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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착한여성들 Feb 17. 2023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과식과 식욕 사이, '음식'에 대하여

커버 사진: UnsplashAlia



 오늘은 초장부터 충격적인 고백을 하나 해보려고 한다. 

 내 키는 한국 여성 평균, 그런데 키에서 몸무게를 빼면 100은커녕 90도 안 된다. 보통 키빼몸 100이 건강하고 이상적인 몸무게라고들 하는데 90도 안 된다는 건 이제는 미의 기준을 넘어서 건강에도 무리가 있을 정도로 살이 많이 쪘다는 소리다. 가족들은 우스갯소리가 아니고 정말로 내 다이어트에 신경을 쓴다. 심지어 손주들 먹이기 좋아하는 할머니까지도 살을 빼라고 하신다! 살면서 할머니한테 그런 잔소리를 들어본 건 처음이었다. 내가 정말로 심각하긴 한가보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지난봄까지만 해도 내 키빼몸은 100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즉, 지난 하반기에 몸무게가 10kg 가까이 쪘다. 

 아무리 먹는 걸 좋아한다지만 어떻게 사람 몸무게가 단기간에 그렇게 찔 수 있지?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대면 강의가 시작되었다는 것 외에 더 특별한 일은 없었다. 

 나한테 있었던 큰 변화 중 하나는 올 상반기에 정신과 약물 복용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바렙톨, 아리피졸, 애드피온……. 어떤 약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작용 중 식욕 증가가 있는 약이 있다고 한다. 원래도 음식을 좋아하는데 거기에 식욕이 증가하는 약이 추가된 것이다.


 처음 병원에 갔던 늦봄에는 약에 적응하는 기간이라서 그런지 오히려 식욕이 더 떨어지기도 하는 등 드라마틱한 부작용을 느끼지 못했는데, 가을이 다가오자 세상에 있는 모든 음식이 맛있게 보였다. 

 햄버거, 피자와 같이 평소에 좋아했던 음식부터 시작해서 학식이나 편의점 삼각김밥과 같이 그다지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음식까지……. 혀에 자극이 필요할 때는 편의점에서 초콜릿 바를 세 개씩 사서 나오기도 했고, 목이 마르면 카페에서 음료수를 한 잔씩 꼭 사 왔다. 식욕이 심할 때는 편의점 앞만 지나가도 침이 줄줄 새서 발걸음을 몇 번이고 멈췄을 정도다. 

 안 그래도 먹는 걸 좋아하는데 식욕까지 오르니 자연스럽게 과식을 하게 된다. 하루는 편의점에서 저녁을 때울 일이 있었는데, 샌드위치와 삼각김밥 중에 딱 하나만 고를 수가 없었다. 결국 선택하지 못하고 조금 많이 먹는다는 느낌으로 샌드위치와 삼각김밥을 두 개 다 먹었다. 그런데 삼각김밥을 먹으려니 또 여러 가지 종류의 삼각김밥이 있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결국 그 중에서도 선택하지 못하고 삼각김밥을 두 개 먹고 말았다. 다 먹고 나니 정말 배가 터질 것 같았다.


 식욕을 이기지 못하고 과식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 와플을 먹으러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도 먹고 싶은 와플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한 가지를 고르지 못하고 둘 다 시켰던 적이 있다. 이렇게 돌아보니 식욕도 식욕이지만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의 종류가 너무 다양한 것도 문제인 것 같다.

사진: Unsplash의Yeh Xintong

 약을 복용하면서 느낀 건 세상에는 다양한 음식이 있고 그걸 다 먹기에 내게 주어진 시간과 건강은 무한하지 않다는 것이다. 같은 빵이라도 종류와 브랜드가 다양하고, 같은 샌드위치라도 재료가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맛도 식감도 달라진다. 가능하다면 전부 먹어보고 싶다. 어떤 메뉴가 어떤 맛을 내는지 호기심을 채우고 싶다.


 하지만 하루에 먹을 수 있는 메뉴는 세 개, 아무리 과식해도 네다섯 개다. 그 이상 먹었다간 배가 너무 불러서 잠자려고 눕지도 못한다. 결정적으로 그렇게까지 먹으면 살이 너무 많이 찐다는 문제가 있다. 한참 어마무시하게 먹던 어느 날, 2주 만에 본가에 갈 일이 있었다. 집에 들어간 순간, 온 가족이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체중계에 올라가 보니 2주 전에 비해 5kg나 쪄 있었다.






 너무 많이 먹었다. 살도 너무 많이 쪘다. 이제 마음에 드는 옷이 있어도 내 사이즈가 나오지 않는다. 양질의 옷을 사려면 인터넷을 한없이 뒤져야만 한다. 아무리 바디 포지티브가 세계적 트렌드라고는 하지만 옷 하나 사기 힘든 한국 사회에서 바디 포지티브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꼭 바디 포지티브가 아니더라도 이제 몸이 너무 무거워서 움직이고 싶지 않아진 게 문제다. 남들 다 가는 길에 경사가 조금만 있어도 헉헉대는 나 자신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새해 목표는 운동이다. 무슨 운동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뭐든 하고 살을 조금이라도 빼는 것이다. 약을 계속 복용하는 이상 살은 계속 찔 텐데 조금이라도 살을 빼 놔야 더 먹으면서도 세상을 편하게 살 수 있지 않겠는가. 

 키빼몸 100을 넘기는 건 이제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오르막길 위에 있는 학교에 갈 때 조금 더 편하게 가길 바라고, 옷가게에 갔을 때 내 사이즈인 옷이 조금 더 많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 해에는 꼭 예전 몸무게로 돌아갈 수 있길 바라며!


일리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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