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관하여
2023년 1월은 일본 여행의 달이었다. 일본 여행 규제가 풀림에 따라 너도 나도 일본으로 떠났는데, 주요 관광지에서 조금만 눈을 돌려 보면 일본인만큼 한국인도 많이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는 일본에서 한국 지인을 만날 수 있을 정도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나 또한 그 여행 대열에 합류했다. 1월 30일부터 2월 2일까지의 여정이었다. 캐널 시티, 별의 커비 테마 카페, 유후인 온천 등 많은 곳에 들렀지만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1시간 남짓 방문했던 텐진의 레즈비언 바에서의 경험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1월 30일, 동행한 가족들이 호텔에서 쉬는 동안 나는 택시를 타고 텐진 역으로 향했다. 왜 하필 텐진 역이냐고? 혹시 하카타의 레즈비언 바에 가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머릿속에 새겨놓도록. 레즈바는 텐진 역에 싹 다 몰려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검색했을 때 가장 상단에 나왔던 LOL101이라는 업소로 향했다. 한국에서도 레즈비언 바 도장 깨기를 즐겨했던 만큼 일본의 레즈비언 바도 가 보고 싶었다.
“이 건물의 지하로 내려가면 될 거예요.” 택시 기사님이 나를 내려주며 말했다.
기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건물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조금 어둡긴 했지만 한국 레즈바도 후미진 곳에 있는 경우가 많으니 이곳도 그렇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저녁 9시인데 지하로 향하는 문이 잠겨 있는 것이다……. 공식 트위터 계정을 보니 한창 영업 중이었는데 문이 잠겨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고민 끝에 나는 옆 건물 세븐일레븐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저…… LOL101이라는 가게에 가고 싶은데 문이 잠겨 있어요.” 아무리 레즈비언 바라지만 옆 건물 직원이니 가게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정도는 알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원은 남자 알바생이었고, 레즈비언 업소에 들어가는 방법 따위를 알 리가 없었다.
우리는 가게 입구에 서서 한참 고민하다가 지나가던 상급 직원이 “이 가게는 아마 뒤쪽 문으로 들어가야 할 거예요.” 라고 말해 줘서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LOL101에 처음 가는 사람은 꼭 기억하도록. 입구는 건물 뒤편에 있다.
지하로 내려가자 작은 가게가 하나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입구에서 직원과 대화를 나누는 손님들이었다. 아마 시간이 늦어서 퇴장하는 손님이었던 것 같다. 작은 가게라서 그런가? 그때부터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어지간한 단골이나 원래 지인이었던 사람이 아니면 대화를 잘 나누지 않기 때문이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바에 앉자, 바텐더 언니들이 말을 걸어 주었다.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고 하니 신기해하며 이것저것 물어봐 주었다. 이것이 일본 레즈바의 특징인지 바 LOL101만의 특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바텐더와 직원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혼자 가도 별로 어색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물론 이건 내가 일본어를 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텐더들이 한국어를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바텐더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런저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의 퀴어 용어부터 후쿠오카에도 레즈비언 클럽이 있다는 사실까지. 그리고 인상 깊었던 대화 중 하나는 내가 오기 전에도 한국인 손님이 온 적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한국에 있는 레즈비언 바에서 외국인을 만난 적이 거의 없었다. 퀴어 업소는 아웃팅 방지를 위해 업소 정보를 지도에 적어놓지 않는 경우도 많고 대체로 퀴어 커뮤니티에서 알음알음 공유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LOL101의 경우에는 전용 홈페이지도 있고 구글 지도에도 정보가 적혀 있지만, 후쿠오카 여행까지 와서 귀중한 시간을 할애해 레즈바에 술을 마시러 오는 경우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처럼 레즈바 도장 깨기에 미쳐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바텐더 언니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일본 여행 열풍이 돌면서 레즈바에도 사람이 유입되는 게 아닐까 싶다고 이야기했다. 여담이지만 다음 날, 이 업소 공식 SNS 계정에는 한국어로 된 영업시간 공지가 올라왔다.
LOL101에서 또 신기했던 점은 입장료가 따로 있다는 점이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몇백 엔의 입장료가 있고, 프리 드링크를 하나 주는 방식이었다. 다음 날 일반 바에 갔을 때에는 이런 방식의 입장료 제도가 없었던 것을 보아 일본 퀴어 업소의 특징인 것 같았다.
왜 일본 퀴어 업소에는 입장료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바텐더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특징 때문에 이런 입장료가 생긴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한국 퀴어 업소나 일본의 일반 업소는 입장료가 없는 반면 일행들끼리 마시고 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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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101에서의 경험은 내게 신선한 경험이었다. 평소에 한국 레즈비언 바 도장 깨기를 즐겨 했던 나로서는 새로운 퀴어 업소에 방문하는 게 즐거웠기도 하고, 한국과 다른 일본 레즈비언 업소의 특징을 찾아보는 것도 즐거웠다.
게다가 수다를 떠는 분위기다 보니 다른 손님들과도 수다를 떨 수 있었는데, 그 중 한 명과는 연락처 교환까지 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대화 코드가 맞지 않아서 금방 대화가 종결되고 말았지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소개팅 어플을 포함한 일본 레즈비언들과 대화를 해 보았을 때 다들 대화에 수동적이었다.
아무튼, 비록 얼마 있지 못하고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레즈비언 바를 비교해 보았을 때 미세한 차이로 일본 레즈바가 더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었을 정도니까!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과 수다를 떨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것 같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있는 여성 퀴어 중 하카타에 갈 생각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꼭 레즈비언 바에 들러 보길 바란다.
일리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