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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착한여성들 Mar 12. 2023

이상형과 나? 나와 이상형? 이상형과 이상

'이상'에 대하여

          

 술자리 이상형 토크만큼 재밌는 소재가 있을까. 나는 다른 사람의 이상형을 듣는 게 왜 그렇게 재밌는지 모르겠다. 공감 가는 이상형이 나오면 아저씨마냥 어우 좋다~ 하기도 하고 이해 안 되는 이상형이 나오면 장난으로 질색하며 특이 취향이라고 몰아가기도 하는 재미가 있다.

 독특한 이상형이 나오면 왜냐고, 왜 그게 좋냐고 캐묻기도 한다. 남의 연애사엔 별로 흥미없으면서도 이상형 얘기엔 유독 귀 기울이게 되는 나는, 이상형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유형이 다 거기서 거기지, 싶겠지만 이상형 토크를 하면 생각보다 다양한 이상형이 나온다. ‘다정하고 착하고 멋있는 사람’ 같이 누구나 좋아할 특성을 말하는 사람은 은근히 별로 없다. ‘극단적이고 튀는 부분 없이 둥글둥글 무난한 사람’, ‘잘 하는 악기가 하나 있는 사람’, ‘책 읽는 게 취미인 사람’, ‘안경을 썼지만 시력은 좋은 사람’, ‘예의 바르고 너무 외향적이지는 않은 사람’...   

  

 이런 이상형들에 대해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거 그냥 너 아니야?’ 라는 말이 나올 때가 많다. 무난한 사람이 좋다는 친구는 스파오 앞에 전시된 마네킹 옷을 그대로 걸친 듯 무난하게 입고, 성격도 튀지 않게 둥글둥글 무난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지적받은 자신의 튀는 특성을 고쳐 조화롭게 어우러지기를 추구하는 친구였다. 잘 하는 악기가 하나 있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취미 이상으로 사랑하는 악기가 있는 친구였고, 책 읽는 취미인 사람 역시 취미가 독서였다.      



 기억에 남는 특이한 이상형도 있다. ‘아이폰에 기본 배경화면, 카카오톡 기본 프로필 사진인 사람.’ ‘신천지가 말 자주 거는 사람.’, ‘횡단보도 건널 때 절대 선 밖으로 벗어나게 건너지 않는 사람’...     

 이런 이상형들은 이유를 자세히 캐물어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아이폰 기본 배경화면이 이상형이라는 것은 자질구레하고 보여지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깔끔한 성격이 이상형이라는 것이고, 횡단보도 건널 때 선 안에서 건너는 사람이 이상형이라는 것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신이 정해둔 질서가 명확하고 그것을 책임감 있게 지키는 사람이 이상형이라는 것이다.           


 이상형은 결국 자신이 가진 면 중에 긍정하는 면, 자신이 추구하는 면을 가진 사람에 가깝다. 마음에 드는 내 모습을 가지면서 마음에 안 드는 약점은 보완된 사람, 다름에 끌리는 것도 결국 닮음 속의 다름에 끌리는 거라는 말이 있다. 다르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내가 지향하는 면을 갖고 있으면서 나와 다른 매력을 부가적으로 갖춘 사람에게 끌린다.          






 한번은 훠궈에 소주를 먹으면서 친구와 이상형 토크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친구는 평소에 늘 생각해왔다는 듯 준비된 대답을 꺼냈다.      


 “내 이상형은 살면서 크든 작든 고난을 겪었고 그것을 극복한 사람이야.”     


 왜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 친구도 이유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말에 그 친구가 고난을 겪었고 그것을 극복한, 혹은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고난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그 친구의 가치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을지도 알 것 같았다.      


 이상형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것은 이런 것이다. 오히려 자기소개를 할 때에는 자신의 추구하는 모습과 현재 자신의 모습을 구별하고 골라내느라 결국 겉으로 객관적으로 보여지는 자기 모습만을 말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몇 살이고, 직업이 무엇이고, 취미가 무엇이고 하는 것들. 하지만 이상형 토크에서는 자신의 지향점과 그 중요도, 우선 순위가 꽤나 솔직하게 튀어나온다.          

 구체적인 이상형을 가진 친구들은 특히 그 이상형의 모습과 가깝다고 느껴진다. 자신이 어떤 특성을 좋아하고 지향하는지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특성을 갖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은 분명하다. 스스로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사람일수록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구체적이고, 원하는 것이 구체적일수록 이상형이 구체적이다.      


 사람이 계속해서 변하듯 이상형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할 수 있다. 자유로운 사람이 이상형이었던 사람이 성실한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때는 더 이상 그 사람이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린 것일까? 꼭 그런 건 아니다. 자유가 싫어지고 성실한 사람이 되고 싶어진 것일 수도 있지만 단지 그 사람이 현재 가장 우선으로 추구하는 것이 성실함이라는 것을 말하는 걸 수도 있다.           






 어디선가 본 심리 테스트 중에 이런 게 있다.      

 

당신이 좋아하는 색깔은 무엇인가? 그 색깔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당신이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지와 관련되어 있다.     

 이에 대한 내 답은 노란색과 흰색. 이유는 ‘밝은 느낌이라서, 심플해서’ 였다. 정말 놀랐다. 밝고 심플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게 정확히 맞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이상형 역시 노랑과 하양처럼 밝고 심플한 사람이다. 현재 내 모습이 내 이상형과 얼마나 일치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노랗고 하얗게 살고 싶어하고, 그런 사람이 좋다는 건 분명하다.           




이하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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