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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1) 세 개의 마음

1부. 몸과 마음, 따로 또 같이

by 김정훈

"몸이 아프면 살고 싶고, 마음이 아프면 죽고 싶다."



1부. 몸과 마음, 따로 또 같이



2장. (1) 세 개의 마음, 고통을 넘어서는 여정에서의 준비물



고통에 빠진 당신에게



끝없이 이어지는 통증과 그로 인한 마음의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20년 간 늘 환자들 옆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내왔지만 그 모든 고통을 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재활의학과 의사로서 저는 수많은 환자분들을 만나며, 단순히 의학적인 치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깊은 고통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마주합니다. (저는 신체적인 아픔을 통증, 통증에 심리적인 아픔까지 포함하는 것을 고통, 심리적인 아픔의 누적을 고뇌라고 부르겠습니다.)



만성적인 통증은 우리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갉아 먹습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는 약이나 시술, 수술 만큼이나, 우리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마음에 관한 이 글은 바로 그 여정을 위한 작은 안내서입니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세 개의 마음’을 통해, 고통에 압도당하지 않고 나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살펴 보세요.



부디 이 글이 고통 속에 있는 당신에게 작은 위로와 희망의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장 흔하게 쓰이는 단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듯한 단어,

그래서 마음대로 쓰는 단어가 '마음'입니다.



그러나 제게 마음이라는 단어는 묘하고 신비한 면과 함께 익숙하고 혼동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한 때 분명히 한 마음이었던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마음을 마음대로 쓰다보니 서로의 마음이 갈라지는 것을 너무도 많이 경험합니다.



그 뿐 아니라 자기 마음을 자기도 몰라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마음대로 하다가 듣는 이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일도 많습니다.


때때론 자기 마음을 자기도 모른 채 살아가다가 생각지도 못한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망연자실할 때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고통에 시달려온 환자들에게는 이런 일이 더 흔합니다.


이제 누구에게나 있는 세 개의 마음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 봅시다.



세 개의 마음이 마치 층위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저는 그 의견과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세 개의 마음은 어느 것이 열등하고 어느 것이 더 귀중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첫 번째 마음은 몸을 집으로 삼아 움직입니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가장 원시적인 욕구가 첫 번째 마음입니다. 두 번째 마음은 계획하고 판단하는 매우 유용한 기능입니다. 현대인들은 두 번째 마음이 첫 번째 마음을 제대로 통제해야 제대로 된 인간인 것처럼 여깁니다. 첫 번째 마음이 하드웨어라면 두 번째 마음은 소프트웨어처럼 생각하며 좀 더 우월한 것처럼 취급합니다. 세 번째 마음은 가장 고차원적이며 두 번째 마음을 통제해야 한다고 믿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마음은 '몸'이라는 구체적인 실체가 없으면 황당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엔 세 개의 마음이 서로를 필요로 하며 적절한 조화를 위해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기도 합니다.



첫 번째 마음의 집 ‘몸’



우리의 첫 번째 마음의 집은 몸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끼는 모든 감각의 총합이 바로 이 첫 번째 마음의 먹이입니다. 통증, 불편함, 차가움과 따뜻함 같은 아주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감각들이 이 마음을 길러냅니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우리의 몸 또한 저마다 다릅니다. 같은 자극에도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경계의 센서가 품질이 좋은 것입니다. 통증을 느끼는 형태와 강도도 모두 다릅니다. 지구에 80억 인구가 있다면, 80억 개의 첫 번째 마음이 있습니다.



첫 번째 마음은 현실적이고 물질적이고 감각적입니다. 허리의 뻐근함, 손끝의 저림, 따뜻한 햇살이 몸을 휘감는 느낌이 모두 첫 번째 마음이 느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마음의 집 '언어'



두 번째 마음은 ‘언어’라는 벽돌로 생각의 집을 짓습니다.



"나는 왜 아플까?", "이 고통은 언제 끝날까?" 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과거를 기억하며 미래를 걱정하는 주체가 바로 이 두 번째 마음음입니다.


우리의 신념, 가치관, 사회적 역할, 그리고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가 여기에 속합니다.



첫 번째 마음과 마찬가지로, 두 번째 마음 역시 지극히 개인적입니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조차 서로 다른 경험과 기억을 통해 각자 고유한 생각의 체계를 만들어갑니다. 현대 사회의 교육은 바로 이 두 번째 마음을 발전시키는 데 집중합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며,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통의 문제에 있어서, 이 두 번째 마음은 종종 우리를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기도 합니다. 몸의 통증(첫 번째 자아)에 대해 끊임없이 부정적인 생각(두 번째 자아)을 덧붙이며 불안과 우울이라는 또 다른 고통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몸이 아픈 것에 더해, 아픈 나를 자책하고 미래를 비관하는 마음의 고통이 더해지는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세 번째 마음의 집 '고요'



첫 번째 마음과 두 번째 마음 만으로는 만성적인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몸은 계속 신호를 보내고, 생각은 그 신호를 붙들고 과거에 빠져 원망하거나 미래에 중독되어 끝없이 불안해 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세 번째 마음입니다.



세 번째 자아는 말로는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언어의 세계를 넘어서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몸과 생각을 한 걸음 떨어져서 고요히 바라보는 ‘관찰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픈 몸과 괴로운 생각을 ‘나 자신’과 동일시하는 대신, 그것들을 그저 내 안에서 때때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으로 바라보는 의식의 공간이 세 번째 마음의 집입니다.



세 번째 마음은 무심한 관찰자이며 언어로는 정확한 묘사가 불가능한 인류의 보편적인 속성입니다. 지식에 물들지 않은 어린 아이의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와 같고 구름에 물들지 않는 파란 ‘하늘’과 같습니다. 고통을 판단 없이 알아차리는 것, 호흡에 집중할 때의 평온함도 모두 세 번째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 : 세 번째 마음 알아차리기



우리가 받은 교육은 불행히도 모든 사람을 사회에 유용한 ‘도구’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첫 번째 마음(몸의 욕구)두 번째 마음(기억에 의한 판단) 만으로 살아가는 데 익숙해졌고,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세 번째 마음에 대한 감각을 잊어버렸습니다. 특히 극심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교육의 폐해는 더욱 가혹합니다. 고통에 빠져 자신의 과업을 잘 해낼 수 없을 때 극도의 '수치심'을 느끼고 이것은 자신이 이 사회에서 무능하다는 느낌으로 이어집니다. 능력이 없다는 말과 무가치하다는 말을 동일시 하는 이 폭력적인 사회의 폐해는 이들이 스스로를 제거해 버리는 데 이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이 2003년부터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세계에서 압도적인 자살률 1위를 유지하는 것은 모든 사람을 유용한 '도구'로 만들려려는 철학없는 교육의 결과라고 봅니다.



하지만 희망은 있습니다. 우리가 간단한 몇 가지 연습을 통해 세 번째 자아를 깨우고, 고통을 다루는 새로운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더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장에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호흡 바라보기:



가장 간단하지만 강력한 방법입니다. 의자에 편안히 앉아 눈을 감고, 그저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느껴보세요. 생각을 멈추려 애쓰지 말고, 생각이 떠오르면 ‘생각이 떠올랐구나’하고 알아차린 뒤 다시 부드럽게 호흡으로 주의를 가져오면 됩니다. 이것이 바로 관찰자의 자리를 연습하는 것입니다.



2 감각 알아차리기:



몸의 통증을 없애려고 싸우는 대신, 그 감각을 호기심을 가지고 느껴보세요. ‘날카롭다’, ‘묵직하다’, ‘저리다’ 등 낯선 감각에 이름을 붙여보는 것도 좋습니다. 가장 좋기는 자신만의 느낌을 담아 통증에게 '뻐근이', '찌릿양' 등 귀여운 이름을 붙이면 좋습니다. 감각을 판단 없이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통증에 끌려다니는 대신 그것을 관찰하는 주체가 됩니다.



3 자연과 연결되기:



잠시 시간을 내어 공원을 걷거나, 창밖의 초록색 나뭇잎을 바라보거나, 바람 소리를 들어보세요. 자연은 우리를 복잡한 생각의 세계에서 벗어나 더 크고 보편적인 생명의 흐름과 연결해줍니다.




세 번째 마음을 통해 지혜와 만나다.



세 번째 마음을 깨운다는 것은 통증을 완전히 없애는 마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통증이 있더라도, 괴로운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그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닫는 지혜입니다. 나는 나의 아픈 몸 너머에, 나의 괴로운 생각 너머에, 이 모든 것을 담아내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하늘과 같은 존재임을 아는 것입니다.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 안에는 스스로를 치유하고 고통을 넘어설 수 있는 깊은 힘이 잠자고 있습니다. 이제 첫 번째 마음과 두 번째 마음의 아우성에서 잠시 벗어나, 당신 안에 있는 고요한 관찰자, 세 번째 마음의 미세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곳에서 당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평화와 자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순진하고 단순한 첫 번째 마음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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