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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착한여성들 Dec 08. 2024

나만의 ‘치어’리더를 소개합니다

달여섯 작가


 자취 생활에 있어 가장 기묘한 점은, 내 몸 하나 건사 못하는 주제에 이것저것 키워보려는 호기로움이 든다는 거다. 어느덧 자취 5년 차인 나는 작은 원룸 공간에 걸맞은 작은 생명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나와 다른 매질 속에 사는 녀석들이 있다. 바로 구피이다. 구피는 사육 난도가 낮아 민물고기 중에서도 무난하게 키울 수 있는 대표적인 반려동물이다. 



 몇 년 전 어느 가게 사장님께 몇 마리의 성체를 우연히 분양받았던 게 시작이었다. 제 수명대로만 살아 주어도 충분히 기특하였을 텐데, 새끼들이 꾸준히 태어나주는 덕에 무려 3대째 생명력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는 세 개의 어항에 성체, 아성체, 그리고 1cm도 안 되는 치어들을 각각 분리하여 키우는 중이다. 덩치 차이가 크면 큰 녀석이 작은 녀석을 무조건 잡아먹는다. 


 문제는 출산 과정에서도 예외가 없다는 거다. 갓 태어난 새끼가 2초 만에 어미의 입 속으로 호로록 빨려 들어가 소멸하는 모습은 가히 경악스럽다. 여태 구피의 출산 장면을 여러 번 목격하였지만 도통 적응이 안 된다. 

 

 물론 구피에겐 그저 자연의 섭리일 뿐임을 안다. 그러나 인간인 나는 어쩔 수 없이 너무 많은 감정이 드는 것이다. 당황스럽고, 허무하며, 절망적이고, 괴상망측하다. 



 태어난 새끼를 어미와 곧바로 분리해 주는 부화통의 존재를 모르던 시절, 나의 최선은 배가 빵빵한 녀석을 옮겨 감시하다가 새끼가 태어나면 숟가락으로 다급하게 건져내는 것이었다. 


 이래 봬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태어나는 시점이 마침 내가 관찰하던 순간이어야 하며, 현란한 숟가락 스킬 역시 요구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치어 구출에 어렵게 성공하면 마치 내가 낳은 건가 싶을 정도로 도파민이 터지는 경험을 맛볼 수 있다. 실패하면 어미 구피를 허망하게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또 나만 진심이었지’. 





 구피 출산과 관련하여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 하나 있다. 바로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 새끼가 태어났던 일이다. 원래는 구피를 포함한 반려동물들을 전부 애인에게 맡기고 며칠간 본가를 다녀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떠나기 며칠 전부터 암컷의 배가 수상할 정도로 불룩해지는 것이다. 


 출발 직전까지도 새끼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짐도 많은데 언제 태어날지도 모르는 새끼를 위해 얘를 데려가야 하는 걸까? 가뜩이나 임신한 상태라 스트레스에 취약할 텐데 이동하는 동안 흔들려도 괜찮은 걸까? 기차에 올라탄 세 시간 사이에 정말로 새끼가 태어나면 어떡하지?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에 얽히고설켰다.



 그러던 와중 유독 선명한 질문이 하나 있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굉장히 선명하다 못해 불쾌한 질문이었다. 어미, 배 속의 새끼, 그리고 스스로에게 굉장한 실례를 범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는 사실이 실망스러웠다. 곧 새끼가 태어날 거란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내가 되고 싶지 않았다. 번거롭다는 이유로 새 생명의 가능성을 너무나 쉽게 포기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아무리 작고 하찮은 존재일지라도 말이다. 아니, 작은 것들이기에 더욱 애쓰는 미련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어항 속 물만큼이나 출렁거리는 마음으로 어미 구피와 함께 기차에 탑승하였다. 조마조마한 상황을 공유하고자 부모님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기차의 진동이 유도 분만을 일으킬지도 모르겠다는 어머니의 답장에, 잘은 모르겠지만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돌연 첫 새끼가 제 몸집만 한 난황을 달고 순식간에 등장한 것이다! 놀란 나는 숨 쉬는 법도 잊은 채로 치어 구출에 집중하였다. 임시 어항의 입구가 좁아 생각처럼 잘 되질 않았는데, 설상가상으로 기차가 터널을 지나기 시작하면서 내부가 캄캄해졌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많아 당황한 사이에 첫 새끼는 그렇게 어미의 밥이 되었다. 나는 허탈하고 속상한 마음에 잠시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포기할 때가 아니었다. 구피는 한 번에 여러 마리를 연달아 낳기 때문이다. 울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숟가락을 쥔 채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새끼가 태어났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든 말든 5분 남짓한 시간을 끙끙대며 숟가락을 휘저어댔다. 씨름 끝에 나는 준비해 온 기다랗고 작은 통에 새끼를 분리해내는 데 성공하였다! 


 마치 세상을 구할 신약을 개발한 연구원처럼 치어가 담긴 통을 눈높이까지 들고선 한참을 쳐다보았다. 창 너머로 쏟아지는 햇빛에 옹골지고 투명한 모습이 드러났다. 아까 잡아먹힌 녀석보다 몸집도 난황도 작았지만 퍽 건강해 보였다. 너무나 많은 감정들이 폭죽처럼 터졌다. 세상에 이보다 멋진 탄생 비하인드를 지닌 물고기가 또 있을까. 


 녀석을 조심히 데리고 무사히 본가에 도착하고 나니 세 마리가 더 태어났다. 결국 자취방으로 돌아올 땐 총 네 마리의 새 생명과 함께 귀환할 수 있었다. 


 흔들리는 기차에서 갓 태어난 치어를 관찰하던 순간은 실로 오랜만에 내게 탄생의 지난함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경험이었다. 정말이지 모든 생명의 탄생은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탄생 이후의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다. 취약한 치어 시절엔 원인 모를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녀석들은 한 마리도 빠짐없이 잘 커가는 중이니 다행스러울 따름이다.






 나이가 들면서 크고 작은 일에 무뎌지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주변에서는 ‘그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야’라며 나를 위로하지만 글쎄, 잘 모르겠다. 우리는 왜 사소한 것들을 짓밟으며 어른이 되어야 하는 걸까? 


 정말로 이런 게 어른의 정의라면,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갓 태어난 치어와 함께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내린 결론이다. 만일 내가 그때 고작 치어 한 마리 때문에 고생하냐며 수고로운 과정을 쉽게 포기하였다면? 아마 나는 앞으로 점점 더 큰 생명의 탄생에 무뎌지는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작은 생물을 기르다 보면 어른의 정의를 달리하게 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살면서 어찌할 수 없는 무수한 무뎌짐 속에서도 ‘무뎌지지 않는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말이다. 


 작은 생물을 잘 키우려면 무뎌지지 않는 연습을 자연히 할 수밖에 없다. 너무 작아서 놓치기 쉬운 사소한 특징이나 변화를 잘 포착해야만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소하기에 소중하고, 또 소중하기에 사소한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면, 치어 형제들을 키워보는 건 어떨까. 일렁이는 햇살마냥 헤엄치는 녀석들을 눈에 담다 보면 깨닫게 될 것이다. 


 어느 순간 나만의 ‘치어’리더가 된 녀석들의 존재를 말이다.





작가 달여섯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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