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전공의 이야기 (4)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전공의 이야기(4)
전공의 1년차 시절 눈코 뜰새 없이 바쁘던 그 시절에도 어떻게든 병원생활을 재미있게 하고 환자들과 즐겁게 지내기 위해 신경을 썼다. 재미없는 일을 의미있게 하기란 정말 쉽지가 않다.
의사 가운은 큼지막한 주머니가 양쪽으로 달려 있다. 나는 가운을 맞출 때 일부러 주머니를 좀 더 크게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왜냐하면 인턴 월급을 쪼개서 모아 둔 돈으로 HP에서 만든 태블릿 PC를 샀는데 그걸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위해서였다. 지금이야 태블릿 PC가 아주 일반화 되어 있지만 당시는 상당히 고가였고 지금처럼 가볍지도 않았다. 조금 두툼하긴 하지만 터치펜이 있어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쓸 수도 있어서 환자들에게 설명을 할 때 제법 유용했다. 1년차 전공의 입장에서 환자들은 늘 누워있거나 몸이 불편해서 컴퓨터가 있는 병동의 데스크까지 와서 자신의 MRI 사진을 볼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뇌 속에 혈관이 막히거나 터졌다는데 정작 자신은 한 번도 그 MRI 사진을 본 적이 없는 셈이다. 그래서 MRI 사진을 태블릿PC에 옮겨 담아서 침상에 누워있는 환자들에게 보여 주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이 부분 혈관이 막혀서 이렇게 말씀하시기가 불편하신 거라고... 그렇지만 열심히 재활을 하면 작은 새로운 신경도로가 생기면서 말씀을 하실 수 있다고 설명을 드렸다. 또한 환자 보호자들에게 환자의 뇌MRI 사진과 그 부위의 문제가 어떻게 환자의 팔, 다리 근력에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할 때 사진 위에다가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지금 돌아보면 1년 차이지만 가급적 환자나 보호자에게 쉽게 설명하고 싶은 갈망이 무척 컸던 것 같다. 그런 마음이 지금까지 내가 수성구재활의학과를 개원하여 다른 의사들이 가지 않는 조금은 다른 길을 가는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환자들이 내 얘기를 듣고 자신들의 병과 앞으로 치료할 과정을 잘 이해하게 될 때 무척이나 기분이 좋다. 지금도 같은 질병이라도 환자의 수준과 형편에 맞게 다양한 버전을 준비해서 최대한 쉽고 자세히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쨌든 태블릿 PC를 넣으려고 만들어 둔 큼지막한 주머니가 때로는 다른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빼빼로 데이 때는 과장님 회진 후에 내가 정리 회진을 하면서 과장님 지시사항과 추가로 오더를 내야 할 것들을 챙기게 되는데 이 때 빼빼로를 그 큰 주머니에 가득 넣어 다니면서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빼빼로를 하나씩 건낼 때도 그 주머니는 아주 유용하다.
환자들을 치료도 하지만 그들과 그냥 함께 살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도 있지만 그들과 그냥 함께 살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그들은 내게 일의 대상이 아니고 내 생활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내 이웃이고 친구이고 때론 동지였다. 그러니 오며 가며 밥을 얻어 먹거나 김치를 한 통씩 얻어 먹는 것도 늘 미안하기 보다 감사했다. 내가 그들을 위해 사소한 것들을 준비하며 보낸 시간들도 그런 감사의 보답 차원이라고 할 수 도 있다.
전공의 1년차 생활을 몇 개월 하다 보니 재활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참 재미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띄게 하루 하루 좋아지는 사람도 있지만 무척 오랜 기간 재활을 했는데도 조금 밖에 좋아지지 않은 사람도 꽤 있다. 늘 고만고만한 식사에 늘 같은 사람들을 만나서 어제와 큰 차이 없는 운동을 반복하고 똑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마음대로 걷기도 힘들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도 없다. 심지어 소변, 대변 가리는 것도 큰 일인 경우가 종종 있고 음식물을 삼키기 위해 온 힘을 써가며 연습을 해야 하는 환자도 있다. 건강했을 때는 너무도 사소하고 아무렇지 않게 그냥 할 수 있었던 일을 마치 어린 아이처럼 모두 새로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런 환자들을 보고 있노라니
아, 얼마나 무력하고 우울할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 분들에게 재미난 일들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회진 때나 재활치료를 할 때 언제나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농담도 많이 하고 무거운 병실 분위기를 가볍게 하기 위해 늘 내가 먼저 밝은 표정으로 그 분들을 대했다. 돌아보니 일부러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그 분들을 보면 좋은 이웃을 만난 것 같아서 저절로 그렇게 밝은 웃음을 띠게 되었는지 정확히 구분되지는 않는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나는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참 좋았다는 것이다.
하루는 강직성척추염이 있는 데다가 불완전 경추손상을 입어서 팔 다리에 힘이 떨어져 뻣뻣한 모습으로 워커를 밀면서 한 발, 한 발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할아버지 환자를 뒤에서 보고 있는데 재활치료실에서 엘리베이터 까지 기껏해야 십 여 미터 되는 거리를 마치 천리길을 가는 것 처럼 보였다. "곽**님, 어째 오늘은 좀 걸을 만 하세요?" 내가 여쭤보니
맨날 그렇지 뭐, 그냥 하는거야.
툭 던지듯 한 마디 하고 돌아서는 모습이 너무 쓸쓸하게 보여서 참으로 속이 상했다. 그 때부터 이런 분들에게도 "뭔가 재미있는 것이 없을까?" 하고 몇 날 며칠 고민을 했다.
며칠 간의 고민 끝에 드디어 사고를 치기로 했다. 의국장님께 한 달에 한 번 "재활의학과 위문공연"을 하자고 제안했다. 환자 보호자분 들 중에서 음악을 하는 분들이나 교회 찬양팀 등을 섭외해서 환자분들이 좋아하는 노래도 들려드리고 한 달간 열심히 재활치료를 잘 해낸 분들에게 작은 시상이라도 하면 어떻겠냐고 여쭤봤다. 보통 전공의들은 안 그래도 일거리가 많아서 있는 일 하기도 바쁜데 이렇게 없는 일거리를 만드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다. 그런데 김동수 선생님은 내 그런 아이디어를 좋게 봐 주셨고 과장님과 상의하여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물론 행사 준비는 1년차인 내가 다 하기로 했다. 악단을 섭외하거나 환자들 중 가장 많은 호전을 보인 분에게는 "발전상", 호전과 관계없이 꾸준히 재활치료를 잘 받은 분에게는 "노력상", 병실 생활을 잘 하여 동료 환자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은 분에게는 "인기상" 등등을 정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내가 환자들을 한 달간 살펴보면서 병동 수간호사와 물리치료실장 및 담당 치료사들의 추천을 받고 주치의 의견을 정리해서 후보자를 추려서 드리면 과장님이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시상이라 해봐야 상장과 양말 몇 켤레가 고작이었지만 한 달에 한 번 그 날 만큼은 다과와 음료, 음악이 있고 생일을 맞은 환자들을 축하하고 케잌도 자르면서 다같이 회포를 푸는 시간이었다.
그 날은 내가 새벽부터 상장을 프린트하고 선물을 사고 퀴즈대회 준비도 하고, 다과를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날이었지만 그 무뚝뚝하던 경추손상 입은 곽** 할아버지 얼굴에도 미소가 차오르니 참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첫 번 째 "재활의학과 위문공연"에서 노력상은 곽** 할아버지에게 돌아갔다.
다시 돌아보아도 그 시절이 그립고 지금 정도의 실력이면 그 때 그 분들에게 뭔가 좀 더 좋은 치료, 더 좋은 말들을 많이 해 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과 아련함이 남아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그 할아버지 얼굴이 선하다. 그 때 이미 70이 넘으셨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큰 체격의 할아버지 곁에는 자그마한 체구에 허리가 구부러진 귀여운 할머니가 늘 수발을 드느라 힘겨워 하셨는데 그 할머니는 또 어떻게 지내실까? 부디 두 분 모두 건강하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