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기억할 무언가⟫, 강민선, 2025, 임시제본소
몇 해 전 도서전에 갔다가 눈길을 끄는 책을 보았다. 독립출판 [임시제본소]의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2018)라는 작은 책이었다. 마침 부스에 자리한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홀린 듯이 책을 구매했다. 책을 읽으며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 작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이미 몇 권 읽은 책의 작가였다. 전에 읽은 책들은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들로 같은 작가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재미있는 우연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가 마침 이번 신간, ⟪당신을 기억할 무언가⟫으로 작가와의 만남이 있어 참가신청을 하고 책을 읽게 되었다.
⟪당신을 기억할 무언가⟫는 작가가 24년 여름부터 쓴 일기를 뽑아 정리하여 엮은 수필집이다. 그만큼 글의 주제도 다양하다. 카페, 드라마, 날씨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부터 작가로서의 고민, 각오, 독립출판사의 고충과 도서전 참가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회 이슈에 대한 그의 시선도 읽을 수 있어서 이슈가 발생했던 그 시기에 나는 어땠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책과 같은 제목인 ⟨당신을 기억할 무언가⟩는 작가가 2024년 6월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포에버리즘 : 우리를 세상 끝으로⟫ 스티븐 비숍 Steve Bishop(1983~)의 ⟨당신을 기억할 무언가⟩(2019)를 관람 후 쓴 글이다.
스티븐 비숍이 일상과는 낯설게 배치한 팬트리를 보고, 작가는 긴 여운과 어색한 감각을 느낀다. 그리고 작품 제목이 왜 당신'을' 기억할 무언가인지 질문한다. 작가는 작품에서 느낀 낯선 감각을 통해서 우리는 사랑하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지만, 오히려 그 기억이 우리를 찾아와 깨우며 잊었던 것들을 다시 기억하게 해 준다고 이야기한다. 덩달아 작가가 느꼈을 그 낯선 감각을 가늠하며 내가 기억하기 위해 적었던 것을 무엇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내 기억의 각본가이자 연출자이다." 185쪽
"내가 열심히 불렀던 이름이 다시 나를 찾고, 내가 어딘가에 남겨둔 기억이 다시 나를 깨우는. 내가 살면서 보아온 것들을 기억하는 건 나뿐이지만 그 기억이 나의 일부가 되고, 마침내 전부가 되면, 나를 기억하는 것이 이 세상에 나뿐만은 아닐 수도 있게 된다. 이것이 희망인지 아닌지는 쓰기 나름이겠지. 일단 좀 자야겠다. 오랜만에 눈이 잠긴다." 186쪽 <당신을 기억할 무언가>
모두가 일기를 쓸 수 있지만 다시 들여다보고 다듬어서 세상에 내놓기는 쉽지 않다. 작가는 자신의 글이 소품, 그중에서도 더 작은 小소품쯤 될 거라고 말하지만, 작가의 그런 글들은 우리가 겪었던 각자의 일상을 떠올리며 사랑한 것들을 기억하게 해 준다. 무엇보다 글을 통해 그를 기억하는 독자가 생기고 있으니 이미 성공한 각본자이자 연출자라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언어도 결국 삶에서 나온 거지만 삶 그 자체는 아니다. 작가는 자기 삶을 수십 번 돌아보고 고쳐가며 언어를 만들고 다듬기 때문이다. 마치 돌가루를 체에 쳐서 사금을 걸러내듯이." 64~65쪽 <이상적 거리>
작가는 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질까 불안감을 가지고 기록을 한다고 한다. 혼자 농구를 하는 것처럼 묵묵히 하루를 기록하는 그는 삶을 자신의 단어로 다듬어 세상에 보여준다. 그의 글을 읽으며 나의 일기장을 생각했다. 2022년부터 조금씩 적은 나의 소소한 기록은 어떻게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언제까지 기억에 의존하며 작업을 할지 모르겠다는 작가를 응원하고 싶다. 그의 배우자가 70살이 되어서도 언리밋*에 나가야 진짜라고 한 것처럼. 나는 당신을 기억하는 누군가가 될 테니 우리 함께 기억하고 기록하자고 말하고 싶다.
*언리미티드 에디션 - 매년 늦가을에 열리는 독립출판, 아트북 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