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 감정의 뿌리에 대한 고찰
모든 부정적 감정의 뿌리 : 공포탐구(2) 공포의 뒷면_상
지난 시간에 공포는 양육자가 꼭 필요한 아기들에게는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소중한 감정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래와 같이 아기가 불편할 때 짜증을 내는 등 강력한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면 양육자가 아기의 생존을 위해 조치를 취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성인이 되었을 때도 공포반응이 생존에 도움이 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성인의 경우에도 공포반응은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죠. 그런데 상황에 적절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가 많아서 오히려 생존을 위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히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죠.
성인이 되었을 때 공포반응은 병적인 경우가 많아.
아기들이 공포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주 단순하고 생존에 필수적인 반면 성인의 공포반응은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어서 우리의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아기들의 공포반응은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원하는 반면 성인들은 훨씬 다양한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권력을, 어떤 이는 멋진 외모를, 어떤 이는 높은 학력을 원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돈을 갈구하고 있죠.
원하는 것이 다양하면 각각 그에 맞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그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목표를 향해 정해진 대로 사는 사람이 드물고 대체로는 과거에 살아온 습관대로 살거나 쉽게 살고 싶어 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아이러니한 특성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목표를 산꼭대기에 둔 채 발걸음은 산아래로 향한다.
좋은 습관이나 어려운 일을 돌파하려는 GRIT이 없다면 원하는 것은 실생활에서 일어나지 않으니 원하는 것과 실제 일어나는 일의 간격WANT vs HAPPEN Mismatch이 갈수록 더 벌어집니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기에 온통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한 북새통이고 전쟁통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먹고살만해진 우리 사회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만족하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대다수 어른들은 마치 생존을 위협받는 것처럼 느낍니다.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공포에 떨곤 합니다. 때로는 무기력에 빠져 곧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 아수라장 같은 전쟁터에서 "도대체 이게 사는 건가?" 싶은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분명, 한 때 사랑했던 사람과 결혼하고, 이쁜 아이도 있고, 거의 대부분 은행 것이긴 하지만 어찌어찌 집도 장만했고, 노후를 위해 투자도 하고, 아이도 열심히 공부를 시키고 있는데 이상하게 만족스러운 느낌이 없고 뭔가 허전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집 살 때 영끌하면서 영혼을 담보로 내어주었기 때문일까요?
내 생활은 왜 도대체 이 모양일까요?
마음의 평화?
그건 도대체 어느 구석에 숨어 있는 건가요?
이런 갖가지 불편한 감정과 생각들이 머릿속을 날아다닐 때 잠깐 멈추고 내면을 들여다봅시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놓아버림" 연구에서 제시한 내용을 자율신경계의 작용을 감안하여 새로이 각색해 보았습니다. 그의 연구방법이 모두 과학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의식과 무의식, 감정과 에너지, 신과의 관계에 대한 연결은 상당한 통찰을 주고 있습니다.
부정적 감정과 긍정적 감정의 경계에는 용기(courage 생명에너지 200)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의식의 특이점은 바로 이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용기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것이 아닙니다. 생존과 자신의 삶에 대한 유리한 조건 뿐 아니라 불리한 상황도 일단은 있는 그대로 보아야만 합니다. 이것이 불교의 팔정도에서 말하는 정견正見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는 '다르샤나darsyana'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냥 '본다'는 뜻입니다. 워낙 자신의 기억에 물든 채, 에고의 작은 생각에 빠져 보기 때문에 바르게 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 정견이라는 표현을 썼을 뿐 이것은 그냥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현재 상황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용기가 있어야 신성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신과의 정상적인 관계회복이 된다는 것이죠. 그래야만 감정적으로도 긍정성이 올라옵니다. 물론,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을 바꾸려고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보는 정견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 용기의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불편한 것은 외면하거나 무시합니다. 그러면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공포는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뭔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원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지요.
권력, 학력, 외모, 돈... 이것만 해도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코칭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30대, 40대 전문직에 있는 사람들도 목표를 정리해서 써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막연한 꿈은 있지만 꿈이 목표가 되기 위해서는 글로 쓰고 자신이 매일 목표를 의식하고 거기에 에너지를 집중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매우 드물죠.
원하는 것이 막연하니까 실제로 그것이 가까이 오더라도 알아챌 수 있는 눈이 없습니다.
어찌 보면 돈이나 기회 자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오더라도 내 눈이 까막눈이어서 알아챌 수가 없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따라서 원하는 것을 구체화하여 적어두고 시한을 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막연한 꿈은 죽을 때 까지도 막연하고 결국 후회와 불안만 남게 됩니다. 이런 불편한 느낌은 공포의 밑바닥에 눌어붙어 있습니다. 느낌은 감정보다 더욱 직관적이고 강력하기에 자신의 인생에 대한 좋은 점수를 매길 수가 없습니다. 자신과 현재가 좋은 느낌으로 연결되지 못할 때 이 세상이 전쟁통 같다는 느낌이 더욱 강화됩니다.
원하는 것은 많은 것 같지만, 그렇다고 정확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 공포의 뒷면에 깔려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그것 외에도 공포의 뒷면에 무엇이 더 있는지 알아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