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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착한여성들 Dec 10. 2024

만 24세 대졸 캥거루의 고백

유안수 작가

          


 나는 서울에 사는 만 24세, 막 대학을 졸업한 문과 출신 캥거루족이다. 


 사실 이 호칭을 볼 때마다 캥거루에게는 좀 유감이다. 캥거루는 성체가 되면 인간보다 일찍이 가정을 꾸리고 자기 새끼를 주머니 안에 넣지 않는가. 오히려 캥거루 중에 독립하지 않는 독특한 개체가 있다면 그를 가히 ‘인류’, 아니 ‘서울 본가 거주 청년’이라고 칭하는 게 이치에 맞다.      


 역시 ‘끼리끼리’는 사이언스인지 내 주변에는 캥거루가 많다. 


 이유는 단순하다. 초3부터 서울에 살았고 고등학교도 동네의 평범한 인문계를 다녔기 때문이다. 서울이 본가인 친구들이 배정받는 학교만 다녔던 셈이다. 대학에 와서야 다양한 고장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을 보았으니 좀 편협한 인생이었다.     







 중학교는 질풍노도의 시기라 우정도 질풍과 노도에 휩쓸려 사라지고 말았기에, 대부분의 우정이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이어져 오고 있다. 지방으로 대학을 진학한 고교 동창들 외에, 다른 친구들은 보통 다음의 신분 중 하나다.      


 -재수 혹은 편입 혹은 휴학을 해서 여전히 대학생

 -대학원생 

 -회사원 등 사회초년생

 -전문직 시험 준비생

 -취업, 진학 등을 확정하지 못한 채 대학을 졸업한 사람 


 마지막 신분이 바로 나의 상황이다. 가장 문제적인 신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름대로 준비하는 게 있기는 하지만, 정부 통계상으로 대략 ‘쉬고 있는 청년’에 속할 테니 기분이 영 좋지 않다. 자연스럽게 캥거루족으로 보내는 기간도 길어지는 실정이다.   

  


 물론 누구나 알다시피 캥거루족으로 사는 건 큰 이점이 있다. 


 일단 서울에서 16년의 초-중-고-대 시절을 모두 본가에서 보냈으니 정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누구나 지금까지 살아왔던 곳에 큰 문제가 없다면 계속 사는 게 편한 건 당연하다. 본가에서 지하철역은 다소 멀지만 걷기를 좋아해서 괜찮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서울은 더 많은 기회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을 없을 테다.    

 

 50대 초반의 부모님도 자식들이 본가에 더 오래 있기를 바란다. 결혼하면 떠날 건데 벌써 보내기는 싫다고. 아직은 3살 위의 오빠와 나 모두 결혼 평균 연령이 아닌지라 위기감이 없으신 게 다행이다. 적어도 몇 년간은 큰 압박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주거 환경도 나름 만족스럽고 부모님과의 갈등도 크게 없으니 사사로운 문제들은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갈 수 있다.    





 안다. 나는 굉장히 축복받았다. 많은 대학생들은 본가에서 대학이 멀어서 떠나고, 누군가는 대학이 가깝더라도 부모님과 못 살겠다며 자취하기도 하니까.      


 모교 앞에는 고시원이 많았다. 예전에 잠깐 고시원에 살아본 적이 있었는데, 몇 년 전이었음에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A4용지 크기의 창문이 복도 쪽으로 나 있고, 방 안의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면 방 전체로 습기가 퍼지는 그런 방. 고시원만이 유일한 선택지인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걸 알기에, 내가 캥거루족임을 사람들에게 쉽게 말하지 못한다. 부끄러우니까.     



 누군가는 진정한 어른이 되려면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정한다. 자취하는 친구들이 집 구하러 다니는 걸 보면 새삼 세상 물정 모르는 머저리임을 깨닫는다.      


 고생 사서 할 것 없다지만, 사실 진짜 고생 없이 순탄히 살다 보면 시야가 좁고 취약한 인간이 된다. 인간은 고생이 없이 편안하기만 하면 쉽게 추해진다. 


 나는 성장하기 위해 마땅히 겪어야 할 최소한의 고통마저도 온전히 겪어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아주 물렁물렁하고 취약한 존재라는 느낌이 강하다.      







 본가에 거주하는 이점과 ‘진정한 어른 되기’가 지연되고 있다는 위기감 사이에서, 과연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고민이 된다. 


 애초에 사회적으로 주거비용이 낮아지는 게 청년들에게는 가장 좋은 방안이겠지만 한없이 요원해 보일 따름이다. 서울에서 그럭저럭 먹고 살아가는 세대주의 자식이라면 대부분 청년주거비용 지원 정책 대상자도 아니다. 아르바이트 이외에 아직 취업을 안 하고 있으니,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독립이 그저 ‘쌩돈’ 나가는 셈이다. 


 이외에도 고려할 사항은 수없이 많고, 생각하면 할수록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은 부모님의 것일 뿐, 나 스스로 가진 것은 정말 쥐뿔도 가진 게 없다는 걸 인지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되뇐다. 

 


 '아직 진정한 어른은 못 됐을지언정, 지금의 삶이 진정하지 않은 건 아니야.'



 계속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단을 내리고는 그대로 고개 들고 나아가리라 단단히 마음먹는다. 나를 사랑하되 자기 연민은 하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



 앞으로 브런치에 진로의 방향성과 독립 준비 과정을 느리게나마 담아보고자 한다.      


 솔직히 서울에 사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게 떳떳하지도 않고, 혹자는 내 글을 읽고 나의 게으르고 한심한 성정이 때로 욕하고 싶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앞으로도 글을 적어나가고자 한다.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다른 처지의 누군가에게는 관점 확장의 계기를, 무엇보다 나에게는 자기 객관화의 방도가 되어주리라 생각하고 계속 써보겠다. 




작가 유안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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