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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 Oct 06. 2016

전설의 셔틀, 2016년판 말죽거리 잔혹사

단막극의 가치에 대하여

빵셔틀. 아무래도 이 신조어를 중학교 때쯤 처음 들었지 싶다. 어쩌다 이런 웃긴 대명사가 생긴건지 그 유래는 잘 모르겠으나, 그냥 언제부턴가 애들이 입버릇처럼 그랬었다. ‘빵셔틀, 빵셔틀.’ 사실 말이 좋아 빵셔틀이지, 정식 명칭으로 치자면 ‘학교폭력 피해자’이자 ‘일진에게 빵 사다 바치는 애’인데, 뭐 그렇게 심각할 거 있냐 싶어 누군가 웃자고 만든 말이겠지. 물론 이런 말장난의 저변에는 ‘빵셔틀’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우리들의 죄책감을 조금은 떨쳐내고자, ‘덜 무서운’ 일로 만들고 싶은 의지도 있었겠다, 이제야 짐작해본다.


어쨌든 내게 이 ‘빵셔틀’은 나의 학창 시절과 함께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었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다시 떠올릴 일이 없을 줄 알았던 ‘빵셔틀’과 ‘일진’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바로 우연히 발견한 KBS의 단막극 ‘전설의 셔틀’ 때문이다.









‘대한민국학교 다 X까라 그래’ 이후 12년, 빵셔틀의 등장

단 한 명의 일진 아래 평화로운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 무시무시한 전학생이 등장한다. 듣자 하니 서울에서 17대 1로 싸우던 (김성수 감독의 비트는 어떤 의미에서든 영원한 전설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아, 아수라는 넣어두자..ㅜ) 전설의 파이터라는데, 바로 우리의 주인공 강찬 이다. 근데 이 이름부터 뭔가 찝찌르 하더라니, 역시나 사실은 파이터는 커녕 서울에서 알아주던 빵셔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부산 일진 태웅이는 이 사실을 알 길이 없으니, 자기랑 좀 ‘끕’이 맞는 것 같은 찬이와 친구가 되고, 찬이에게는 모처럼만에 행복한 시절이 찾아온다. 이름하야 ‘위장 일진’이라고 들어는 보셨나. 그런데! 이게 웬일, 곧이어 서울에서 또 다른 전학생이 오게 되는데, 찬이가 빵셔틀이었던걸 너무도 잘 아는 전교 1등 서재우렸다! 자, 이제 우리의 전설의 셔틀 강찬은 어떻게 될까?







이후 드라마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가 또 배를 잡고 웃게도 만들었다. 심각하게 들어가자면 끝도 없이 어려운 주제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그 완급조절에 있어서 다소 미숙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어쨌든 약 60분 남짓한 러닝타임을 시청자가 집중할 수 있도록 끝까지 끌고 간 점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아름답게(?) 마무리된 이야기에 웃으며 TV를 끄긴 했지만 왠지 그 웃음의 끝이 다소 쓰다는 점과 드라마를 보고 4일이 지난 지금, 극을 계속 곱씹게 된다는 점이 이 드라마가 귀한 지상파 방송을 탄 이유이지 싶다.




즉, 한 가지 현상을 다양한 시각과 관점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그 동력과 모티브가 되는 것이 ‘스토리’를 가진 모든 매체들의 존재 이유라고 할 때, 전설의 셔틀은 이에 정확히 부합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아주 오랜만에 '현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창조했기 때문.



예를 들어, ‘학교폭력과 왕따’라는 사회 현상이 있다. 주인공 혹은 그 주변 인물의 자살 등으로 대표되는 심각하고 슬픈 이야기를 우리는 너무나도 많이 봐왔다. 페이크 다큐, 실제 다큐, 드라마, 영화, 연극 등에서 수 없이 언급되는 이 이야기에 어쩌면 우리는 무뎌져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나처럼.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이슈이기에 계속 반복은 되지만 점점 회자되지 않는다. 이유는? 모두 알고 있고, 모두 겪었고, 그만큼 지겨우니까. 하지만 뻔하고 지겹고 다 아는 것이라고 해서 이제 그만 얘기해야 하는 거냐,라고 하면 그건 아니라는 거다. 그렇기에 또다시 새로운 시각에서 코믹과 다큐와 휴먼 드라마를 적절히 섞은 이 다소 어설프고 귀여운 드라마가 너무나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는 전설의 셔틀을 보며,

1) 잊고 있던 빵셔틀의 추억과

2) 그때 그 빵셔틀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과

3) 나는 저런 상황에 어떻게 행동했더라 하는 반성 비슷한 감정과

4) 아직도, 빵셔틀은 사라지지 않았구나. 과연 문제는 무엇일까 하는

말죽거리 잔혹사 이후 잠시 미뤄두었던 고민들을 시작했다.




아 그리고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권상우 같은 근육질 몸매를 지니고 몇 달 만에 이소룡이 될 수 있는 이 땅의 평범한 고등학생이 어디 있겠는가. 12년 전 권상우 판타지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2016년 현재 우리의 주변에는 평범한 빵셔틀이 있을 뿐이다.








단막극의 매력: 네 거친 대본과 불안한 연출과 그걸 연기하는 너허어

내가 단막극을 좋아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불완전성’ 때문인 것 같다. 이 ‘불완전성’이란 단순히 ‘미흡함’이나 ‘모자람’을 뜻하는 건 아니고 굳이 가장 가까운 표현을 들자면 ‘신선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성 드라마에서 본 적 없는 기획의도와 연출 방법, 신인들의 연기를 보면 뭔가 리프레시되는 느낌과 함께 간만에 새로운 시각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단막극은 16개짜리 미니시리즈의 티저라고 할 수 있다. 작가와 감독에게 주어진 소중한 ‘60분’이라는 시간 안에 당신이라면 어떤 이야기를 하겠는가? 16개짜리 대본을 1개로 압축해서 보여줘야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보여주겠는가? 우리 모두가 예상하듯이, 그건 바로 ‘가장 중요한 이야기’, ‘내가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단막극만이 가진 엄청난 파워가 발휘되는데, 소위 말하는 ‘차 떼고 포 떼고 본론만’이 실현되는 몇 안 되는 ‘예술작품의 지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단막극이야 말로 모든 영상 혹은 연극 등의 극작을 통틀어 가장 압축적이고 강렬한 메시지를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작품’인데, 이 소중한 기회를 학교폭력의 실상과 그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전달 방식이야 어찌 되었든) 할애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이런 게 바로 ‘얼굴/연기 열일한다’인가

강찬 역할을 맡아 극을 전체적으로 끌고 가는 배우 이지훈은, 분명 어디선가 많이 보기는 했는데 대표작은 딱히 생각나지 않는 그런 배우였다. 하필 이름마저 ‘왜 하늘은’의 이지훈과 같아서, 아마도 포털 창에 검색해도 1번으로 안 나올 것 같다. 예전에 라스에서 한 번 보고, ‘생각보다 웃긴 사람이네’ 하며 웃고 넘어간 게 다 였던 배우인데, 세상에, 글쎄, 웬열, 진짜 고등학생이 되어 브라운관에 나오더라는 말씀.


일진 태웅이도 열일한다. 하트.



초반에는 ‘앗, 저 사람. 분명 고등학생과는 먼 나이일 텐데 진짜 고등학생처럼 보이네’ 생각하며 어려 보이는 외모 연출에 감탄했고, 중반부로 넘어서면서부터는 진짜 왕따같이 떨리는 눈에 약간 감동받았으며, 극이 끝나고 나자 ‘코믹 연기 진짜 웃기게 하면서 눈빛은 살아 있는 게 쉬운 연기가 아닌데, 지금까지 과소평가받은 배우군.’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는 무엇보다 ‘귀엽게’ 연기한다. 귀엽게 연기한다는 표현의 내 안의 정의는, 정말 ‘cute’를 뜻 하는 건 물론 아니고, 계속 눈길이 가고 질리지 않게 연기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눈빛이 훌륭하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연기를 보여준다고 해도 자꾸 보고 싶지 않으면 ‘땡’인데, 처음으로 마음먹고 제대로 본 그의 연기는 다음 연기도 또 보고 싶은 신선함이 있었다. 브라운관에서 막 반짝반짝 거리더라. (항상 느끼는 건데, 자신에게 딱 맞는 옷을 입은 배우만큼 반짝거리는 것도 없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잘생겼다. (후훗….)








단막극이 자꾸 브라운관에서 사라진다. 한 때는 베스트극장이 미니시리즈 시청률을 뛰어넘던 단막극의 황금기도 있었는데, 이제는 돈의 논리, 힘의 논리 등등에 밀려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한류스타가 명품 브랜드의 의류 협찬을 받아 온 몸에 휘감고, 겁나 비싼 고급차에서 멋지게 내리는 화보 같은 100억짜리 드라마도, 물론 좋다. 좋은데,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쑤-욱 들여다보게 해주는 그런 드라마도, 나는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KBS 드라마 스페셜의 시즌제 운영과 단막극 황금기의 부활을 응원해 본다.





(+) 아참, 믿기 어렵겠지만 유오성 배우가 아이들 반 담임 선생님으로 카메오 출연을 하는데, 배우 자신이 자기 필모를 오마쥬 하는 건 또 첨 봤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야광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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