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리다고 단정했던 타인의 삶

나라는 껍질이 깨지는 순간

by 아무것도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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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리다고 단정했던 타인의 삶에도 나만큼의 무게가 깃들어 있다. 그 진실이 ‘나’라는 단단한 껍질을 서서히 갈라놓는다.



'나'라는 단단한 껍질


'나'라는 껍질은 '나의 기준'이라는 편협한 잣대로 만들어진다. 그 잣대를 들이대 타인을 쉽게 재단한다. 저 삶은 틀렸고, 이 방식은 비효율적이라고. 그 단정은 '나는 옳다'는 자기 확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다. 이 껍질은 견고해서 외부의 소리를 차단한다. 타인의 삶을 이해의 대상이 아닌, 판단의 대상으로만 삼는다. 껍질 안에서, '나'는 세상의 중심이고 타인은 '나'의 세계를 스쳐 가는 2차원적인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들의 삶에 깃든 고유한 역사와 무게를 헤아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타인의 삶, 그 헤아릴 수 없는 무게


그러다 문득 마주한다. 내가 '틀리다'고 무시했던 그 삶이, 나와 똑같은—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한—무게를 견디고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 그의 짜증이 나의 짜증과 같은 뿌리에서 자라났음을, 그의 선택이 수많은 밤을 지새운 고민의 결과였음을, 그의 침묵이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을 껴안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그 삶 역시, 나만큼의 기쁨과 슬픔, 상처와 회복, 절망과 희망을 고스란히 겪어내고 있는 '또 하나의 우주'였음을 깨닫는다.




그 진실이 껍질을 갈라놓을 때


그 진실은 안일했던 나의 세계를 뒤흔든다. '나'라는 껍질에 날카로운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껍질이 갈라지는 것은 고통스럽다. 나의 '옳음'이 절대적이지 않았음을, 나의 '단정'이 얼마나 오만한 폭력이었음을 직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껍질 속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것은 자아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비좁았던 자아가 확장되는 순간이다.




껍질이 깨진 자리에서


껍질이 깨진 자리에서야, 세상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타인을 '판단'하는 대신 '이해'하려는 시선이 싹튼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이 가진 고유한 무게를 존중하게 된다. 껍질이 갈라진 그 틈으로, 타인의 진심이 스며들고 나의 진심이 흘러나간다. 이것이 '나'라는 감옥을 깨고 나와 타인과 만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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