이다. 흔히 얼초라 불리던 이 과자는 10년이 지난 요즘에야 충분한 인지도와 함께 다양한 시리즈로 출시되고 있으나, 당시에만 해도 슈퍼마켓에 입점되지 않아 구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저 두 가지 색상의 초코펜과 모양틀, 그리고 막대과자가 들어 있는 DIY 상품일 뿐이었는데 그 시절엔 왜 그렇게도 특별해 보였는지. 어린 나이였음에도 평소 무언가를 갖고 싶은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던 편인 내가 처음으로 어린아이다운 간절함을 보였던 날이라고 훗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한참 큰 엄마 손을 꼭 잡고 해가 질 때까지 동네의 모든 슈퍼마켓을 들렸던 그날의 기억이, 내겐 한없이 그윽하고 소중하다. 더군다나 결말까지도 해피엔딩이다. 여기에도 없으면 포기하자며 마지막으로 방문하였던 슈퍼에서 극적으로 얼초를 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DIY(do-it-yourself): 완성된 제품이 아니라 각각의 부품을 소비자가 선택하여 구입하고 이를 직접 조립하거나 제작하여 쓸 수 있도록 만든 상품.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사랑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마냥 귀엽기만 한 추억이지만 한편으로는 사서 고생했구나-라는 감상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만들어 먹어야 하는 별난 과자에 매료된 나자신도, 딸을 위해 반나절을 헤매신 어머니도 사서 고생한 것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가만 보면 우리는 사서 고생하는 걸 참 좋아한다. 타인을 위해 고생한 정도를 정성의 척도로 삼는 우리나라에서 특히 각종 기념일은 ‘누가 누가 더 고생하는가’의 유쾌한 시합이 펼쳐지는 장 같기도 하다.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할로윈, 빼빼로데이... 수많은 ‘데이’마다 멀쩡한 초콜릿을 녹여 약간의 물리적 변형을 주고선 다시 얼리는 짓을 즐겁다며 반복하는 우리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이 마치 미분했다가 곧바로 적분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어느 이과생의 우스갯소리가 문득 떠오른다. 그럼에도 매년 전통처럼 이어지는 ‘데이’ 문화를 보면, ‘수제’가 지니는 재미 요소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수제야말로 주는 이의 정성과 받는 이의 감동을 극대화할 수 있으니, 소중한 누군가를 위해 한 번쯤은 고생 해 볼 만하지 않은가. 사서 고생한다는 표현 속에는 전에 없던 새로운 자극, 혹은 누군가를 향한 애정이 담긴 걸로 보아, 미각으로부터 오는 우리의 경험이 단순히 맛 자체만으로 점철되는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2. 먹지 못하는 걸 먹고자 하는 욕망에 눈뜨다.     

 대한민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량식품에 대한 추억이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 모범생의 타이틀을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던 내게 불량식품은 그야말로 판도라의 상자, 애증의 대상이었다.      

 불량식품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누누이 새겨들었으나, 정작 불량식품을 밥 먹듯이 즐겨 먹던 내 친구들은 너무나도 건강해 보였다는 것이 그 시절 최고의 의문이었다. 불량식품은 정말로 불량스러운가? 게다가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정문 근처에 문구점이 네 개나 있어, 하교 후 불량식품을 사 먹지 않기 위한 자제력이 네 배로 들었다. 문구점의 사전적 정의는 분명 ‘학용품과 사무용품 따위를 파는 곳’일 텐데, 왠지 문구점의 최대 매출은 불량식품 판매량에 의해 결정되었을 것만 같은 이 느낌을 도저히 지울 수 없다.     


 어른들의 잔소리가 슬슬 효력이 다하는 고학년이 될 무렵이었다. 나는 더 이상 유혹을 참지 못하고 불량식품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불량식품을 처음 먹어 본 순간, 나에게 강렬하게 다가왔던 건 놀랍게도 그 맛이 아니었다.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고 불량식품이란 금단의 영역에 발을 들인 데에서 오는 죄악감과 배덕감이었다.

 그러나 뭐든지 한 번이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불량식품을 먹어도 당장에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나는 곧이어 젊음을 믿고(?) 스스럼없이! 당차게! 불량식품을 즐겨 먹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왜 그렇게까지 불량식품을 먹고 싶었던 걸까? 물론 초등학생의 신분으로도 구매 가능한 저렴한 가격, 괜히 먹지 말라면 더 먹고 싶은 반발심, 혹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 등 많은 이유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험을 돌이켜보았을 때 불량식품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먹지 못하는 것과 먹을 수 있는 것 사이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점이다. 가령 ‘먹는 테이프’라 불리던 불량식품의 경우 맛이 아닌 재미로 아이들의 인기를 끌었다. 이 식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비닐만큼 얇은 반투명한 형태라 혀에 달라붙는 꼴이 꽤나 성가시지만, 테이프를 먹고 있다는 스스로의 모습에 취해 신나게 먹을 수 있는 불량식품이다. 분명 실망할 정도로 맛이 없었는데도 테이프를 먹는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기묘함과 왠지 모를 성취감에 멈출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비슷한 예로, 불량식품은 아니었으나 한때 유행하였던 외국 젤리도 기상천외한 맛으로 아이들의 인기를 얻었다. 배 맛 대 코딱지 맛, 케이크 맛 대 구정물 맛 등 평범한 음식 맛과 괴랄한(벌칙과도 같은...) 맛을 똑같은 색상의 젤리로 만든 탓에 복불복의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결코 해소되지 않는 비(非)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음식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걸로 보아,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갈구하는 존재임이 틀림없다.

 

 3. 랜덤깡의 세계에 빠지다.     

 랜덤깡이란 랜덤으로 구성된 어떠한 상품을 까본다는 의미의 신조어로,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앨범을 까서 포토카드와 같이 동봉된 랜덤 구성품을 확인해본다는 뜻의 앨범깡에서 유래한 용어로 알려져 있다.      

 여러분은 실감하는가? 바야흐로 랜덤깡의 시대이다. 비단 아이돌이나 애니메이션 덕질 문화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상 속에서도 다양한 캐릭터와 콜라보 한 편의점 간식들이 랜덤 띠부띠부씰을 품은 채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는 빵을 사면 끼워주는 띠부띠부씰이 빵보다 더욱 비싸게 팔리고, 그럼에도 일찍이 품절되는 띠부띠부씰과는 달리 빵은 팔리지 않은 채 나돌아다니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띠부띠부씰: 빵과 같은 식품에 동봉된 캐릭터 스티커로, 비닐류의 소재라 종이 스티커와 달리 탈부착이 자유롭고 수집에 용이하다.     



 나 역시 랜덤깡의 재미에 흠뻑 빠진 사람 중 한 명이다. 한 번은 시중에 판매되는 랜덤깡 상품들을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랜덤깡 이벤트를 주최해 본 적이 있다. 바로 포춘쿠키를 주문 제작 해 본 일이었다.

 주문 과정은 전혀 어렵지 않다. 포춘쿠키 제작 업체에 원하는 쿠키 수량을 온라인 예약 시스템을 이용하여 주문하면 끝이다. 다만 대부분의 수제 쿠키가 그렇듯 방부제가 들어 있지 않으니 유통기한이 한 달인 점을 고려하여야 한다.      

 주문 과정에서 가장 즐거운 점은 쿠키 속에 넣을 문구를 내가 직접 작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작년 겨울, 지인들에게 그간의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나누어 준 포춘쿠키에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들을 글귀로 넣었다. 이때 랜덤깡의 묘미를 제대로 살리고 싶다면, 쿠키 속 글귀가 단 하나도 중복되지 않도록 만들면 된다.

 포춘쿠키를 주문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으로 신통방통한 아이디어인 것 같다. 대체 누가 과자 안에 종이 쪼가리를 넣어 메시지를 전할 생각을 한 것일까? 정말이지 사랑스럽고 유쾌하기 그지없는 발상이다. 기회가 된다면, 반복되는 일상으로 지친 우리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이 조그만 과자를 당신도 꼭 한 번 먹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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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빅- 심각한 도파민 중독자입니다.     


 나의 맛있었던 기억들을 정신없이 탈탈 쏟고 나니 이제야 이 모든 이야기들의 공통점이 보이는 듯하다. 먹는 행위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갈구하는 나는 아무래도 심각한 도파민 중독인 모양이다.

 우리 뇌 속의 중요한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도파민은 새로운 자극에 대한 보상과 동기를 제공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시스템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수제 간식을 만드는 즐거움, 테이프를 먹어본다는 설렘, 혹은 랜덤깡에 두근거리는 순간에 반응하여 나의 도파민이 마구 분비된 게 틀림없다. 음식에서조차 자극적인 무언가를 찾으려 하다니, 여하튼 현대 사회는 심각한 자극 중독자들로 가득 차 있는 게 분명하다.      


 그래도 나름 과학 전공생이니, 도파민과 관련하여 한 가지 신기한 사실을 소개하겠다. 우리의 도파민 시스템은 실제로 특정 보상을 받는 시점보다 보상에 대한 ‘기대’에 더 큰 반응을 보인다. 가령 랜덤으로 들어있는 띠부띠부씰을 확인하는 순간보다, 뜯어 보기 전 좋아하는 캐릭터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순간에 도파민이 더 많이 분비되는 것이다. 마치 여행을 실제로 떠나는 순간보다 공항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욱 설레던 경험처럼 말이다.


 당신도 나와 같은 도파민 중독자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먹는 행위를 통해 무엇을 기대하는가? 당신의 오늘이 기대한 만큼이나 즐겁고 맛있는 하루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달여섯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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