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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훈 Sep 03. 2024

영생대신 사랑을 준 자애로운 삶에게 감사하며...

딸에게서 온 하늘의 마음

딸에게서 온 하늘의 마음에 대한 화답



인간에게서 영생을 앗아간 이는 자애로워서 긴 수명 대신 짧은 사랑을 주었다. 



그 어떤 철학자나 깨달음을 얻은 자에게서도

유한한 인생을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한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이어지는 말들이 모두 아름답게 익은 열매 같아서 과즙이 터지며 생명력을 북돋운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행성에 태어나 

이토록 아름다운 마음을 만나다니...


잊을 수 없는 밤...

읽고 또 읽으며 엄마와 함께 울며 웃으며 아름다운 밤을 보냈다.





영생대신 사랑을 준 자애로운 자에게 감사하며...



몸도 마음도 바쁘기 그지 없던 아름다운 어느 가을날,


길고 긴 배움의 시간을 지나 

네 가족 살림에는 어림없지만 

10년 만에 정기적인 월급을 받던 때였다.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나의 모든 시간을 내어주던 그 어느날...


108번뇌를 잊게 하는 한 아기가 왔다.


그 아기가 세상에 오던 날, 

우리는 모든 시름을 내려놓았다.


욥의 눈물처럼 고통을 알알이 맺어서

열매를 만들고 

그 열매가 생명의 씨앗이 되었다.


9월의 마지막 날 

우리에게 온 염주는

하늘이 우리에게 베푼 고통을 

잊게 하는 선물이 되었다.


너는 우리에게 풍족한 '은혜'였다.


바닷가 어느 길목에 덩굴처럼 뻗어 나가던 꽃은 

종종 오해를 받는다.


연한 분홍빛 아름다운 꽃이 흔히 화단에서 볼 수 있는 

나팔꽃과 닮아 있다.


꽃만 예쁜 줄 알았던 이 꽃은

땅속줄기는 사방으로 뻗어 나가 

밥상에 올라가 맛난 나물이 된다.


6월 8일에 세상에 온 엄마는

메꽃이다.


너의 탄생과 함께 

19년의 세월 동안


네 속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스며들어가게 한

이 사람의 꽃말은

'서서히 깊숙히 들어가다.'



이제 곧 겨울이 닥칠텐데

여전히 꽃을 피우고 있었다.


추위가 거세지면 

잎을 떨구고 겨우 뿌리만 남아 봄을 기다린다.


모진 세월은 

젊은 아빠의 가슴을 할퀴고 지나갔다.


뒤늦은 공부에 팍팍한 살림살이...

오롯이 홀로 서야만 했던 시간에

제대로 뿌리를 내릴 곳도

어디 발가락 하나 재겨 디딜 틈도 없는 순간들...


그 팍팍했던 순간에 너와 엄마는

따스함을 머금은 산소처럼 폐포속으로 깊이 들어와

순식간에 겨울을 봄으로 바꾸는 마법사 같았다.


깊숙히 스며드는 그 은혜를 힘입어

여기까지 왔다.


그 팍팍했던 시절, 네게도 상처가 있었을 법한데

네 가슴엔 아름다운 기억만 가득하구나.


인격은 기억에서 나온다.


아름다운 기억은 

아름다운 사건들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험한 순간들...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

모진 오해와 답답한 말들이

가슴을 짓누를 때도...


너는 그 사건들을 묵묵히 너 자신으로 

마주하며 지나왔다.


아름다운 기억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용기가

아름다운 기억의 뿌리.


노랑선씀바귀의 헌신과 순박함을 힘입어

너는 네가 되었고

쾌활, 명랑이라는 유채처럼 꽃피었다.


노랑선씀바귀와 유채를 닮은 

또 하나의 국화과 식물이 있다.


남녘 바닷가 겨울이 다가오는데도 

꿋꿋이 꽃을 피우는 아빠가 있다.


11월 21일 태어난 아빠의 꽃은 털머위.

'한결같은 마음'이다.



53년을 거슬러 가 보았다.

엄마가 태어난 그 해는 윤달이 끼어 있었다.


딜이 뜨고 지는 셈으로는 6월 8일 

봄이 끝나지 않은 것 같은데


해가 뜨고 지는 셈으로는 7월 29일 

한 여름 땡볓이 기승을 부릴 때다.


한 여름 그 혹독한 날씨에

꽃보다 아름다운 뿌리를 만들었다.


꽃의 모양이 독특해서 눈길을 끌지만

꽃보다는 뿌리를 보아야 한다.


시각을 통해 위험을 감지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사피엔스에게는

겉으로 드러나는 꽃을 주목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꽃은 꽃만 보고

그 아름다움을 다 알아차리기 어렵다.


땅속에 얼마나 값진 뿌리가 있는지...


몸 속에 불필요한 무언가 남아 있을 때

이 꽃의 뿌리는 그 찌꺼기가 배출되게 하고

배고픔을 잊게 한다.


엄마는 뿌리 째 네게 스며들어

너를 먹이고 

네 속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찌꺼기들을

자기 몸에 담아 몸 밖으로 배출했다.


이 아름다운 꽃의 이름은 우엉.


그 의미는 '인격자'.


은혜로운 염주와

깊숙하게 스며든 메꽃같이 

서로 깊이 연결되어 두 사람이 모두

아름다운 인격으로 영글어 간다.


두 인격자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한결같다.


이 아름다운 인연을 맺어준 삶에게 감사와 찬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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