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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훈 Jan 17. 2023

통증, 천재의 바보짓을 믿은 결과

통증의 뒷모습, 감정


통증, 천재의 바보짓을 믿은 결과



만성통증 환자들과 살다 보니 통증의 뿌리에 대해 늘 호기심을 놓지 않고 있다.


오늘 아침엔 만성통증의 뿌리에 데카르트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했다.


오늘은 우리 환자들을 괴롭히는 이 세기의 천재가 했던 멍청한 생각에 대해 욕지거리를 좀 하고 싶다.


분명히 구분하고 시작하고자 한다. 앞으로 알아볼 통증은 외상에 의한 급성통증이 아니라 만성통증에 관한 이야기이다. 급성통증은 현대의학이 비교적 잘 해결해 나가고 있기에 의학이 발달한 지금도 여전히 내 환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만성통증에 관한 이야기이다.



통증의 원인에 대한 첫 번째 과학적인 접근


아래의 그림은 현대인들도 대체로 인정하는 통증의 발생원리이다.



1. 유해 자극 : 발이 불에 가까이 가서 화상을 입으니


2. 조직 손상 : 피부가 손상이 되고


3. 신경 전달 : 통각신호가 말초신경과 척추를 따라


4. 통증 인식 : 뇌에 까지 도달하여 통증을 일으킨다.



어떤가? 논리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닌가?


이 이상 통증에 대해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이렇게 느꼈다면 당신은 17세기의 천재가 만든 바보짓에 걸려든 셈이다.


데카르트의 바보짓이 지금까지도 통증환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 통증 모델은 데카르트의 책에 나오는 삽화이며 그 이전까지 막연하게 느끼기만 했던 통증과 신경, 뇌의 문제를 과학적 실증주의의 틀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 주술적 요소들이 가득한 중세나 고대의 신화적 개념에서 진일보한 것에 대해서는 박수를 쳐 줄 만하다. 그러나 그의 과학적인 접근이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환영처럼 환자들과 의사들의 머릿속을 떠돌고 있다.




마지막 중세인이자 첫 번째 근대인, 데카르트


17세기의 데카르트가 철학계와 과학계에 남긴 업적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수학자로서 좌표계를 만들어 공간을 디지털화함으로써 대수학과 기하학을 통합하였다.


'인간론'에서는 동물과 사람에 대한 자세한 해부도를 관찰하여 신경과 뇌, 감각에 대한 자신만의 이론을 펼쳐 보였다.


데카르트의 인체에 대한 이해


그가 남긴 뇌의 해부도나 인체에 대한 설명은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다르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다. (물론 그 기능에 대해서는 오해도 꽤 있다.)


데카르트는 수학자이자 과학자였고 생물학자였다. 아래 그림을 보면 그가 인체를 얼마나 과학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광학의 영역에서는 시각과 관련하여 상당한 정도의 지식을 확보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과학자 이전에 철학자였다. 사람을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모델로 인식한 것이 상당히 합리적인 접근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심각한 이원론에 빠지고 만다. 사람의 몸을 마치 물리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처럼 인식한 것이다.


데카르트식 인식의 유용성과 그 한계


특별히 통증에 대해서도 이렇게 이해한 것이 통증의 생물학적 모델의 기반이 되었다. 이런 방식의 인체에 대한 접근은 외상이나 기형과 같은 해부학적 이상이 동반된 상황에 대해서는 상당히 과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서가 되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기능적 통증과 신경계에서 발생하는 통증에 대해서는 별다른 해답을 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같은 17세기 조선에서 제일가는 의료전문가였던 허준 선생의 책에는 해부학적인 정밀도와 정확성의 면에서 너무도 비교가 되는 수준의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것은 인체의 형태보다 기능적 연결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양적 인체관의 반영일 수도 있다.)


데카르트가 그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비교가 되는 사물의 이치에 대한 그의 독창적이고 통합적인 시각이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은 사실이다. 모든 사물의 이치를 신을 중심으로 이해하던 시대를 끝내고 드디어 인간의 이성이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는 역사적인 첫 단추를 그가 끼운 것이다.


르네 데카르트, 그는 실로 중세를 끝내고 근대를 여는 선구자였음이 틀림없다.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생물학자, 광학기술자, 발명가이자 둘도 없는 철학자였다. 천재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천재가 했던 바보짓, 감정을 낭떠러지로 밀어 버리다.


모든 천재의 말이 진실은 아니다. 당대에만 유용하거나 특정 상황에서만 진실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성을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은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뇌로 생각하는 이성적 인간만이 인간의 가치가 있고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 독특하거나 독창적인 사고(그중 일부는 현대에서는 정신질환이라 불리기도 한다.)를 하는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말이다.


그런 천재의 말이니 우리 같은 사람이 믿는 것이 당연하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의 이런 이성중심적 세계관이 프랑스의 대감금 시대를 열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동네에 머리에 꽃을 꽂고 해맑은 얼굴로 돌아다니던 처녀, 코미디에 나오는 영구와 비슷한 느낌의 마냥 즐겁거나 가끔 이해할 수 없는 바보 청년이 한 둘은 있었다. 17세기 프랑스에도 이런 사람들이 똑같이 있었는데 이성중심의 세계관이 자리를 잡으면서 이들은 더 이상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일제히 한 군데 몰아넣어서 감금시켜 버렸다. 이들을 수용하였던 곳이 종합병원의 기원이다. 그 당시 파리 인구의 1% 이상이 이곳에서 손발에 쇠사슬을 찬 채 비이성적인, 거의 동물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다. 지금의 의학적 기준으로는 정신질환이라고 진단을 받지만 그 당시는 이들 모두 조금 다른 평범한 동네 형, 누나였을 뿐이다. 이성은 이렇듯 둘로 나누어 하나를 취하고 하나는 비정상이라는 이름으로 배제하는 역사의 서막을 열었다. 신을 중심으로 인간을 배제하던 시대가 이성을 중심으로 비정상을 배제하던 시대로 바뀐 것이다. 이성이라는 새로운 기준이 광인을 만들어 낸 것이다.


데카르트는 분명히 천재였다. 

그러나 17세기의 천재이다. 

내가 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둔재라도 나는 21세기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마음과 몸을 둘로 나누고 몸은 철저히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원칙을 따른다고 믿었다. 통증에 대한 그의 관념도 마찬가지다.


자극이 크면 조직 손상이 크고

조직 손상이 크면 통증이 크다.


너무도 자명해 보이는 이 말이 오늘날 만성통증을 만들고 있는 데카르트로부터 시작한 심신이원론의 함정이다.



21세기를 지배하는 통증의 개념은 데카르트의 잔재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데카르트의 통증모델을 대입하여 통증치료를 하고 있다.


조직손상이 생긴 부위는 상처를 치료하거나 수술로 조직을 회복한다. 

조직에 염증이 있다면 염증을 줄이는 약을 쓴다.

통증신호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말초신경을 차단하거나 척추마취를 통해 통증을 차단한다.

뇌의 의식을 통제하여 전신마취를 하거나 오피오이드 계통의 진통제를 쓴다.



얼마나 깔끔한 방법인가?


정말 그렇게 생각이 드는가?


그렇다면 다음 나의 물음에도 답을 해주면 좋겠다.




그런데 왜 만성통증 환자는 줄어들지 않을까?


나의 경험은 계속 쌓여 가는데도 여전히 만성통증 환자들은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질까?


현대의학의 최첨단 진단장비는 갈수록 고도화되는데 통증환자는 줄지 않을까?


수술방법도 엄청나게 발달하고 로봇이 수술을 할 만큼 정교해지고 있는데 왜 만성통증 환자는 여전히 여러 병원을 전전하고 다닐까?



다음 시간에는 사회가 발달할수록 만성통증환자가 늘어나는 배경에 대해 더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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