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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착한여성들 Feb 19. 2023

붕어빵 노스탤지어(Nostalgia)

당신에게 붕어빵이란? '음식'에 대하여.

노스탤지어: 고향을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     



  사계절 중 길거리 음식 점포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는 계절이 돌아왔다. 이맘때가 되면 길거리 음식이 마구마구 생각난다. 봄, 여름, 가을까지 생각해 봐도 마땅히 떠오르는 간식이 없는데, 신기하게도 겨울만 되면 호떡, 붕어빵, 군고구마 등 따끈따끈한 음식들이 다양하게 떠오른다.   

   

  길거리 음식이 참 흔하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집 앞에 나가서 걸어다닌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붕어빵 파는 아저씨를 뵐 수 있었고, 또 10분 정도 더 걸어가다 보면 특이하게 김치맛 붕어빵을 팔던 아주머니도 뵐 수 있었다. 3개에 천 원이던 붕어빵을 2천 원어치 사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봉투를 패딩 속에 숨기고 집에 걸어가는 길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그러다 ‘집에 가서 가족들이랑 나눠 먹을까, 나 혼자 먹어 버릴까’ 고민하기도 하고, 결국 냄새에 못 이겨 붕어빵 하나를 딱 꺼냈을 때, 아직 뜨거운 붕어빵을 한입 베어물면… 환상.

 붕어빵이 가득 들어 있는 봉투를 들고 길을 걸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부러움의 시선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그 시선을 받는 일도 참 즐거웠다. 뜨거워서 입천장이 데어도 그저 좋다며 허허실실 웃었다. 나에게 붕어빵은 그런 음식이었다. 추운 겨울에 그나마 따뜻한 기억을 안겨 준 소중한 존재.     


  위에서 말했듯 우리 동네도 분명 길거리 음식으로는 어디 가서 지지 않는 붕세권이었지만… 이제는 겨울이 와도 붕어빵은 코빼기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아마 이 글을 손글씨로 적었더라면 눈물 자국 때문에 번졌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키보드로 글을 쓰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동네에서 붕어빵을 보기 힘들어진 건 재작년 겨울부터였다. 그전까지는 우리 동네로 붕어빵을 파는 분들이 차츰 모여서 어느 길로 가든 항상 반가운 붕어빵 가게가 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겨울만 되면 보이던 그 가게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12월이 가고, 1월이 가고, 2월이 가도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오기 전에 장사를 접고 퇴근하시는 건가?’라고 생각했지만, 3달 동안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그때부터는 천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때, 그곳, 그 맛이 사라진 기분으로는… 아쉬움이 컸다. 사실 당시에는 ‘붕어빵은 어디서나 파는 거니까’라고 생각해서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프지는 않았다. 단지 도보 5분 거리에 있던 노점이 사라져서 10분 더 걸어야 붕어빵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조금 귀찮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     

  분명 그랬는데…. 내가 너무 오만했던 걸까. 방심했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10분 더 걸어 다른 동네까지 넘어갔는데도 원래 계시던 붕어빵 아주머니를 뵐 수 없었다. 이후 아주머니도 비슷한 시기에 장사를 접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때 든 생각은 대략,      

‘내 세상이 무너졌어...’ 였던 것 같다.   

   

  그때로부터 2년이 지난 2023년, 최근에는 시내까지 나가 보았는데도 붕어빵보다는 타코야끼나 와플 노점을 찾기가 더 쉬웠다. 왠지 낯설었다. 옛날에는 타코야끼보다 더 보기 쉬웠던 붕어빵이 이제는 가장 보기 어려운 겨울 간식처럼 느껴졌다. 어쩐지 전세가 역전된 느낌이었다.      

  몇 달 전에는 동네에서 붕어빵 파는 곳을 지도에 표시해 주는 어플을 다운받아 살펴본 적이 있었다. 다른 동네 지도에는 붕어빵 가게를 표시해 주는 ‘♡’ 표시가 몇 개 보였지만, 우리 동네는 깨끗했다. ♡ 없는 우리 동네. 왠지 씁쓸해진 마음으로 어플을 종료했다.   

선을 중심으로 오른쪽이 내가 사는 동네

  요즈음에는 길거리 불법 노점상을 신고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도에 ♡ 표시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우리 동네에도 신고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자주 보였던 붕어빵 아저씨, 아주머니도 모두 떠나신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보니 얼추 상황이 들어맞았다. 


  이때부터 두 마음이 생겼다. 이성은 ‘불법 행위는 신고하는 게 맞는 일이지’라고 생각하지만, 감성은 ‘그래도 그동안의 정으로 조금만 넘어가 줄 수는 없는 걸까?’라고 외친다. 응당 붕어빵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고, 나 역시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은 투정을 쏟아낸다. 겨울에만 짧게 하는 장사이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은 그 붕어빵을 사 먹으면서 잠깐이라도 따뜻한 행복을 느꼈을 텐데. 

 확실히 옛날보다는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작은 붕어빵 하나로도 실감할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 붕어빵을 사다 놓고 이런저런 푸념을 늘어놓다 겨우 한입 베어 물면 달콤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쌉싸름한 맛이 났다. 기분 탓이겠지.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고, 물론 나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세상에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이 어디 한둘인가. 붕어빵을 그리워하는 나로서는 ‘거참, 사람들 팍팍하네!’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서 도저히 한 가지 입장을 내기가 쉽지 않지만, 이 글에서만큼은 감성의 편을 조금 더 들어주고 싶다.     


출처: 연합뉴스

  거창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겨울 길거리 음식에는 추운 날씨에 사람들을 따뜻하게 녹여 주는 그들만의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동네 곳곳에 자리 잡은 겨울 간식들이 마치 게임 속 세상에서 ⃰hp를 충전할 수 있는 물약처럼 느껴졌다. 

 ⃰hp: hit point 또는 health point의 줄임말로, 게임 캐릭터의 체력을 나타낸다.     


  까마득한 옛날 일이지만, 추운 겨울날에 외출했다가 엄마와 자잘한 말다툼을 하면서 마음에 데미지를 입은 적이 있었다. 별것도 아닌 일인데 다툰 이후로 괜히 서먹해져서 나 혼자 엄마와 거리 두기를 하며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눈앞에 붕어빵 가게가 있어서, 또 마침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붕어빵을 기다리는 동안 엄마와 나의 거리 두기는 자연스레 해제되고 어물쩍 붕어빵으로 화해의 손길을 건넸던 적이 있었다.

 먼저 사과할 줄 모르는 성격이지만 화해는 하고 싶었던 나에게 그때 그 붕어빵은 얼마나 고마웠는지. 조금 웃긴 비유지만 붕어빵으로 힐(Heal)을 얻은 느낌이었다. 그때 이후로 겨울 간식이 가진 힘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집순이인 나는 추운 겨울만 되면 밖에 절대로 나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할 일이 생긴다면 ‘이왕 나가는 김에 붕어빵도 사 와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밖으로 나갈 힘을 얻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쯤 되면 붕어빵이 정말 hp물약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그런데 이제는 그 물약을 보기 어려워졌으니, 세상이 나에게 별안간 힘든 퀘스트를 던져 준 것만 같다.      

  [Quest1] 희귀한 물약을 찾아줘!     

  대략 이런 느낌. 우리 동네는 이미 ♡ 표시를 찾아볼 수 없는 공터가 되었고, 이제 집에서 20분을 더 걸어야 물약을 얻을 수 있다. 성인이 되었으니 몇 년 전보다 현금도 더 두둑이 챙겨 드릴 수 있는데, 하필 제일 가까운 상점까지 사라져 버린 상황이다. 졸지에 나는 물약을 찾기 위해 이전보다 훨씬 더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유저가 된 것이다.      






  세상은 어떻게든 변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도 지난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공간 하나쯤은 그대로 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어린 나는 붕어빵 노점이 사라진 것을 보고 내 세상이 무너졌다고 생각했지만, 이 넓은 땅에 내 추억이 담긴 곳 하나 놔둔다고 사람들의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을 거니까.      


  나는 단지 붕어빵을 먹고 싶은 걸까, 사라진 추억의 장소를 아쉬워하는 걸까, 아니면 곳곳에 노점이 생겼어도 마냥 반겨 주던 그 시절의 정(情)이 그리운 걸까. 

 뭐가 됐든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겨울을 버텨 낼 힘을 준 것은 분명하다. 겨울에 대한 추억과 그 시절의 정에도 형체가 있다면 그게 바로 붕어빵이 아닐까? 엉뚱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눈에 보이는 정, 나에게 붕어빵은 그런 음식이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겨울만 되면 사람들이 자연스레 붕어빵을 찾게 되는 걸까. 붕어빵을 먹다 보면 어릴 적 붕어빵을 먹던 추억까지 모락모락 피어오를 테니까. 내가 글을 쓰면서 이성보다는 감성의 말에 마음이 기울었던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저 말이 답이 될 것 같다.     

[Quest1 보상 깨달음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

자꾸만 사라져도 또 다른 장소를 찾아 헤매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이제야 뭘 좀 끝냈나 싶었는데, 다시 울리는 알림 하나.     

[Quest2] 포기란 없다새로운 물약을 찾아줘!     

… 날이 춥다. 오늘도 유저는 따뜻한 추억을 찾아 먼 길을 떠난다.     



체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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