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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착한여성들 Feb 09. 2023

잘 쌓겠습니다.

먹고 살다, '음식'하면 떠오르는 것.

모리 작가




 우리가 매일매일 하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음식을 먹는 것. 우리는 매일 음식을 섭취한다. 무언가를 입에 집어넣고 씹고 우물거린 뒤 삼킨다. 음식은 때때로 신체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생선 가시를 삼킨다면 바로 식도가 따가울 것이다.

 나의 경우엔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음식을 먹으면 바로 입술이 붓고 간지럽다. 상한 음식이라도 먹었다면 일정 시간이 지난 뒤 배가 정직하게 아파온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며 꾸준히 축적되어야 비로소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2년 전 이맘때 심각한 피부 질환을 앓은 적이 있었다. 피부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약국에서 약을 사 혼자 치료해보려다가 결국 뒤늦게 피부과에 갔다. 의사로부터 왜 이제야 왔냐고 한 소리를 들으며 어쩐지 민망해 머리를 긁적였다.

 다행히 약을 먹고 눈에 띄게 좋아졌지만 내 나이대에 쉽사리 걸리지 않는 병이어서 당시 가족들의 많은 걱정을 들었다. 그 병을 얻은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면역력 저하였다. 그러고 보니 그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을 때였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매 끼니를 잘 챙겨 먹었으면 좀 나았을까. 일상을 간신히 유지할 정도로 힘이 없다 보니 끼니를 챙겨 먹을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식사를 자주 걸렀고, 배가 고프면 핫초코 한 잔을 먹고 말았다.

 기껏 먹는 음식들은 스트레스를 풀겠다며 엽떡이니 불닭볶음면이니 같은 자극적이고 영양가는 별로 없는 음식들이었다. 먹을 당시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음식들만 계속해서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몸이 더이상 버티지 못했던 것만 같다.


 고등학생 때 학교 행사에 참여하느라 석식 시간을 놓쳤을 때, 선생님이 한 말씀이 기억난다. 당시 야자 감독 선생님은 나와 친구들에게 나가서 밥을 사 먹고 오라며 외출증을 써주셨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니겠니? 라면서.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너무 바쁘면 식습관부터 무너지기 쉽다. 엉망진창인 식습관과 함께 살다가 크게 아팠던 그 일 후로, 아무리 바쁘고 입맛이 없어도 최대한 무언가를 간단히라도 챙겨 먹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이왕이면 자극적인 인스턴트가 아닌 건강한 음식들로. 죽이나 견과류, 혹은 호밀 식빵 한 개. 귀찮으면 아보카도 반 개나 컵에 타서 먹는 콘스프만 먹고 넘어갈 때도 있었지만 적어도 영양제는 꼬박꼬박 먹으며 끼니 자체는 거르지 않으려고 애썼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도, 결국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일 테니. 그렇지 않더라도 먹고 사는 일을 멈추게 된다면 결국 전부 못하게 되니까.

 무언가를 잃어봐야 그 소중함을 안다는 진부한 말처럼, 잘못된 식습관은 바로바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꾸준히 쌓이며 부정적인 결과를 만든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되자 매일 먹는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꾸준히 축적되었을 때 비로소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들은 음식 섭취 외에도 많다. 아마 그중 하나는 운동일 것이다. 많고 많은 운의 종류 중 러닝은 모든 운동에서 형편없는 실력을 자랑하는 내가 유일하게 꾸준히 재미를 붙이고 한 운동이었다.

 

처음 구매했던 러닝화의 사진


 처음엔 30초를 연속해서 달리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체력이 바닥이었다. 조금만 달려도 심장은 무리라는 듯 뛰어대고 입안에선 쇠 맛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틀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밖으로 나가 조금씩 조금씩 달리는 시간을 늘리자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3달이 넘어가자 10분을 한 번도 안 쉬고 거뜬히 달리게 되었다. 10분이라고 하면 짧아 보이지만 일정 속도로 10분 동안 계속해서 달려본다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러닝을 쉬게 되자 체력도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와 버렸지만, 무언가를 꾸준히 하면 그 과정이 어디로 도망가지는 않는다는 걸 확실하게 느낀 날들이었다.   

 

 

 새해가 되다 보니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게 된다. 특정 분야와 관련된 실력을 늘리고 싶기도 하고, 꾸준히 돈을 저축해 그걸 바탕으로 재테크를 하고 싶기도 하다. 그중 대다수는 꾸준함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하루 이틀 시도해본다고 곧바로 유의미한 결과가 나타나진 않는다.


 나쁜 습관들을 고치는 것도 흔히 새해 목표 중 하나가 되곤 한다. 무의미한 유튜브 시청 같은 습관 대신,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면 아무래도 더 생산적으로 살 수 있을 테니. 그동안 머리론 알면서 정작 손가락은 유튜브에서 다음 쇼츠를 클릭하고 있었고 시간은 금세 흘러갔다.


 하지만 새해니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2023년이니까.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듯한 새 마음으로, 하루하루 조금씩 변화해보려고 한다. 매일 먹는 음식처럼 무언가가 축적되었을 때의 힘을 믿으며, 그리고 그 축적의 방향을 신경 쓰면서. 몸과 정신을 상하게 하는 방향 대신, 나를 건강하게 하는 쪽으로 말이다. 더이상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나쁜 결과를 불러오고 싶지 않다.


 그러니 매일 하는 행동을, 그 행동이 사소하든 크든 간에 잘 쌓고 싶다. 먼 미래에 돌아다봤을 때, 하루하루가 쌓인 모양새가 엄청나게 근사하고 멋진 건축물을 이루고 있지는 않더라도 뿌듯함 감정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올 한 해의 목표를 한마디로 말해본다면, ‘잘 쌓아보겠습니다!’가 정도가 될 것 같다. 그게 무엇이든, 건강한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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