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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전공의 생활 3 - 내 환자에게서 손 떼!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전공의 이야기(6)

by 김정훈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전공의 이야기(6)


슬기로운 전공의 생활 3 - 내 환자에게서 손 떼!



40대 초반의 아주머니 환자였다. 두 번의 뇌수술을 하고 신경외과에서 재활의학과로 전과되어 진찰을 하러 병실로 갔는데 눈에 촛점이 별로 없다. 말은 전혀 못하고 눈맞춤이 안되어서 의사소통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상체는 약간 힘이 있긴 하지만 거의 거동을 할 수 없고 하체는 아예 쓸 수 없는 상태이다. 그냥 살아만 있다고 보는 게 좋을 정도이다.



젊은 분이 어째서 이렇게 되었을까? 차트를 뒤져 보니 교통사고다. 늦은 밤 육교 아래의 큰 도로를 건너다가 달리는 차에 부딪치셨다고 ㅠ.ㅠ. 죽지 않고 살은 것이 용하다 싶다.



어째서 젊은 분이 그 늦은 밤에 그런 무모한 일을 하셨을까?

안타깝기도 하고 아이도 있을텐데 엄마없이 그 아이는 어떻게 지낼까?

아빠가 계시니 그래도 괜찮겠지...

애써 스스로를 위안한다.



보호자인 남편을 만나서 환자 상태에 대해 설명하고 의사소통이 안되고 근력이 워낙 약해서 간병하는 사람이 두 시간 마다 체위를 계속 바꿔주어야 한다고 일러 두었다. 수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섣불리 경과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고 일단 살아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했다. 남편은 작은 키에 약간 성격이 있어보이는 인상이었다.


재활치료를 두 주간 한 뒤 이제 환자가 눈도 마주치고 어떤 때는 웃음도 보인다. 물론 말귀를 다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이해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어서 너무 다행스러웠다. 팔도 이젠 어깨 높이 까지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다리는 조금 움직이긴 하지만 아직 멀었다. 비교적 잠도 잘 자고 무척 회복이 빠른 편이었다. 간병사가 사람이 차분하고 성실해서 환자의 재활에 무척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재활이 진행되던 재활치료가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환자분이 불안해 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고 웃음기도 없어졌다. 당연히 재활하며 좋아지던 기능도 퇴행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확인해 보니 남편이 밤마다 술을 먹고 와서 인지가 떨어져 있는 아주머니 손을 잡고 집에 가자고 한다는 것이다. 입에서 욕이 절로 중얼거려졌다.


이 사람이 미쳤나?



그 날 밤 병동에서 밤을 샐 각오로 아주머니 병실 앞을 지키고 있던 중 다른 층 환자분이 상태가 좋지 않다고 콜이 와서 쫒아 올라갔다. 상태를 확인하고 내려 오던 중 그 아주머니가 있는 병동에서 콜이 왔다. 남편이 또 와서 술주정을 한다는 것이다. 부리나케 쫓아내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누워있는 아주머니 환자분의 손을 잡고 "집에 가자, 왜 이러고 있어? 얼른 집에 가자."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가까이 가니 술냄새가 물씬 풍긴다.

의사가 되어 환자와 싸운 일은 없지만 보호자와는 싸운 일이 있는데, 이 때가 처음이다.


내 환자한테서 손 떼!!!




내가 소리를 질렀다.


"당신 부인이라고 생각하지 마! 지금 환자복 입은 것 안보여? 환자복 입고 있는 동안은 당신 부인이 아니고 내 환자야! 내 환자에게서 손 떼! 퇴원해서 집에 갈 때 까지는 당신 부인 아니야. 정신차려!"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져서 반말로 아저씨에게 소리쳤다.


아저씨 팔을 잡고 병실에서 끌어냈다. 실갱이를 몇 번 했지만 아주머니 앞에서 계속 소란을 부리는 것은 바람직할 것 같지 않았다. 그 후 알게 된 사연인 즉, 아주머니가 그 한밤중에 육교아래 큰 대로를 무단횡단한 것은 남편이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도망을 치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남편으로써는 죄책감이 들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엄연히 병원이고 아주머니는 두 번의 뇌수술로 겨우 살아 돌아 와서 이제 조금 좋아지려는 과정인데 이게 무슨 봉변이란 말인가! 멱살을 잡다 시피해서 아저씨를 병원 밖으로 끌어냈다.



아저씨는 병원 입구에서 우두커니 담배를 피워댔다.


나도 물끄러미 한참을 그렇게 보다가 마땅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어깨를 두드리고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아주머니는 아직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표정이다. 말은 못하지만 아주머니도 나만큼 복잡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아주머니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며 몇 번 고개를 끄덕이며 이젠 괜찮을 거라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며... 안심 시키고 다시 스테이션으로 돌아왔다.


차트를 정리해야 하는데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날 병실에 있던 다른 분들이 한결같이 한 말.


술이 웬수야!



그러나 지금이 이 한 마디로 정리가 될 수 있는 상황인가!!

아저씨가 저러는 것을 보면 분명 부인을 사랑하는 것 같은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돌아 보면 아직도 다 이해는 되지 않지만 사람은 무언가에 속아서 홀려서 살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인생이 무언가에 속은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을 보면...




왜 술을 마셔서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힘들게 하고 그 결과로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 괴로워할까? 겨우 살아난 사람을 술을 먹고 와서 저렇게 힘들게 할까?


뼛속까지 무언가에 속아서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


마치 꼭두각시처럼 무언가에 조종당하는 것이 아닐까?

과연 술을 마신 그 아저씨만 그런걸까?

어쩌면 사랑하지만 서로를 괴롭게 하는 모두가 속은 것은 아닐까?





최근 골반통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중학교 상담 선생님의 며칠 전 이야기다.


평소 조용한 성격의 중학교 1학년 남자아이가 우울증과 자살충동으로 이 상담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상담선생님은 급히 정신과병원을 알아보고 난 뒤 아이의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급히 정신과상담을 받으셔야 한다고...


다음날 아이가 다시 찾아와서 말을 바꾸더란다.

이젠 괜찮다고...

병원은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이 없고 순종적인 아이가 어머니에게 뭔가 조종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평소에도 어머니로부터 언어 폭력과 신체적인 폭력이 종종 있었던 터라 이 착한 아이를 보고는 선생님은 속이 상해서 다시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병원에 가지 않으면 큰 일 난다고 다시 강조를 했다.


어머니의 대답...


정신과를 가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상담선생님은 어이가 없어서 그 후에 발생하는 모든 일의 책임은 어머니에게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고 한다.


그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겠는가! 그 어머니도 뭔가에 홀린 것이 아닌가? 아이가 현실적으로 죽어가는데도 무엇이 미련이 남는다는 말인가!



성경에서는 이렇게 속인 거대한 사기꾼을 사탄이라 한다.

불경에서는 無知 또는 無明(어두움)이라고 한다.

심리학에서는 왜곡된 프레임이라고도 한다.


나는 이 거대한 사기꾼을 '오염된 기억'이라고 말하고 싶다.

현재의 불안한 감정은 잘못된 기대를 낳는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 감정에 물든 기억은 세계를 왜곡하기 마련이다.


가만히 멈춰서 돌아보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캄캄한 어두움 속에서 그냥 살아가는 것 같다.


어제 20여년 간 알고 지내던 친한 형님이 췌장암 판정을 받았고, 오랫동안 소식이 닿지 않던 교회 동생이 자궁암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요즘은 암환우분들과 늘 함께 지내다 보니 췌장암 말기, 폐암 말기, 유방암 4기...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렇게 반대편에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을 느끼고 있다.)


내일은 내 날이 아니다.


오늘 하루만 살자.


내게 주어진 유일한 날이 오늘이다.


선물같은 오늘을 살기 위해 가장 절실한 그것을 해야겠다.



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며

부모들을 불안하게 하고

아이들을 死地, 죽음의 땅으로 내모는

어떤 힘에 속지 말아야 하겠다.


그것으로 자기 배를 불리는 세력에게 우리 아이들을 내어주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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