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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착한여성들 Feb 10. 2023

음식 사진이 열 장이면 사연도 열 개

먹고, 살다. 당신에게 '음식'이란?

이하녕 작가


커버 사진: 지난 여름 사랑에 빠졌던 고집불퉁 강곱창



‘용량이 부족하여 업데이트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128기가의 용량이 다 차서 내 아이폰은 아직도 구 버전이다. 얼른 용량을 정리하고 업데이트 좀 시키고 싶은데 그런 ‘큰일’을 하기엔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다. 128기가 중 사진과 동영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50기가. 무슨 사진을 그렇게 많이 담아두냐 묻는다면 조금 부끄럽다. 대부분 음식 사진이기 때문이다.              


매일 밤 집 앞 스터디카페에 다니던 시절

 음식 사진을 열심히 찍는 편이다. 지금은 덜하지만, 예전엔 정말 입에 들어가는 것 하나하나 사진을 찍었다. 놀러 가서 먹은 근사한 음식부터 집 앞 아이스크림 할인점에서 사 먹는 메로나도. 대부분 먹기 전 비주얼을 찍지만 완벽하게 그릇을 다 비운 것이 만족스러우면 그렇게 깨끗이 비워진 그릇을 찍기도 한다. 먹다가 너무 맛있으면 먹던 중이라도 찍는다.

 난 음식을 쌈처럼 잘 조합해 숟가락에 쌓아 한입에 먹는 걸 좋아하는데 (예를 들면 냉면 위에 고기 한 점, 쌈무로 데코.) 그렇게 쌓아 올려 입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장면을 매우 크게 확대해 찍는다. 이건 조금 더러울 수 있으니 여러분만 비밀스럽게 봐주었음 좋겠다.                                                                                                                       

 언제는 2019년 사진을 실수로 전체삭제한 적이 있었는데, 그 와중에 음식 사진만큼은 따로 폴더를 만들어 백업해둬서 살아남았다. 그래서 내 2019년은 오직 먹을 거 사진으로만 기억되는 해이다.   


   




 누군가는 음식 사진을 찍는 행위에 대해 음식 영정사진 촬영이냐고 한다. 잡아먹히기 전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거니 틀린 말은 아니다.

 여자들은 왜 그렇게 음식 사진을 유난스럽게 찍느냐고 은근히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밥이나 디저트를 앞에 두고 한참을 사진만 찍고 실제로 먹는 데는 관심 없는 여자들의 모습, 또 그것을 지루하게 기다려주는 남자들의 모습을 웃기게 표현하는 콘텐츠도 있다.


 음식 사진을 공들여 잘 찍지는 않지만 많이는 찍는 나로서는, 공감은 하는 바이다. 하지만 그게 웃긴지는 잘 모르겠다. 맛있는 음식 사진 찍는 게 어디에 올려 과시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것 때문에 음식 맛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우습게 볼 이유가 없지 않은가.

 SNS에 올리기 위해 그리 열심히 찍는 게 아니냐는 말은 반박하고 싶다. 나를 포함하여 SNS를 많이 하지 않는 친구들은 그렇게 열심히 찍은 음식 사진들을 그저 간직할 뿐, 어디 자랑할 목적으로 찍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가끔 갤러리를 탐방하며 맛있게 먹었던 것들을 되돌아본다. 음식 사진엔 그때의 기억이 꽤 선명하게 남아있다. 밥심에 집착하는 우리 한국인들이 약속이나 외출, 여행 일정을 보통 음식을 중심으로 세우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잡는 ‘밥약’, 회사 구성원끼리의 친목을 위한 ‘회식’, ‘다음에 밥 사줄게.’라는 감사와 사과 표현, ‘밥 한 끼 해야지.’라는 인사말까지. 모두 먹을 것을 사람과 사람 가운데에 두고 있다.

 





 혀의 기억은 꽤 정확하다. 음식 사진을 보면 그때 누구와 어디를 가서 뭘 했는지, 심지어는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까지 기억이 날 때가 있다.

 “우리 그날 건대 가서 자색고구마 붕어빵 먹고 저녁에 뇨끼 먹었던 거 기억 안 나?”라고 말하면 그때 붕어빵을 기다리다 옆에 있는 작은 사주 포장마차에 들어가 5000원을 내고 ‘금속 물질을 가까이하라’라는 조언을 들었던 것이 기억이 나며, 그 말을 들은 친구가 바로 액세서리 가게에 들어가 작은 금귀걸이를 샀던 것도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사주에 꽂혀 뇨끼를 먹으러 가는 길 내내 어릴 때 부모님이 봤던 사주 얘기, 대학 가기 전 봤던 인터넷 사주 얘기, 애정운을 볼 걸 그랬다며 연애 한탄을 하던 얘기까지 생생하다. 그러니 음식 사진을 남긴다는 건 그날의 가장 대표적인 기억을 기록하는 것에 가깝다.                                                                               

 음식 사진엔 내가 그 음식을 앞에 두고 느꼈던 즐거움도 담긴다. 잘 생각해보자. 음식 사진을 찍으면서 어떤 기분이었는지. 어릴 때 내가 짜증을 부리고 있으면 엄마가 늘 “밥을 안 먹어서 그래.”라며 얼른 뭘 먹여주곤 했다.

 엄마 말대로 정말 배고파서 기분이 안 좋았던 건지, 아니면 엄마의 세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밥을 먹다 보면 늘 기분이 좋아져 있었다. 약간의 부작용은 지금도 기분이 안 좋으면 뭘 먹어서 해결하려는 습관이 남았다는 거? 대신 실제로 기분이 급격히 좋아질 만큼 맛있는 것을 먹었는지와 상관없이 일단 먹고 나면 플라시보 효과처럼 기분이 개선된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침체된 기분으로 밥을 먹었던 적이 아예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적어도 맛있는 걸 찍겠다고 카메라를 켜고 있는 나는, 그 전에 어떤 기분이었든 간에 그 순간만큼은 일시적으로라도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먹을 것을 앞에 두고 기분 좋은 내 상태가 음식 사진에 담겨있다. 그러니까 음식 사진이란 건 기분 좋은 순간만을 모아둔 컬렉션이기도 하다. 가끔 그동안 아무것도 한 것도 없고 재미없게 산 것만 같을 때 지난날 먹었던 음식 사진들을 갤러리에서 둘러보자. 생각보다 꽤 잘 먹고 잘 지냈구나 싶을 것이다. 음식 사진은 지난 행복의 증거물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일은 너무 일상적이라 우리가 그다지 큰 행복이라 자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만큼 매일 반복되는 확실한 행복이기도 하다. 우리 삶이 음식과 끈끈하게 결합되어 있는 만큼 추억 역시 음식과 떼어놓을 수 없다.

안착한여성들과 줄 서서 기다린 수정붕어빵


 아직도 음식 사진에 진심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는가? 어제도 먹었고 내일도 먹을 음식을 찍는다는 게 의미 없어 보이는가?

 우리는 작은 즐거움을 간직하려고 한정된 저장공간을 내어놓는 것이다. 그러니 음식 사진 열심히 찍는 이들을 비웃지 말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물론 나는 사진 정리 좀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내일 밥상 사진도 찍어야 하니까.                             


작가의 이전글 잘 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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