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저리⟫, 스티븐 킹, 황금가지, 2004
이 책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까? 차라리 책 정보를 소개하는 편이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1987년 출간된 ⟪미저리⟫는 1980년 초, 스티븐 킹이 아내와 영국으로 여행하던 중 비행기 안에서 꾼 악몽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이 작품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브램 스토커상(Bram Stoker Award)을 받고 영화화까지 되어 세계적으로 흥행되었다.
하지만 ⟪미저리⟫는 화려한 이력으로만 단순히 말할 수 없는 심리 스릴러, 호러 그리고 메타픽션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소설이다. 또한 스티븐 킹의 창작자로서의 고뇌와 독자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의 소설 전반에 드러나는 인간 존재의 통찰이 농축되어 있다.
작가 ‘폴 셸든’은 베스트셀러 ‘미저리 시리즈’를 완결 후에 순수 문학 소설 한 권을 완성한다. 기쁨에 찬 폴은 샴페인을 마시다가 뉴욕에 혼자 운전해서 가기로 결정한다. 날씨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폭설로 변하지만 폴은 술 기운을 빌려 운전을 계속한다. 결국 글러브 박스를 열어 담배를 꺼내는 순간, 차는 전복된다.
고통 속에서 눈을 뜬 폴은 자칭 자신의 ‘넘버 원’ 팬인 ‘애니 윌크스’가 자신을 구한 후 그녀의 외딴 집에 가두어 놓은 것을 알게 된다. 소설 취재로 정신병원 근무자들을 인터뷰하고 병원을 방문했던 폴은 애니와 대화하면서 그녀의 정신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챈다. 애니는 ‘미저리 시리즈’의 광팬으로,마침 출간된 마지막 권을 읽고 있었고, 결말에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폴의 소지품에서 새 소설의 초고를 읽고는 ‘쓰레기’라고 부르며 그에게 새 소설을 불 태우고 ‘미저리 시리즈’를 다시 시작할 것을 강요한다. 그의 부러진 두 다리와 고통을 잠재울 마약성 진통제를 미끼로 삼고 말이다.
폴은 애니의 위협과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살기 위해 소설을 쓰지만 점차 창작자로서 소설 쓰기에 진심으로 빠져든다. 애니는 독자의 권력을 극단적으로 폴에게 행사하면서도, 그의 열정과 창작의 힘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녀는 이야기의 끝을 알고 싶은 독자의 갈망과 작가에 대한 사랑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소설은 창작자의 고뇌, 창작의 자유, "할 수 있어?"와 독자의 "알고 싶어"의 욕망이 뒤섞이며 극단적인 모습으로 흘러간다.
폴은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수많은 팬들은 잊어버리고, 자신 스스로에게 세헤라자데가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애니가 집을 비운 틈을 타 방을 빠져나갔을 때, 그녀가 모아둔 기사 스크랩북의 독자가 된다. 그는 “너무 싫어하면서도 끝까지 다 봐야 직성이 풀리는 소설”을 읽듯이 "알고 싶어."에 빠져 애니의 책을 쉽게 손에서 내려놓지 못한다.
이렇게 폴과 애니는 각자의 갈망을 끊임없이 추구하면서도 작가와 독자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고, 서로를 가두면서 도망치고 싶어한다.
소설은 계속해서 자유롭게 창작하고 싶은 작가와 읽고 싶은 독자의 끊임없는 권력 싸움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관계를 단순한 대립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불쌍하고 불쌍한 것들."
...(중략)
"쥐 심장 뛰는 것이 이렇게 처절해! 도망치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이렇게 처절해! 우리랑 똑같아, 폴. 이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야. 우리는 스스로 아주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쥐덫에 걸린 쥐만큼이나 아는 게 없어. 등이 부러진 쥐가 살고 싶어서 이렇게 미련을 못 버리는 것 좀 봐." (288,289쪽)
스티븐 킹은 잔혹한 세상에 내던저진 인간이 어떤 모습인지 애니를 통해 날카롭게 말한다. 또한 고립과 단절, 파괴적인 인간관계에서 서로를 어떻게 갉아먹는지 이 작품을 통해 잔인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작가가 독자가 되고, 독자가 작가가 되는 순환에서 인간이 단절되지 않은 유기적 관계(존재)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관계 안에서 우리는 냉혹한 세상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발견한다.
폴과 애니의 관계를 통해 작가와 독자의 충돌을 폭력적으로 보여주지만, 결국 ‘책’이라는 창작물을 통해 함께 세상을 살아내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작가는 원고에 ‘끝’을 쓰고 독자는 그 원고를 읽고 또 다른 ‘끝’을 쓴다. 어쩌면 작가와 독자는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써내려나고 읽어가는 공동 저자일지도 모른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에서는 책을 통해 독자들이 만난다면, ⟪미저리⟫에서는 독자와 작가가 만난다. 그 만남은 잔인하면서도 애틋하다. 이 만남을 통해 명확해 보이던 작가와 독자의 경계는 불확실해진다. 그 둘은 그저 같은 원 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뿐이다.
문득,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자신을 어느 편에 가깝다고 생각할지 궁금해진다. 스티븐 킹은 ⟪미저리⟫를 읽는 독자들을 이 소설 속, 폴의 시나리오에 몰아넣으며 작가의 편에 선다. 하지만 그런 그가 독자의 정체성을 잃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오히려 “그토록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너)의 일부를 사랑”(362쪽)하게 된다.
가혹한 운명을 감당해야 하는 등장인물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