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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이 탁 닫히고 뒤통수 너머로 찰칵, 번호키에 잠금이 걸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신발장의 센서등이 나를 인식하고 켜진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정적 속, 신발장에 하얗게 서서 생각한다. 매일매일-
‘아, 다시 나가고 싶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
*
새 동네 친구를 사귀는 것,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사서들을 살짝살짝 관찰하는 것, 우연히 같은 칸에 앉은 지하철 승객이나 내 옆에 앉은 버스 승객들을 보는 것, 큰 목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의 말을 입모양으로 따라하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다.
어릴 적부터 집순이 친구들을 방에서 꺼내와 햇빛으로 씻기는 게 임무였다. 겸사겸사 친구들의 어머니와도 친해지고 밥도 얻어먹고. 사람을 참 좋아한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단지 보는 것, 듣는 것을 뛰어넘어 스물한 살 즈음부터 더 본격적으로 사람들과의 만남을 좇기 시작했다. ‘사회적 뻔뻔함’이 내 안에 자리잡혔다. 나는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낯선 이들과의 스몰토크. 이만큼 자극적이고 새로운 콘텐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밖에만 나가면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 드릉드릉하다. 주로 말을 거는 상대는 중·노년 여성분들이다. 포장마차나 식당의 사장님, 버스 옆자리에 앉은 멋쟁이 중년 여성,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 할머니 등등. 개중에는 말을 걸어도 될 분이 있고, 걸면 안 되는 분이 있다. 이런 감은 많이 걸어보고 거절당하며 길러졌다.
스몰토크 상대 물색에 중요한 부분은 바로 옷차림을 보는 것이다. 약속에 나갈 때와 출근복이 다른 것처럼 옷만 보아도 이 사람의 현재 마음상태를 어느 정도는 파악 가능하듯이. 특히 무거운 짐이나 카트를 들고 계시다면 말을 걸지 않는다. 째릿, 나보다 30년은 더 살아낸 그 눈빛들은 겨울 바람보다 매섭다.
대중교통에서 중·노년 여성과의 스몰토크를 하고 싶을 때면 예쁜 모자를 쓴 노년 여성분들을 눈여겨본다. 발견했다면 옆자리 혹은 그 좌석 옆에 선다. 이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고전적인 전략을 사용한다. 대략 이런 식으로,
“저… 모자가 진짜 예뻐요..”
처음부터 얼굴을 쳐다보면 부담이 되니까 모자만 보면서 수줍게 추임새를 넣는다. “저….” 상대가 나를 보면 약간 놀란 듯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예쁜 모자 처음 봐요! 어디서 사셨어요? 진짜 예뻐요.”
이 방식은 실패한 적이 없다. 대개 약간 당황하긴 하지만 기분 좋은 표정으로 모자의 역사를 읊어주신다. 우리 딸이 사준 것이다, 어디 브랜드 제품인데 참 튼튼해서 자주 산다, 제주도로 관광 갔는데 식당에서도 아가씨 같이 말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들었다.
스몰토크에 참여한 그분이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나는 타인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껏 맞장구치며 즐거워하면 된다. 목적지까지 거북이마냥 폰을 바라보지 않고 멀미 없이 산뜻하고 신나게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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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중·노년 남성들과는 굳이 말을 섞지 않으려고(여성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하지만 예외적으로 나름 즐기는 곳이 있다.
딸칵, 나는 문을 열고 잽싸게 들어간다. 자리에 앉으면서 말한다.
“혜화역으로 가주세요.”
“네~.”
서울의 한 택시 안, 지금부터 스몰토크 광인들의 무대가 시작된다.
택시 기사님들과의 스몰토크는 사실 ‘토크’보다는 ‘리스닝’에 가깝긴 하다. 대화의 9할을 듣고만 있어도 기사님은 대화가 잘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요즘 사람치고는 말이 잘 통한다며 칭찬도 들을 수 있다.
기사님들은 유용한 정보를 많이 알고 계신다. 사람들을 분간하고 파악하는 데에 트여있는 분들이 있었다. 나이를 알아채는 방법, 인상에 있어서 자세의 중요성, 진상을 구분하는 방법 등은 몇 년이 지나도 가끔 생각난다.
교통과 도로 상황에서도 전문가이기 때문에 이 동네에서는 어느 길로 가는 게 좋은지, 이 시간대 주요 정체 구간 및 정체를 어떻게 피하는지 등을 알 수도 있다. 더불어 기사님들은 다른 직업을 하다가 택시를 하게 된 경우가 흔해서 다양한 직업군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다. 다만 (하염없이 길어지는) 자식들 이야기도 듣게 되는 것은 덤.
물론 동시에 잘못되고 편향된 정보도 많이 가지고 계신다. 우리의 스몰토크가 책임감 있게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하는 정보 교환의 장은 아니니 이해할 만하다. 정치나 정책 및 사회 인식 등에 관해서는 유독 그렇다. 나는 그런 얘기를 하실 것 같으면 곧바로 대화 주제를 돌려버리는데- 그때 사용하는 기술은 질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걸 물으면 대답해주고 싶어 안달 나는 인간 심리. 그걸 살짝 이용한다. 중·노년 남성분들에게는 이 심리가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는 것 같다.
교통이나 사람. 내가 알고 싶은 것들은 기사님들의 전문 분야이니, 아무 길이나 가리키고는 “저쪽 길로 안 가는 이유가 있나요?”나 “요즘 축제 기간이라 취객들도 많이 타고 그러죠?”같은 질문이면 쉽게 마음에 드는 화제로 전환할 수 있다. 택시가 아니더라도 여러모로 삶에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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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스몰토크를 시도하기 어려운 연령대는 오히려 내 또래인 20대다. 젊은이들은 이어폰이 기본이다. 어려서부터 사이비나 전단지 배포원 등을 수없이 거쳐 오며 길러진 낯선 이에 대한 방어력도 심상치 않다.
때때로 등굣길에 버스 정류장에 가면 우리 학교 야구 잠바를 입고 있는 학생들이 있다. 가는 길도 같고 대화할 거리도 많으니 말을 걸고 싶지만 해본 적이 없다. 나조차도 젊은 여성들에게 “저도 여기 학교 다니거든요.”로 시작하는 사이비 전도 멘트를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부디 다른 학생이 말 한 번만 걸어주면 좋겠다.
낯선 이와의 스몰토크에서 가장 유의하는 점은 수상해보이지 않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수상해 보이는지 아닌지를 구분하기가 은근히 어렵다. 스몰토크를 가볍게 하려는 사람 정도로만 보여야 한다. 누군가에게 해가 되어서도 안 되고 과도하게 관심을 보여서도 안 된다. 딱 대화를 할 정도의 관심과 칭찬을 할 만큼의 사회적이고 호의적인 태도, 깔끔한 옷차림과 적당한 눈웃음, 약속 가는 길 같은 분위기.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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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토크는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대화지만 결코 작지 않다. 감동의 크기는 오히려 긴 대화보다 클 때가 종종 있다. 일상의 예상치 못한 순간에 하게 되는 이야기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사랑하는 것에 대한 경우가 많다.
별똥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에서 중요한 점이 무엇인지 들어보았는가? 별똥별이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에도 떠오를 정도의 간절한 소원이니 이루어질 만하다는 것이다. 그 순간처럼 짧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서 나도 모르게 품고 있던 애정과 소망이 불현 듯 발견될 수 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한 인간의 작은 조각을 듣는다. 어디로 가고, 누구와 살고, 모자 이야기를 듣고, 집값에 등 터진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분명 이 거대한 도시의 티끌 같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어딜 가든 귀에 채일 만한 이야기들. 그러나 그로인해 나의 사랑의 크기는 점점 커져가고 있다.
습하고 쾌쾌한 버스에서 옆 사람과 말 한 마디라도 하면 공간이 조금 밝아진다. 사람의 마음에는, 적어도 내 심장에는 사람을 인식하는 조명이 있다. 신발장 전등같은 것. 사람을 인식하면 탁 밝아지는 센서등. 기척만으로도 제멋대로 밝아져버리는, 어느 조명보다 가까워 눈부시는.
세상을 돌아다니는 수많은 버스와 수많은 열차, 수많은 장소들. 그 중에 어느 한 곳에 함께하게 된 것은 우연이지만 용기 내어 대화해보는 것은 모든 걸 다르게 만든다. 마치 우리가 만나기 위해 오늘의 우연이 존재했다는 듯, 우연을 필연으로 자아내는 일.
그러니 오늘도 운좋게 갖고 태어난 입술을 달싹여 용기어린 필연을 걸어본다. 걸까, 말까. 걸까, 말까. 수없이 고민하다가 겨우내 한 마디 건넨다. 눈길 한 번이라도 받으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필연!
모두 다른 색깔의 필연에 다른 필연을 더한 것을 시간 위에 굴려 기억으로 뭉쳐놓는다. 잠들기 전 도로 기억해보기를- 참 즐거운 대화였고, 참 재밌는 하루였고, 참 좋은 여행이었네.
유안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