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예술을 깨우는 紀行

⟪나의 영국 인문 기행⟫, 서경식, 2019, 반비

by 이유해

⟪나의 영국 인문 기행⟫은 서경식 교수의 <나의 기행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인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2018, 반비)를 흥미롭게 읽고, 저자의 다른 책에도 관심이 생겼다. 서경식 교수의 저서가 많아 어느 책을 읽을지 고민하던 중에, 한 독서토론 모임의 지정 도서가 된 것을 보고 따라 읽게 되었다.

이전 책처럼 저자는 여행을 하며 '예술'을 중심으로, 인간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문제점,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2015년, 저자는 반려자 F와 영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는 주요 일정을 소화하며 방문한 도시의 대표 박물관, 미술관을 둘러보고, 음악 공연을 관람하며 자신만의 인문 기행을 한다.

올드버리에서는 전쟁 중 가난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음악을 지켜낸 벤저민 브리튼과 피터 피어스를, 런던에선 전쟁의 잔혹함을 연극에 담은 브레히트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냉혹하고 처참한 삶에서 예술로 연대하고 살아간 윌프레드 오언, 파울 첼란 등의 시인을 소개한다.

저자는 런던의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강연에서 사회적 담론에 의해 뜻이 좁아지거나 부정적으로 재정의된 단어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고자 한다. 또한 세계에 갇힌 단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예술가, 잉크 쇼니바레와 잉그리드 폴라드를 독자에게 소개한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화가 터너의 죽음의 테마와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로 우리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가 어디인지 묻는다.


저자는 단어의 단순화와 그로 인한 오해에 대해 깊이 다룬다.

우리는 ‘아프리카계’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생각한다. 'Korea'가 고려, 조선, 한국을 모두 담고 있지만 맥락에 따라 구분되어야 하는 것처럼, 아프리카 출신에도 각자의 역사적 맥락과 다양성이 존재한다. 말은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 그 단순함은, 여러 문제를 감추기도 한다.

이런 단순화되고 뭉뚱그려진 단어와 세계를 잉카 쇼니바레와 잉그리드 폴라드는 각자의 방식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나이지리아 출신인 잉카 쇼니바레는 아프리카 천과 빅토리아 시대 상류층 스타일을 접목시켜 식민지화로 부를 축적한 영국을 꼬집으며 ‘아프리카적' 예술에서 탈피한다.⟪빅토리아 댄디의 일기, Diary of a Victorian Dandy(1998)⟫ 가이아나 출신 노예의 후손인 잉그리드 폴라드는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 책에 실린 ⟪목가적 막간, Pastoral Interlude (1988)⟫은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목가적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은, 고독하고 불안한 시선의 흑인 여성을 보여준다. 돌담, 철창의 배경은 노예무역의 흔적과 토지 소유, 독점을 보여줌으로써 ‘영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특히 쇼니바레는 자신의 작업을 ‘in between’이라고 설명하며 ‘아프리카적’ 그리고 ‘영국적’이라는 단어의 한계를 지적한다.


“우리는 서구에 의해 식민화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더 이상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더 이상 ‘순수한 전통’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이러한 상황은 영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순수한 것이 진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짜는 ‘뒤섞인 hybrid’ 것입니다. ‘하이브리드 아트’야 말로 진짜입니다.”
(198쪽)


식민화라는 서글픈 역사 속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묻게 되었지만, 쇼니바레는 거기에 안주하지 않는다. 나는 쇼니바레의 작품을 보면서 영국이 나이지리아의 역사를 쓴 것처럼, 나이지리아도 영국의 역사를 쓴 것은 아닌지 곱씹어보았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에도 ‘순수한’ 것만이 존재하는지를 뒤돌아보게 되었다.


서경식 교수는 단순히 대도시와 유명 관광지를 훑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도시와 예술에 담긴 인물과 역사를 통해 우리가 한 나라를 넘어 세계를 바라보게 도와준다. 특히 이 책에서 그는 기술, 경제 발전 속에서도 끊임없는 전쟁과 빈곤, 차별이 일어나는 오늘날을 회의적으로 논한다. 하지만 음악, 연극, 회화 그리고 문학 등의 예술과 함께 살아갈 희망을 보여준다. 나아가 저자는 ‘죽음’ 또한 독립적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임을 인정한다. 그에겐 죽음은 단순히 삶의 끝이 아니다. 삶의 연장선에 놓인 죽음, 그것은 한 인간의 경험과 세상이 녹아있는 선택이다.

그리고 나는 저자의 인문 기행을 읽으며 삶과 죽음, 예술을 아우르는 세계의 확장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 본문에 언급된 작품 제목은 공식 아카이브 또는 전시 기관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해당 작가 및 소속 기관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