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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 못한 봄꽃 이야기 (하)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전공의 이야기 (3)

by 김정훈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전공의 이야기 (3)


피지 못한 봄꽃 이야기 (하)


시외버스 안에서 병동으로 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OOO환자가 aspixia로 인공호흡 중이예요. 빨리 오세요!"



이게 무슨 소린가!!! 시외버스 안에서라도 달리고 싶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리자 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가운도 입지 않고 병실로 뛰어 올라오니 난장판이었다. 봄꽃이 있어야 할 침대가 병실 가운데로 나와 있고 주변엔 기도삽관 장비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봄꽃은 보이지 않았다. 간호사에게 물으니 벌써 중환자실로 갔다고 한다. 가운을 대충 걸치고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원래 내가 맡을 때부터 봄꽃은 마치 여승처럼 짧게 깍은 머리였는데 중환자실에서 보니 한층 더 머리가 작아 보였다. 인공호흡기가 벌써 달려 있었다. 일단 심장은 소생된 것 같은데 문제는 뇌였다. 그렇지 않아도 다발성 경화증이 진행되어 남아 있는 기능이 충분치 않았는데 이 정도 충격이면 뇌가 다시 제 기능을 할까? 눈앞이 캄캄했다.

일단 인공호흡을 하고 생체징후는 안정된 것을 보고 병실로 돌아와서 선배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데 어머님이 집에서 뭔가 맛난 음식을 해왔는데 봄꽃이 통 잘 먹지를 못하는 것을 보고 어머님이 속이 상해서 조금이라도 더 먹여 보려고 하던 과정에서 그만 기도에 음식물이 걸린 것이다.


바로 의사를 불렀으면 될텐데 어머니가 등을 두드리고 하느라고 시간이 잠깐 흐르고 간호사가 확인하고 콜을 해서 선배가 와서 음식물 제거하고 심폐소생술을 했는데 순식간에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 버린 것이다. 건강한 사람도 몇 분만 질식이 되면 뇌기능이 돌아올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마는데 봄꽃이야 오죽 했으랴! 어머님은 병동에서 통곡을 하고 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아무 말도 못하고 어머님을 부축하고 등을 한 참 동안 토닥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날 부터 나는 졸지에 인공호흡기와 씨름을 해야 했다. 호흡 재활 파트에 있긴 하지만 좀처럼 잘 없는 경우라서 나로서는 생소했는데 과장님과 내과 전공의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봄꽃을 돌보게 되었다. 하루 업무 시간의 3분의 1정도를 중환자실에서 하게 되었다. 정말 어려운 싸움이었다. 손톱 끝을 볼펜으로 꾹 눌러 보아도 반응이 없었다. 동공반사도 없었다. 심장만 살아 있어서 맥박이나 혈압은 유지되지만 뇌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그래도 봄꽃이 혹시 내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귀에다 대고 이름을 불러보지만 아무런 미동도 없다. 그렇게 봄꽃은 여러 개의 줄과 관에 매달려 한 달을 버텼다. 이제 더 이상 봄꽃은 내 환자가 아니었다. 전우였다. 삶과 죽음의 고비를 함께 넘나들며 7개월을 살아 온, 짧다면 짧고, 그렇지만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전우였다. 전우의 마지막 가는 길에 서러움과 회한이 없을 순 없겠으나 나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중환자실은 밤에도 언제나 불이 켜져 있다. 불켜진 중환자실 한 켠에서 봄꽃에게만 들리도록 나즈막한 목소리로 마지막 노래를 불렀다.



When you're weary feeling small......If you need a friend, I'm sailing right behind.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ease your mind~


꽃은 늦가을 햇살이 따사롭던 어느 날 그렇게... 지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봄꽃의 가족들은 시집도 못가고 갑작스레 죽음을 맞은 때문인지 주변에 거의 알리지도 않고 서둘러 장례를 치르고 있었다. 나는 봄꽃의 언니에게 편지를 건넸다. 봄꽃이 말을 할 수 있을 때 내게 늘 가보고 싶다던 곳이 있었다. 대학생 때 친구들과 갔던 거창의 어느 산이 그렇게 아름다워서 꼭 거기를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봄꽃이 하늘로 올라가기 전 꼭 거창의 그 산에 들렀다 가라고, 마지막까지 지켜 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가을 햇살에 낙엽지는 소리를 들려주지 못해서 너무 너무 미안하다고, 또 다시 당신과 같은 환자를 만나면 그 땐 이렇게 미안해 하지 않을거라고... 나는 당신에게 bridge가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정말 미안하다고... 그리고 못난 나를 주치의로 만나서 불평하지 않고 따라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그렇게 봄꽃에게 마지막 이야기를 쓴 편지를 그녀의 언니에게 건넸다. 관을 내리기 전에 꼭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어쩌면 나의 마지막 편지는 봄꽃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남은 가족을 위한 것일수도 있다.



의사란 무엇인가?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를 살려야 하는 것인 아닌가? 그렇지만 의사가 창조주가 아닌지라 때론 이런 어려운 일을 마주할 때가 있다. 나는 봄꽃을 보내면서


생명을 살리는 것도 의사의 임무지만, 죽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도 의사의 임무


라고 알게 되었다.



젊은 딸을 보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내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그것도 자신의 손으로 밥을 먹이다가 질식하여 벌어진 일이니 자칫하면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른다. 최대한 가족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서 빨리 아물도록 하는 것이 환자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 만큼 중요하다.


다행히 어머님은 몇 달이 지나서 병원에 오셨는데 표정이 그리 어둡지 않으셨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얼굴에 주름이 골골이 박힌데다 작은 눈, 투박한 사투리... 나는 검사실에 앉아 있다가 "아이구~ 어머니~" 하면서 일어나 꼬옥 안아 드렸다. 어머님은 까만 비닐봉지에 뭔가를 담아 오셨다.


이거 내가 직접 농사 지은 깨로 짠거여~ 아주 꼬수하니께 먹어봐~


하면서 참기름 두 병을 건네고 얼른 돌아서신다. 내가 고맙다는 인사도 채 하기 전에 총총 걸음을 걸으시길래 쫓아가서 다시 손을 잡으니까 눈물이 그렁그렁하시다. 눈물을 닦아 드렸더니 "내가 주책이제~ 고마워~ 또 오께잉~" 하고는 다시 돌아서 가신다. 한참 동안 서서 계단을 내려가기 까지 바라보다 검사실로 다시 들어오니 정말 꼬수~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나는 봄꽃에게 건넨 마지막 편지가 가족들을 위한 처방전으로서의 역할을 잘 했나보다~ 싶었다.






의사가 환자를 더이상 치료할 수 없을 때...



그런 때라도 의사의 임무는 끝난 것이 아니다.


의사에게는 생명을 살리는 것도 임무이지만


죽음을 아름답게 하는 또 다른 임무도 있다.




행복은 나의 즐거움의 크기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를 위하여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고의 크기와 비례한다.



봄꽃은 아쉽게도 따사로운 가을 햇살 사이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내게 선명하게 살아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Happiness? It's not about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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