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몸과 마음, 따로 또 같이
"몸이 아프면 살고 싶고, 마음이 아프면 죽고 싶다."
1부. 몸과 마음, 따로 또 같이
2장. 세 개의 마음
두 번째 마음은 생각하고 판단한다.
두 번째 마음의 집, '언어'
두 번째 마음의 집은 '언어'입니다. 장기로 치자면 '뇌'가 두 번째 마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이라고 할 때 두 번째 마음을 지칭할 가능성이 큽니다. 친구나 동료, 가족들이 '마음이 잘 맞는다.'라고 할 때 대부분은 이 두 번째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는 ‘언어’라는 벽돌로 '생각'의 집을 짓습니다. '언어'가 부실하면 '생각'도 부실하고 두 번째 마음도 부실하기 쉽습니다.
"나는 왜 아플까?", "이 고통은 언제 끝날까?" 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과거를 기억하며 미래를 걱정하는 주체가 바로 이 두 번째 마음입니다.
우리의 신념, 가치관, 사회적 역할, 그리고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가 여기에 속합니다.
첫 번째 마음과 마찬가지로, 두 번째 마음 역시 지극히 개별적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잘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원적으로는 완전히 하나처럼 맞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맞기도 하고 안맞기도 하는 것이 두 번째 마음입니다. 두 사람이 같은 바램이 있을 때 분위기나 상황이 두 번째 마음이 맞을 만한 인연이라면 '마음이 잘 맞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조차 서로 다른 경험과 기억을 갖게 됩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계와 상호작용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각자 고유한 생각의 체계를 만들어갑니다. 현대 사회의 교육은 바로 이 두 번째 마음을 발전시키는 데 집중합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며,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통의 문제에 있어서, 이 두 번째 마음은 종종 우리를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기도 합니다. 첫 번째 마음이 겪는 몸의 통증에 대해 끊임없이 두 번째 마음이 부정적인 생각을 덧붙이며 불안과 우울이라는 또 다른 고통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몸이 아픈 것에 더해, 아픈 나를 자책하고 미래를 비관하는 마음의 고통이 더해지는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두 번째 마음은 '생각'하는 마음
현대인들에게 마음에 대한 정의를 물어본다면 이 두 번째 마음을 가장 많이 손꼽을 것입니다. 아마도 두 번째 마음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구석기시대의 인류를 만나 인터뷰를 한다면 그들은 첫 번째 마음을 가장 많이 사용했을 것 같습니다. 생존 그 자체가 가장 큰 삶의 목표였을 테니까요. 생존이 확보된 안전한 상황이라면 그들은 놀이를 하고 쉬며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최대한 만끽하지 않았을까요? 우리 집 강아지가 배가 고프거나 졸리지 않다면 장난치고 저와 눈 마주치고 피부를 비벼대는 것처럼 말이죠.
특별히 암환자, 자율신경실조증, 만성통증을 겪고 있는 환자들 대부분은 마음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돌아가는 '생각'입니다. 많은 환자들의 밤잠을 설치게 하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며, 우리를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드는 기생충 같은 생각들로 가득 차 있죠. 아무리 이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려 해도 그렇게 마음대로 떨쳐지지가 않습니다. 마치 기생충이 우리의 창자 속에서 자리를 잡으면 저절로 빠져나가지 않는 것처럼 우리 삶의 에너지를 앗아가는 이 쓸데없는 '생각'도 똬리를 틀고 빠져나가지 않죠. 내 삶이 평화로울 때 가끔 잠잠해지는 적이 있습니다만 또다시 기회만 나면(주로 불안할 때나 걱정할 때) 머리를 쳐들곤 하죠.
중요한 것은 이 쓸데없는 '생각'이 내 '생각'이 아니란 것을 알아채는 것입니다.
마치 기생충이 내 뱃속에서 살지만 내 몸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생충은 어떻게든 내 에너지를 뺏어서 자기의 배를 채우고 자기가 살아남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렇게 우리 삶을 파괴하는 '생각'은 쓸데없는 생각입니다. 곰곰이 고요하게 들여다보면 이렇게 밤마다 나를 괴롭히는 생각이 내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생각'이 아니기에 내 마음대로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을 아무리 그치려 해도 그칠 수가 없습니다. '내 손'이라면 내 마음대로 올리거나 내릴 수 있고 '내 입'이라면 마음대로 벌리거나 닫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생충 같은 생각'은 '내 생각'이 아니기에 내 마음대로 어찌하지 못합니다. 기생충과 같은 이 '생각'을 앞으로는 '마음의 기생충'이라고 부릅시다. 어떻게 하면 이 '마음의 기생충'을 박멸할 수 있을까요? 만성적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의 가장 큰 숙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소리를 지른다고 떠나가지 않고, 책을 읽는 것으로도 한계가 있습니다. 제대로 된 명상이라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충분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앞으로 이 숙제를 함께 해결해 봅시다.
그런데 '생각'은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흔히 생각은 정신작용이라 에너지가 별로 들지 않는 줄 아는 분들도 많습니다. 뇌는 우리 몸의 2% 정도의 무게 밖에 되지 않지만 에너지 소비등급이 최악인 장기입니다. 무려 20%의 에너지를 쓰는 비효율적인 장기가 바로 뇌입니다. 거의 기름 먹는 하마와 같은 셈이죠.
그래서 '생각'은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동작 motion'으로 이어지지 않는 생각은 대부분 잡생각이며 잡생각은 자동차로 치자면 공회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시동을 걸 때 약간의 공회전은 허용할 수 있겠습니다만 밤새도록 자동차가 공회전하는 것처럼 잠자리에 누운 채 잡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에너지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런 일이 날마다 벌어지는 것이 암환자, 자율신경실조증, 만성통증 환자들의 머릿속입니다. 잡생각이 곧 '마음의 기생충'이며 우리 삶의 생명에너지를 갉아먹는 좀도둑입니다. 늘 불안을 부추기며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을 곁에 두고도 누리지 못하게 방해한다는 면에서 이 녀석은 대단한 사기꾼입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두 번째 마음은 우리가 흔히 ‘생각’이라고 부르는 정신 작용의 영역입니다. 두 번째 마음은 언어에 의존하며 분석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기억하고 예측하여 판단하는 것이 주된 일입니다.
첫 번째 마음은 당장의 생존을 위한 몸의 생리작용을 잘 이해할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반면, 두 번째 마음은 끝없이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려는 뇌의 작동원리를 잘 이해할 때 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고통에 빠진 많은 환자분들은 대체로 이 두 번째 마음이 고장 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첫 번째 마음의 고장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되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두 번째 마음의 고장이 더욱 치명적이고 깊어서 쉽게 치료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각광받는 의료영역이 정신과라는 사실은 현대인들이 이 얼마나 두 번째 마음을 많이 다치고 살아가는지 보여줍니다. 만성통증, 자율신경실조증 환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정신과에서 진단을 받고 우울, 불안, 공황장애 등의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 시간은 문화, 역사, 종교, 사회적으로 가장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바람에 가장 오해가 많은 세 번째 마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