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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착한여성들 Feb 24. 2023

지나간 공연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

좋아하는 콘텐츠, 연뮤덕의 공연 추천글

커버 사진 출처: 우란문화재단     


 나는 한때 연뮤덕이었다. 연뮤덕이란 연극과 뮤지컬의 덕후를 이르는 말이다. 가장 자주 가던 장소는 대학로. 얼굴이 익은 배우들이 많아 캐스팅을 살펴보다 보면 ‘다 아는 사람들이구만’ 하고 말할 정도였다.


 계속해서 공연을 하는 오픈런 공연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대학로 연극이나 뮤지컬은(대극장의 경우도 비슷하다) 2개월에서 3개월 정도를 공연하고 막을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기가 많았다면 막을 내린 후 나중에 재연, 삼연, 혹은 사연까지 공연을 올리기도 하는데 그때가 언제일지는 예측할 수 없다.

 즉, 지나간 공연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돌아오더라도 그 전과 같은 공연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캐스팅이나 극장이 다를 수 있고, 수정을 거쳤을 수도 있다.

 비단 이런 변화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공연은 매 회차가 다르다. 녹화된 영상을 트는 것이 아닌, 배우들이 그 순간 연기하며 이끌어가는 장르니까. 한 작품 내에서도 공연 초반과 공연 후반 배우의 연기가 미묘하게 달라지기도 한다.


 한때 열정적으로 작품들을 보러 다녔다. 마음에 와닿은 작품들은 여러 번 보기도 했다. 이쪽 세계가 진입장벽이 꽤 높다는 것을 지인들에게 영업하며 깨닫기도 했다.

 이번 기회에 내가 좋아했던 작품들을 돌아보는 겸, 이 글이 누군가에게 영업글이 되길 바라며 연뮤덕계에서 웰메이드로 평가받으며 널리 알려진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현재 공연 중이 아니더라도 유명한 작품들이니 앞으로 종종 볼 수 있을 것이다.    



  


 1. 뮤지컬

 개인적으로 대학로 창작 뮤지컬 중 한 작품만을 뽑는다면 <어쩌면 해피엔딩>이다.

출처: 네오

 작품의 시공간은 미래 시대, 사람과 똑같이 생긴 로봇이 개발된 세계로 새로운 버전의 로봇이 나오면서 버려지게 된 두 로봇의 사랑 이야기이다. 나에게 무척 특별한 작품인데 이 작품을 필두로 본격적인 연뮤덕질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노란색 셔츠를 입은 배우가 등장하며 ‘오늘 서울 하늘 무척이나 맑음’하고 노래를 부르는 순간, 그냥 그 노래와 목소리에 감동받았다. 그 당시엔 주인공를 맡은 배우에게 반했다고 생각해서 그 배우가 나오는 다른 뮤지컬을 연달아 보았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난 후, 나는 그냥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에 반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를 그렇게 만든 뮤지컬의 가장 큰 매력은, 작품의 서사가 좋은 목소리와 음악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뮤지컬에서 제일 중요시하는 것은 넘버, 즉 뮤지컬을 이끌어가는 노래이다. 이 부분에선 아무래도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고 앙상블과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대극장 뮤지컬의 노래에 비해 소극장 뮤지컬은 다소 소소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창작 뮤지컬 중 빛나는 작품들이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가 <어쩌면 해피엔딩>이다. 유튜브에 ‘어쩌면 해피엔딩’을 치면 넘버를 들어볼 수 있다. (꼭 들어보세요!) OST CD까지 샀던 나는 늘 이 뮤지컬을 이루는 넘버를 들으며 감탄한다. 노래뿐만 아니라 서사도 따뜻해서, 추운 겨울, 혹은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과도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비슷하게 서사 구조도 넘버도 좋았던 작품엔 뮤지컬 <팬레터>가 있다. 이 작품은 1930년대를 배경으로 ‘구인회’를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서울에서 3월 1일까지 공연 중인 작품 중에 추천할 만한 것도 한 가지 있다. 최근 보고 온 뮤지컬인 <여신님이 보고 계셔>, 줄여서 ‘여보셔’이다. 워낙 이름을 자주 들었던 터라 궁금해서 마티네 할인으로 보러 갔었다.

 6·25 전쟁 중 포로 송환을 할 때, 병사들 간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는 작품이다. 굉장히 무거워 보이지만 코믹한 요소가 섞여 있고 내용은 단순하다고도 느껴질 정도로 어렵지 않아서, 키득거리는 관객들과 함께 다소 가볍게 볼 수 있었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고 하는데, 오랜 시간 살아남았다는 것은 대중성은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 뮤지컬의 대미는 ‘그대가 보시기에’라는 아주 깜찍한 넘버로 뮤지컬을 보고 나면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에 돌아오게 된다.          





2. 연극


 뮤지컬에선 음악을 제일 중요시한다면, 대사로만 이루어진 연극에선 서사와 좋은 대사가 있는 작품을 애정한다. 가장 좋아하는 극은 <프라이드>이다.

출처: Newsis

 주옥같은 명대사가 많은 유명한 작품으로, 정신적으로 가장 너덜너덜할 때 접했다. 당시 극장은 내가 의존하던 유일한 장소로, 불이 꺼지고 공연이 시작되면 복잡한 세상으로부터 한걸음 물러나는 기분이 들어 자꾸 자꾸 찾았다.

 <프라이드>에서 가장 마음에 담아둔 대사는 ‘델포이씬’이라고 불리는 장면에 나오는 아래 대사이다. 주인공 올리버가 델포이의 신전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며 입을 연다.


 “그렇게만 들렸어요. 들었다기보단 울렸습니다. 괜찮아질 거라고. 기나긴 시간이 흐르면 우리에 대해, 또 자신에 대해 이 어렵고 불안했던 순간들을 다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지금의 잠 못 이루는 밤들도 가치가 있었다, 깨닫게 될 것이다. 어쩌면 50년, 아니 500년 후에 이 시절을 사는 사람들은 그 시간들로 인해 더 행복하고 현명해질 것이다. 그러니 괜찮아,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질 거야. 마치 먼 미래에 모든 걸 거친 내가 위로하듯, 다정한 속삭임, 위안처럼. 그 목소리가 그렇게…….”


 <프라이드>는 올리버, 필립, 실비아 3명이 등장하는 이야기로, 자기 자신을 찾아 나가는 서사로 내겐 이해되었다. 전개가 조금 독특한데 이 작품에선 시공간이 2개이다. 50년 전의 세상, 그리고 현재. 올리버, 필립, 실비아는 그 두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이 연극이 굳건하게 말하는 것은 세상이, 그리고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사실 심적으로 힘들 때 어떤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괜찮아질 거야’ 라는 말만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

 

 뮤지컬 <헤드윅>의 넘버 ‘Midnight library’의 한국어 버전 가사엔 이런 구절이 있다. “지지 말아, 포기 말아.” 이 두 문장을 듣고자 계속해서 이 작품을 보러 온다는 리뷰를 읽은 적이 있었다. 비슷하게 나는 저 대사를 듣고 싶어 <프라이드>를 여러 번 보았다.

 작품이 주는 힘은 때때로 너무 강력해서, 생생한 연기에 빠져 작품 속으로 녹아들다가도 현실의 나와 연결된다. 공연이 막을 내리고 나서도 그 위안과 울림, 심지어 등장인물이나 작품과 소통했다는 여운은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한편 <프라이드>를 수입하고 연출한 제작사 연극열전에서 올린 연극 <마우스피스> 역시 좋다. 이 제작사에서 만든 작품들은 대체로 괜찮아서, 연극에 입문하고 싶다면 이 제작사의 라인업을 따라서 보러 가는 것도 좋다.

 <마우스피스>는 자살 시도까지 하려고 했던 중년의 각본가가 한 청년을 만나게 되고 그 청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극을 쓰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출처: 선데이뉴스

 현재 공연 중인 연극 중 괜찮게 보았던 건 연극 <오펀스>가 있다. 동생을 과잉보호하는 형, 그들이 사는 집에 갱스터 ‘해롤드’가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나는 그렇게 큰 감동을 느끼진 못했지만, 전체적으로 좋았던 작품이고 평도 좋다. 아마 공연을 보는 내가 이 작품에 얼마나 공감하느냐가 감동 여부의 관건이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연극도, 뮤지컬도 아닌, 피지컬 씨어터(움직임 위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장르) 장르의 작품으로 내가 정말 사랑하고 또 추천하고 싶은 건 <네이처 오브 포겟팅>이다.

출처: 우란문화재단

 망각하는 인간에게 끝까지 남는 기억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 극인데 슬프지만 아름답다. 내한 공연으로 짧게 한국에 온 뒤, 작년에 2주 정도로 짧게 공연을 올렸다.

 언젠가 다시 올라오지 않을까 싶은데, 만약 공연 소식이 들리면 티켓팅해서 보러 가보라고 떠밀고 싶다.

 유튜브에 있는 하이라이트 영상만 보더라도 이 작품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훌륭하게 연출되는지 알 수 있다. 음악, 효과음, 움직임과 소품의 활용, 그리고 주제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다.     


 지금까지 좋아하는 작품들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보았다. <프라이드>를 여러 번 관람한 나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연뮤계는 가장 비합리적으로 소비를 하는 곳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처럼 같은 공연을 연속해서 보는 경우 ‘회전문 돈다’라고 표현하는데, 이런 코어 팬이 많은 세계가 연뮤계이다. 그래서 밑의 사진과 같은 재관람 카드를 모든 극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정 작품의 한 회차도 빼놓지 않고 보러 가기 위해 미리미리 적금을 들던 팬도 보았고, 한 연극의 경우 가장 많이 관람한 관객 3명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는 이벤트가 있기도 했다.

 얼마나 많이 보아야 선물을 받을 수 있냐고? 무엇을 예상하든 그 이상이다. 이런 행태를 보며 이해가 안 된다고 고개를 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끼는 노래를 여러 번 듣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부분에서 변함없이 감동 받고, 때론 전혀 다른 부분을 발견하며 재미있어하고, 지친 마음을 다독이는 위로를 받는.

 나도 정확히 연뮤의 어떤 면이 나를 연뮤덕으로 이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내게 필요했던 최선의 위안이 아니었나 싶다. 덕분에 통장과 반비례하게 삶은 많이 풍족해졌다.


 궁금하지 않은가? 다른 곳에서의 소비를 줄이면서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의 심리를.

 한 번쯤은 연극과 뮤지컬을 보러 혜화로 가보는 게 어떨까. 지나간 공연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만이 그 공연을 볼 기회다.

 또한 아무도 모른다. 그 작품이 당신을 연뮤덕으로 이끄는 작품이 될지도?             

 


모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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