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의사(17)

인턴 생활 (4) - 응급실에 그랜저 몰고 오는 의료급여 환자

by 김정훈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의사 : 열 일곱번째 이야기. 응급실에 그랜저 몰고 오는 의료급여 환자들..


인턴생활 중에는 자기 한 사람 몫을 챙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도 가끔 마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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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의료원은 경주와 상주, 안동 등지에 협력병원이 있는데 인턴생활 중반을 넘기고 나서 이제 제법 그런대로 의사흉내를 낼 때 쯤, 경주 동산병원 응급실로 파견을 갔다. 낮에는 응급실이 비교적 한산해서 여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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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시골마을 정취를 만끽하며 응급실 바깥 창문을 내다 보고 있는데 그랜저 한 대가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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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금목걸이에 있음직하게 치장을 한 탄탄한 체구의 아저씨는 배가 아프다며 진찰을 원했다. 신체검진을 해보니 서지컬 업도멘surgical abdomen(수술이 필요할 만한 복통)은 아니었다. 응급실에서는 복통이 있더라도 서지컬 업도멘surgical abdomen이 아니면 중요도가 뚝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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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있게 환자의 병력을 정리하며 약을 처방하고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굳이 정밀 검사를 원하는 것이다. “응급실은 진찰료며 검사료가 일반병원 보다 훨씬 비쌉니다. 응급상황이 아닌데 굳이 여기서 검사하실 이유가 없습니다.”하며 만류했지만 막무가내였다. CT촬영은 의미가 없을 듯 하여 간단한 엑스레이 검사와 혈액검사를 했고 특별한 이상소견은 없어서 약을 처방해서 퇴원처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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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아저씨는 수납창구에서 계산을 하지 않고 검은 그랜저를 타고 유유히 다시 왔던 길을 나가는 것이다. 이상해서 수납창구에 물어보니 의료급여 환자라서 돈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입에서 욕이 절로 튀어 나왔다. “아니 뭐 이런...” 정말이지 어디에 신고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금을 제 주머니 돈 알 듯 하고 교묘하게 법망을 이용하는 이런 류의 사람을 응급실 일을 하며 꽤 여럿 보았다.

벌써 오래전의 이야기이니 지금은 분명히 제도가 개선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도 이런 정도의 불법은 눈도 하나 꿈쩍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수완이 좋아서 사회의 혜택을 잘 이용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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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가 경쟁해서 올라서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는 사람들을 자꾸 양산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나는 그런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갈 능력도 안 되지만 그렇게 해서 올라간 곳은 위태롭기 짝이 없을 것 같다.


“위태로운 행복은 원하지 않아...”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의 강연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미국의 한 지역사회를 조사한 결과 친한 친구가 행복하다고 느낄 때 내가 행복할 확률이 15% 올라간다. 그 친구의 친구가 행복하다고 느낄 때 내가 행복할 확률이 10%, 그 친구의 친구의 친구(어쩌면 나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다.)가 행복하면 내가 행복할 확률이 6%까지 올라간다. 3단계까지 의미 있게 내 주변 사람들이 내 행복에 영향을 주었다. 4단계를 넘어서면 통계적으로 큰 의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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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려면?

행복한 사람이 곁에 있어야...”


지금 한국사회는 행복의 가장 큰 요소인 연결을 무시하고 혼자만 올라서려고 하는 자기모순에 빠진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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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야 할 친구를 모두 경쟁자로 만들어 버리는 철학없는 입시제도... 이런 걸 과연 교육이라 할 수 있을까? 주변 모두를 패자로 만들고 쟁취한 성공이 과연 얼만큼 행복을 유지하게 할 수 있을까? 잠시 자기만족을 줄지 모르겠으나 유통기한이 그리 길 것 같지 않다.


“불행은 주위에 경쟁자가 많을 때

행복은 함께 놀 친구가 많을 때 …”


그러고보니 내 주변에는 아무런 조건없이 서로를 걱정하고 서로를 위해 자기 수고를 아끼지 않고 마음을 내어주는 분들이 꽤 많이 있다. 물론 나도 그들에게 그렇게 한다. 어찌보면 셈을 할 줄 모르는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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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 주위에서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 경쟁으로 행복을 쟁취하려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대체로 고장난 계산기를 가진 사람들 같다. 어쩌면 내 행복의 근원은 이런 고장난 계산기를 가진 사람들과의 연결안에서 흐르는 그 무엇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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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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