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앎'을 의심한다

빌려온 지식을 나만의 지식으로 바꾸는 법

by 아무것도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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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머릿속에 쌓아둔 정보가 정말 '아는 것'일까. 남의 말을 빌려온 지식은 단단하지 않다. '그렇다더라' 하는 말들을 의심 없이 쌓아 올린 생각의 탑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져 내린다.




지식의 탑, 그 허무한 높이


'아는 것'이 많다고 착각하기 쉽다. 머릿속 서재에 책을 꽂아두듯 정보를 쌓는다. 하지만 그 탑은 단단한 암반이 아닌, '그렇다더라'는 타인의 말 위에 세워진다. 남의 관점을 빌려와 나의 것인 양 위장한다. 그 탑이 높을수록, 작은 충격에도 무너지는 속도는 빠르다. 머릿속에 쌓인 타인의 문장들은, 정작 안개가 끼었을 때 아무런 방향도 제시하지 못한다. 얕은 지식은 불안을 감추는 얇은 외피일 뿐이다.




균열 내기 : '왜?' 라는 질문


진짜 앎은 '쌓는 것'이 아니라 '깨는 것'에서 시작한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왜?'라는 날카로운 균열을 내는 일이다. 나의 생각과 세상의 진리가 부딪히는 그 불편한 마찰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 이 질문은 안일한 확신을 부수고, 생각의 탑 아래 가려져 있던 맨땅을 드러낸다. 앎은 그 불편한 바닥에서부터 스며든다.




연금술 : 나만의 언어로 기록한다는 것


질문으로 맨땅을 찾았다면, 이제 나만의 언어로 그 땅을 다져야 한다. 그것이 기록이다. 남의 언어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마찰을 통과한 생각을 나만의 문장으로 붙잡는 행위. 그 기록의 과정에서 '관점'이 생긴다. 내가 옳다는 안일한 믿음 대신, 어쩌면 틀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과 마주하는 용기. 이 모든 과정이 빌려온 '지식'을 나만의 '지혜'로 바꾸는 연금(鍊金)의 시간이다.




어제의 정답을 의심할 용기


그렇게 얻은 지혜는 완성품이 아니다. 어제의 정답을 오늘 다시 의심하는 용기. 그 치열한 의심과 성찰 속에서 얻은 앎만이 단단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이 안개 속을 헤쳐 나갈 유일한 '삶의 나침반'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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