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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4) 고장 나지 않는 세 번째 마음

by 김정훈

"몸이 아프면 살고 싶고, 마음이 아프면 죽고 싶다."


1부. 몸과 마음, 따로 또 같이


2장. 세 개의 마음


2장(4) 고장 나지 않는 세 번째 마음


세 번째 마음은 고요한 관찰자




세 번째 마음의 집, '고요'



첫 번째 마음과 두 번째 마음은 매우 개별적이고 외부 자극이나 오염된 기억에 따라 종종 고장이 나곤 합니다.



그러나 고장 나지 않는 마음이 여기 있습니다.



세 번째 마음은 고장 나는 법이 없습니다. 다만, 무시되거나 첫 번째, 두 번째 마음이 너무 분주해서 알아채지 못할 뿐이죠.


이것은 마치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스크린 속 주인공의 슬픔에 공감하면서도 내가 그 주인공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것과 비슷합니다. 통증과 괴로운 생각이 스크린 속 장면이라면, 세 번째 마음은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석의 ‘나’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세 번째 마음은 첫 번째, 두 번째 자아와 달리 ‘보편적’인 속성을 가집니다. 인종, 문화, 교육 수준과 상관없이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가 비슷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이 '고요한 관찰자'의 자리는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지점에서 출발한 생명의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깊은 유대감, 자연 속에서 느끼는 평온함,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이 바로 이 세 번째 마음의 미세한 속삭임입니다.



세 번째 마음, 이 마음을 선불교에서는 본래 청정한 마음 또는 본바탕, 불성, 眞如心, 다르마 등 다양한 언어로 표현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이 세 번째 마음을 신의 성품, 하나님의 마음, 첫 번째 마음과 두 번째 마음만 가지고 살던 옛사람과 대비하여 새 사람의 마음이라고도 하죠.


이 세 번째 마음은 우리 안에 원래부터 존재하는 근원적인 의식이에요. 좀 더 중립적인 언어로는 알아차림, 내려놓음, 내맡김, 깨달음이라는 말도 이 세 번째 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道나 天命이 바로 세 번째 마음을 일컫는 말이죠. 모두 언어로는 묘사할 수 없는 '고요'한 어느 지점을 가리킵니다. 어찌 보면 사람의 근원적인 성품같고 어찌 보면 개별적인 인간의 욕망과는 대비되는 신의 성품같기도 합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마음은 문화나 언어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첫 번째 마음의 바탕인 몸은 구체적이기 때문에 문화에 따른 이견이 별로 없습니다. 그에 비해 두 번째 마음은 약간의 이견이 있긴 하지만 정신작용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그다지 이견이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마음은 몸과 같은 물리적 실체도 없고 단순히 정신작용이라고만 할 수도 없어서 문화권, 종교적 배경, 언어의 구조, 역사적 맥락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로 표현됩니다.


여기서 큰 오해가 종종 발생하곤 합니다. 인류역사에서 가장 잔혹한 종교전쟁은 이 세 번째 마음의 실체를 전혀 모르는 데서 온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저 종교는 명분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단순히 패권을 차지하고 싶은 두 번째 마음이 발휘한 욕망의 충돌에 불과합니다.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환, 피하기 어려운 만성통증, 삶을 온통 잿빛으로 물들이는 자율신경실조증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이 세 번째 마음에 대한 인식이 필수적입니다. 세 번째 마음으로 자신의 몸과 정신을 돌보는 법을 익힐 때 치료도 잘 되고 더 온전한 치유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마음이 고장 날 때 약물, 주사, 수술, 물리치료, 좋은 영양소 등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마음이 고장 날 때면 심리상담, 필요한 경우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농도를 올리는 약물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대책이 효과가 없을 때도 많습니다. 어떤 때는 백약이 효과가 없기도 합니다. 삶은 점점 나락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데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분들도 많습니다.



이것은 마치 개미가 2차원 평면에서만 살기 때문에 하늘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개미는 높이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개미는 땅바닥에서도 전후좌우 평면에서 움직이고 나무를 타고 위로 오를 때도 여전히 2차원 평면의 차원에서 걸어가는 것뿐입니다. 그들의 시선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통 속에 빠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방이 막혀 아무리 둘러보아도 발 디딜 곳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췌장암 말기 환자가 항암치료를 권유받을 때 하루하루 먹는 것, 자는 것이 지금도 쉽지 않은데 더 힘들어질 거라고 하니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항암치료를 안 받으려고 하니 기껏해야 평균 생존여명이 몇 개월 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과연 어떤 길이 있을까요? 이런 현실이 쉽지는 않겠지만 저와 함께 세 번째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 길을 함께 찾는 동행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 세 번째 마음에 대한 감각이 살아나는 순간, 우리는 그동안 우리를 괴롭히던 생각들이 사실 우리 본래의 마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더 이상 그 생각에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세 번째 마음을 알아차리고 나면 몸은 연약할수록 더욱 소중하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비록 눈을 뜨면 통증이 시작되고 비록 선택지라고 받은 것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선뜻 손이 가는 것들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도 감사와 희망을 찾는 아름다운 눈이 내게 있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몸도 환경도 모두 그대로인 것 같지만 이 세 번째 마음의 눈으로 몸과 환경을 둘러보면 더 이상 그렇게 잿빛만은 아님을 알게 됩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이때의 바다는 붓다가 말한 그 고통의 바다(苦海)가 아닐까 합니다.


결국 이 세 번째 마음을 알아차림으로써 만성 통증이나 자율신경 실조증, 혹은 암 환자분들도 자기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고, 삶을 더 풍요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거죠.



저는 만성통증과 자율신경 실조증, 진행된 암으로 고통받는 환자분들이 이 세 번째 마음에 대한 감각을 되찾아 자신의 본래 모습과 만나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리면 불필요한 고통에서 뚜벅뚜벅 자기 발로 걸어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은 평생 수행을 하며 눈 덮인 산에서 고행을 해야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지금 바로 병실에서도 할 수 있고 집 앞마당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묵언수행을 하거나 새벽마다 기도를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와 함께 통증을 치료하는 동안 이 과정을 지나면서 질병을 앓기 이전보다 자신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환자분들이 있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통증을 그저 닥쳐오는 불편한 감각이라고만 느끼는 데서 벗어나 다르게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무시해 왔던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고 오래되어 굳어버린 자신의 기억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세 번째 마음에 대한 알아차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 마음이 정상적으로 내 안에서 작동하면 첫 번째 마음인 감각과 반응, 두 번째 마음인 기억과 생각, 판단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비로소 감정과 생각을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는 비록 질병이 있어 통증은 느끼더라도 더 이상 고통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붓다께서 말씀하신 대로 살아있는 그 어떤 존재도 첫 번째 화살(통증)*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화살(만성통증)**과 세 번째 화살(만성통증 증후군, 고통)***은 피할 수 있고, 피해야만 합니다.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 자율신경실조증, 만성통증증후군과 같은 어려운 병으로 오늘 아침도 뜨고 싶지 않던 눈을 겨우 뜨셨나요?



그대가 첫 번째 화살에 이어지는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을 피하는 용기와 지혜를 갖추기를 응원합니다.


그대가 오늘도 고통 없는 세상에서 작지만 흔들리지 않는 행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통증 :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시스템. 통증이 없다면 육체는 쉽게 훼손되고 이내 죽게 된다.

**만성통증 : 3개월 이상 지속되는 통증. 자극이 사라진 뒤에도 계속 남아있는 통증.

***만성통증 증후군(고통) : 만성통증이 통증 외에도 불면, 불안, 만성피로, 소화장애, 순환장애, 비뇨기장애 등 신체 전반에 영향을 주어 일상생활이 어려워진 상태. 나는 만성통증 증후군을 짧게 줄여서 고통이라 부른다. 통증뿐 아니라 장애를 남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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