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여러분들에게도 생소할 이름인 비리얼(BeReal)은 한국에서는 그다지 사랑받지 못하는 앱이다. ‘아직’까지는.
인스타그램은 안 하는 사람이 드물고, 블로그도 대유행하고 있는데 비리얼 같은 SNS가 유행이 아니라니 비리얼 러버로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비리얼 제발 한번만 깔아봐.”, “나랑 비리얼 하자.” 하며 여기저기 찔러봐도 냉담한 반응밖에 받지 못하는 처지다.
비리얼은 ‘하루에 한 번 친구들과 사진 속 자신의 실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사진 공유 앱’이다. 잘 이해되지 않는 분들을 위해 실제 비리얼을 사용하는 과정을 알려드리겠다.
비리얼에 가입하면 먼저 비리얼을 사용하는 연락처 친구 목록이 뜬다. 그중에서 자유롭게 친구를 추가할 수도 있고, 아이디를 직접 검색해 추가할 수 있다. 모르는 사람이나 적당히 아는 사람보다는 Real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친한 사람들끼리 친구 추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리얼 유저는 하루에 한 번, 불시에 “Be Real해질 시간입니다.” 라는 알림을 받게 된다. 주어진 시간은 단 2분. 알림이 울리고 나면 즉시 눈 앞을 촬영한다. 길거리든, 밥상머리든, 화장실이든 찰칵 소리가 나면 안 되는 장소 빼고는 무조건 찍는다.
후면 카메라를 이용해 찍으면 전면이 함께 촬영된다. 마찬가지로 전면 카메라를 이용해 찍으면 후면도 촬영된다. 후면과 전면을 동시에 보면서 촬영할 수는 없다.
그러니 후면과 전면 중 하나는 반드시 각도 조절 같은 연출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리얼한 사진이 된다. 가리고 싶은 걸 가릴 수 없고, 담고 싶은 것만 담을 수 없는 후면 사진. 그리고 이상한 표정, 왕뾰루지, 세수도 안 한 맨 얼굴이 그대로 담기는 전면 사진.
물론 재촬영은 가능하다. 하지만 사진이 업로드될 때 ‘다시 찍기’ 횟수가 함께 표시된다. 비리얼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다시 찍기 횟수가 1-2회가 넘어가면 안 된다. 다시 찍기를 네다섯번 한 사진을 올리면 “리얼하지 못해”와 같은 야유와 비난 댓글이 쏟아진다.
다른 SNS와 마찬가지로 댓글을 달 수 있고 이모티콘으로 반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반응 방식이 조금 독특하다. 엄지, 웃는 표정, 놀란 표정, 하트, 울면서 웃는 표정 중 선택해서 반응할 수 있는데, 이모티콘과 함께 그 이모티콘에 맞게 찍은 자신의 표정 사진이 함께 올라간다.
이 사진은 전에 반응으로 올린 사진을 그대로 사용해도 되고, 즉석에서 찍어도 된다. 이모티콘을 표현하려고 과장된 표정으로 찍은 친구들의 얼굴들이 꽤나 귀엽고 재밌다.
다른 sns와 다른 점이 하나 더 있다. 피드가 없다는 점이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등 모두 그 사람의 프로필을 클릭하면 이전에 올린 콘텐츠들을 모두 볼 수 있지만 비리얼은 오직 그날의 콘텐츠 외에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피드 꾸미기라는 개념은 비리얼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에 안 드는 사진을 찍혔어도 그대로 올린다. 어차피 내일이면 없어지는 사진이니깐.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 보이지만 나는 내가 올렸던 사진들을 모아볼 수 있다. 그 사진들을 구경하면 매일매일 내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어디를 가서 뭘 했는지가 들어온다.
99퍼센트가 별거 아닌 일상이다. 지난주 비리얼로는 버스 정류장, 카페, 침대, 내 방 책상, 칼국수 집, 차 안, 이불 속에서의 내 모습을 찍었다. 여행 갔던 것이나 특별히 맛있는 걸 먹었던 장면 같은 건 담기지 않았지만 어쩐지 가장 친숙한 내 모습이다.
비리얼에 대해 알게 된 건 작년 가을에서 겨울 넘어갈 즈음이다. 당시 막 친해지기 시작한 친구가(편의상 J양이라고 하겠다.) 자기가 하는 SNS라며 비리얼을 소개해주었다. 카카오톡도 인스타그램도 잘 하지 않는 J가 비리얼만큼은 매일매일 꼬박꼬박 올린다는 걸 알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그 거무튀튀하고 이상한 앱을 나도 깔아보고 싶어졌다.
J는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친구이다. 친구들이 걸어가고 있을 때도 멈춰 서서 뭔가를 찍고 있을 때가 많다. 친구들과 함께 아무 때나 셀카도 잘 찍는다. 잘 나온 사진, 이상한 사진, 땀 흘린 사진, 입에 뭔가 묻은 사진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저장한다.
갤러리에 자기 사진이 얼마나 어떻게 있는지가 자의식의 산물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잘 나온 자기 사진을 건지려고 열심히 찍는 건 외적인 장치로 자기 존재를 붙들어 놓기 위함일 수도 있다는 말... 그 말을 듣고 J를 떠올렸다.
J는 모든 것을 담아두기를 좋아하고 자기 존재 또한 열심히 담아두려고 하지만 그것을 자신이 지향하는 어떤 이미지에 끼워맞추려고 하지는 않는다. 내가 J의 사진을 마구 찍다가 J가 코를 후비고 있는 듯한 사진이 찍혔는데도 J는 지워달라고 하지 않았다.
이런 J의 태도는 타인에게도 적용된다. 우리가 재밌게 놀고 있을 때 J는 그 장면을 사진에 담는다. 그 사진 속에서 나도 이상한 표정일 때에 찍히는 경우가 더 많지만, 왠지 지워달라고 하기는 싫다.
비리얼은 그런 J의 갤러리를 보는 것 같다. 그동안은 굳이 찍을 필요성을 못 느꼈던 내 자랑할 것도 전시할 것 없는 말 그대로 리얼 내 모습만이 담긴다. 그곳에서 나는 뭔가를 잘 하는 나도, 열심히 하는 나도, 행복해하는 나도 아니다. 그냥 살아있는 나, 그냥 그대로 있는 나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에 친구들은 반응한다. 오늘도 역시 잘 살아있구나, 라는 느낌이랄까.
지금까지 영업을 제대로 성공한 적은 한 번 뿐이지만, 친한 이들에게 하는 비리얼 영업은 계속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나와 친하다는 죄로 이렇게 영업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