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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훈 Jan 27. 2023

통증, 현대인의 치명적인 감정

통증의 뒷모습, 감정(2)

현대인의 치명적인 감정, 통증



문명화된 사회는 지난 100년간 통증분야에서 엄청난 진보를 이루었다. 세포와 유전자의 구조를 밝혀냈고 수많은 신경전달물질과 뇌의 상호작용을 파헤쳤다. 마취기술과 인공관절, 장기이식기술 등이 발달하여 어려운 수술도 가능해졌고 심지어는 로봇이 정교한 수술을 하기도 한다. 통증을 조절하는 약물과 세포재생기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상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의학적인 발전의 혜택을 누리는 선진국은 왜 여전히 100년 전 정도의 의학 수준을 가진 후진국에 비해 만성통증환자는 더 많을까?


약 17년간의 통증분야에서 환자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도 아직도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궁금증이 있다.


의학 수준도 발달하고 나의 경험도 계속 쌓여가는데 왜 만성통증 환자는 줄어들지 않을까?


나는 왜 만성통증 환자 중 일부밖에는 해결할 수 없을까?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환자분들의 통증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래 그림은 신을 중심으로 이치를 파악하던 중세에서 근대로의 혁명적인 전환을 가져온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바탕으로 통증의 개념을 파악하고 치료하는 생물학적 통증모델이다.


그가 이성을 바탕으로 인체를 이해하려고 했던 것은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다. 급성통증에서는 대체적으로 활용가능한 모델이지만 (때론, 급성통증에서도 예외가 종종 있다.) 만성통증에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가 되는 개념이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21세기에도 여전히 이런 모델을 이용하여 통증을 해결하려고 하니 통증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통증은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개념이다.


의료전문가 집단이 어떤 개념을 따르는가에 따라서 치료방법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중세에는 질병이나 통증이 신의 저주라고 생각했다. 신을 모든 이치의 중심에 둔 사람들이 선택했던 통증모델은 석기시대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의학은 전 세계 어디나 대체로 비슷한 정도에 머물렀다. 서양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사회와 다를 바 없었다. 뇌와 신경계의 작용에 대한 무지, 미생물에 대한 무지, 생리학, 생화학에 대한 무지는 4 체액설과 같은 관념적인 의학지식에 머물렀고 그 정도의 개념에서는 그 수준의 치료 밖에는 없었다.


통증의 잃어버린 고리, 감정


세기의 천재인 데카르트의 철학과 수학, 과학적 지식이 미스터리였던 통증의 생리학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안타깝게도 이성이 최고의 위치로 올라가는 덕분에 몸은 기계가 되고, 감정은 이성을 방해하는 하찮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완전하게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가 이야기한 대로 이성적 사유가 인간의 존재적 본질이라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느낌을 무시하고도 생각이 가능할까? 느낌 없는 생각이란 게 있기나 할까?


그래서, 나는 이성을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데카르트를 만나면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느낀다. 고로 생각한다.


감정이 빠진 생각이라는 것이 사람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만일, 가능하다 하더라도 자칫하면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이 아무런 느낌 없이 수백만의 사람들을 기계적으로 죽이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았던 언어처럼 될 것이다.


"공식적인 언어(암트슈프라헤)를 하달받으면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기계처럼 자동적으로 그 일을 수행한다. 연민과 같은 감정이 개입될 여지는 없고 이 일은 굉장히 간단하고 단순하게 진행된다." 전범 재판에 회부된 나치 친위대 중령 아돌프 아이히만의 생각이다.




통증과 고통 사이, 그곳에 감정이 있다.


통각, 통증, 고통


통각은 해로운 자극이 신경회로를 따라 뇌로 전달되기까지 이어지는 감각신호의 상향식 전달이다. 시상을 거쳐 일차감각피질에 도달하기까지 이 감각신호는 자극적인 신호이긴 하지만 아직은 중립적이다.


통증은 받아들인 감각신호가 생존에 위협이 되는 것인지 여부를 기억을 기반으로 감정을 일으킨 결과이다. 시상까지 도달한 감각신호가 뇌섬엽(insula)과 전대상회(ACC Anterior Cingulate Cortex)로 이어지면서 감정을 일으킨다. 순간적인 느낌은 뇌섬엽에서 바로 편도체(Amygdala)를 자극한다. 편도체를 자극하면 두려운 감정이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다른 감정보다 두려움은 즉각적으로 행동을 일으키는데 만일 생존에 위협이 되는 것이라면 즉시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대상회로 이어진 감각신호는 다양한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과 결합하여 통증의 수준을 결정한다. 전대상회에서 감정과 결합한 통증은 전전두엽(PFC PreFrontal Cortex)으로 이어져 통증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전전두엽은 통증의 정도와 생존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를 고려하여 하행성 통증억제(modulation of pain) 기전을 일으킨다.

모래사장에서 조개껍데기를 밟으면 통각신호를 얼른 알아채고 깜짝 놀라서 발바닥을 살펴볼 것이다. 한편, 마라톤을 하는 도중 다리에서 올라오는 통각신호가 올라오고 심장박동 증가로 통각신호가 증가하지만 목표를 위해 감내할 만한 것이라고 여긴다. 때로는 오히려 이렇게 심장이 뻐근한 극한 상황에서 더욱 벅찬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시상하부(Hypothalamus)는 자율신경과 우리 몸 전체를 조절하는 원초적 자아 self에 해당하는 부위이다. 시상하부는 감정과 기억을 참고하여 통증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아래로 신호를 보낸다.  뇌의 보상회로 중추인 측좌핵(Nucleus Accumbens)과 기저핵(Basal Ganglia)에서 기쁨과 몰입을 일으키는 도파민을 분비하고, 봉선핵(Raphe Nuclei)에서 만족과 평온한 느낌을 주는 세로토닌을, 청반(Locus coeruleus)에서는 의식적 각성을 일으키는 노르에피네프린 등의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한다. 중뇌수도관 주변의 중뇌수도회색질(PAG PeriAqueductal Gray), 연수 주변(Rostral Ventromedial Medulla)에서 오피오이드 계통의 천연 진통물질인 엔도르핀과 다이돌핀을 얼마나 분비할 것인지를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결정한다.


고통은 하향식 통증억제 회로가 작동하지 않고 뇌섬엽과 전대상회, 전전두엽, 편도체가 참고하는 자료인 기억이 불안에 물들어 있을 때 쉽게 발생한다.


뇌 안에서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감각을 종합하여 자신의 기억과 주의력, 사회 문화적 맥락, 감정을 바탕으로 판단한다.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신호라고 판단되면 통각을 통증으로 변환한다. 통증이 자신의 삶의 목적에 어떻게 쓰일 것인지를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결정이 구체적 실체로 바뀌게 된다. 뇌 안에서 자극에 의미를 붙인 후 그 기대는 자그마한 오솔길이었던 것이 점점 큰 고속도로가 되어 자극이 느껴지는 순간 순식간에 넓은 고속도로를 통과한다. 그러면 외부 자극에 대한 뇌의 반응이었던 것이 점점 더 외부의 객관적 실체처럼 느끼게 되고 통증이 점점 고통으로 바뀌게 된다. 외부적 실체는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므로 통증이 나의 통제 밖에 있게 되므로 고통스러워진다.


급성통증에서는 자극의 크기가 통증의 크기와 비례하지만 만성통증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때때로 전혀 관계가 없을 때도 많다.


만성통증에 대해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감정이라는 블랙박스를 열어 그 속을 들여다보자.


"Between pain and suffering, there is a black box.

In that box, is our power to choose our emotion.

In our emotion, lies our quality of life."


"통증과 고통 사이에는 블랙박스가 있다.

그 박스 안에 감정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 감정 안에 우리의 삶의 질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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