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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 Dec 21. 2016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제발.

그리고 배우 변요한의 ‘위태로움’에 대하여


정말 이상하게도 어려서부터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굉장히 좋아했다.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솔직히 말하면 ‘환장'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내 기억이 닿는 인생 최초의 영화가 ‘백 투 더 퓨쳐’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취향저격이었으면. 그래서 주인공 마티가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간 바로 그 날, 2015년 10월 21일에 백 투 더 퓨쳐 2를 극장에서 관람한 일은 내 인생 통틀어 진짜 잘한 일 탑 쓰리에 든다. 잘했어. 잘했어 나새기야. (쪽쪽)




앞으로도 이 레전설은 깨지지 않을 거시야.




해리포터 시리즈 중에서도 3편 ‘아즈카반의 죄수’를 가장 좋아하는데, 헐마이온니가 시간여행을 하는 부분을 특히 계속 돌려본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는 편은 아니지만, 제일 좋아하는 애니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이고, ‘썸머타임 머신 블루스’라는 영화를 정말 사랑한다. 너무 재밌다. (흑흑..)



이쯤 되면 시간여행 소재의 한국영화 한 두 편 정도는 언급될 만도 한데 바로 떠오르는 게 없던 와중, 2016년의 끝을 잡고 드디어 나왔다. 시간여행 영화가!



음 그런데, 이 영화는 다른 영화들이랑 좀 다른데?










당신은 과거로 돌아가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나요?

나는 있다. 바로 어제로 돌아가서 그 문자를 보내지 말걸, 싶기도 하고, 지난달에 발목을 삐끗했던 그때로 돌아가서 길거리에서 핸드폰 좀 작작보라고 과거의 나에게 훈수질을 하고 싶기도 하다. 뭐 이 정도로는 아무도 시간을 되돌려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영화 속에서 저 물음을 정통으로 받아낸 주인공 ‘수현’은, 나보다는 조금 더 중요하고 훨씬 더 어려워 보이는 일을 하려고 한다. 바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신비한 알약을 사용해 자신의 인생 중 가장 후회하는 순간으로 돌아가 운명을 바꾸려 하는 것이다. 원작 소설이 워낙 유명한 데다 플롯 자체도 그다지 새롭지는 않아서, 약간 ‘나비효과’(2004) 생각도 나는 게, 좀 뻔하겠다 싶었다. 결과적으로 아니었지만.




사실 저 위의 질문은, ‘시간여행’ 그 자체에만 시선을 빼앗겨 있다면 언뜻 가벼워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잘 살아와서 되돌리고 싶은 순간 같은 건 없는데?’라고 말이다. 또는 무슨 판타지 영화가 시간 여행의 룰도 제대로 안 가르쳐 주냐고 욕할 수도 있다. 그저 ‘시간을 되돌리는’ 이벤트에만 매몰돼 있다면 말이다. 즉, 저 물음 뒤에 투명하게 처리되어 보이지 않는 추가 질문이 진짜란 걸 깨닫기 전이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그 순간을 만들었나요?’




저 한 줄의 물음은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가치이자, 관객 중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고 모두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마치 이 영화가 풀어내는 저 물음의 답을 가만 바라보고만 있으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온전히 우리 각자의 몫으로 되돌아오는 어려운 시험지를 받아 들게 되는 현실 같은 것이다. 아, 이번에도 똑똑한 감독에게 당했구나, 싶다.







아마도 홍지영 감독은 흥미로운 소재와 각본가로서 전하고 싶은 가치 사이에서 깊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소재 자체의 특성상 시간여행이 두드러질 경우 감독이 진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흐려지는 게 당연하니까. 그 치열한 고민에서 후자가 승리한 것이 명백해 보이는 이 영화를 두고, 어떻게 주인공이 여기저기 ‘뿅’하고 나타나는 거냐며 허점이 많다고 지적한다면 맥도날드에서 양념감자 찾는 소리를 하시니,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밖엔.


저기, 손님? 이 집은 빅맥을 잘합니다만.






항상 거기 있을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들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히 생각해 보자. 우리는 매일 보는 소중한 사람과, 오늘 처음 만난 덜 중요한 사람 중 누구에게 더 친절하게 대해주는가? 어느 쪽을 보고 더 밝은 미소를 지어주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굴 더 사랑하는가?



내 곁에 항상 있는 사람은 내일도 만나고 모레도 볼 수 있으니까, 그때 잘해주자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나 또한 소중한 사람에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잘하지 못한다. 정말, 다음에 전부 ‘모아서’ ‘한꺼번에’ 잘해주면 될 것 같아서. 항상 이 ‘다음’의 유혹에 빠지고 만다. 마치 계속 ‘거기’에 있어줄 것 같으니까 모른 척 미뤄두고 사는 거다.



그런데 우리들 개개인의 뼈아픈 경험과, 온 국민이 공유하고 있는 몇몇 비극적인 사건들을 보면 당신에게 완벽히 보장된 ‘다음’이 과연 있던가? ‘다음’에 사랑한다고 말해줘야지, ‘다음’에 고맙다고 해야지, ‘다음’에 잘해줘야지.... 다 부질없는 허상이자 귀찮음 혹은 회피에의 자기 포장일 뿐.



우리에게는 정확하게 ‘지금 이 순간’만 존재한다는 너무 뻔한 사실을, 제발 깨달으라고 이 영화는 처절하게 외치고 있다. 그리고 다행히도 나는 이 메시지를 들었다.












양(+)보다는 음(-)으로 폭발하는 배우, 변요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드라마 ‘미생’ 16국에서 흐릿하게 웃으며 돌아서던 한석율을 연기하던 변요한의 모습을. 연기자가 제대로 된 음(-)의 기운을 내뿜을 때, 밖으로 뻗어 나가는 양(+)의 에너지보다 훨씬 더 폭발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변요한을 보고 처음 깨달았다.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물론이고 그 주위의 공기까지 말 그대로 ‘착’ 가라앉게 만드는 그 몇 초의 순간이 슬로모션처럼 느껴지게 만들더란 말이다. 어느 영화잡지에선가 보았던 ‘연기가 몸에 딱 들러붙는다’는 게 바로 이런 지점을 말하는 거였구나 싶었다.




...와우.





이후, 일반에 공개되어있는 그의 필모그래피 대부분을 섭렵한 결과 그는 한마디로 ‘위태로운’ 배우였다. 장/단편을 불문하고 일관되게 볼 수 있는 이 연기자 특유의 ‘결’이랄게 없어 보여서, 캐릭터를 초월한 자연인으로써의 배우 자체의 색을 찾아내는 것 (당연히 송강호나 최민식 급의 ‘스타일’을 일컬음)은 힘들었지만 그만큼 신선하면서도 궁금해졌다. ‘믿고 보는’ 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뭔가 망설여지긴 하는데, 그렇다고 지겹거나 보기 싫은 건 아니고. 다음은 뭐지? 그 다음은? 이런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그 ‘지랄 꾸러기’ 한석율을 순식간에 ‘고요한’ 한석율로 만든 배우이니 오죽하겠는가.



그런 배우에게, 사랑하는 사람과 있으면 한없이 말랑말랑하지만 한편으로 자신만의 아픔을 품고 있는 ‘수현’ 역할이 돌아간 것이다. 그 안의 아픔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평범한 남자 주인공 캐릭터는 아니어서 일개 관객인 나 조차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배우 본인은 어땠을까. 역시나 양의 에너지를 풍겨야 했던 영화 초반보다, 수현의 아픔이 오롯이 드러나는 2/3 지점쯤에서 이 배우의 저력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흔들리는 눈빛이 대체 어디까지 잠길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어두운 감정연기는 빛을 발했고,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고 뒤돌아선 채 벌개지던 눈은 또 다시 처음 보는 수현의 고독이었다. 어디로 뻗어나갈지 알 수 없어서 불안하지만 그만큼 한계를 알 수 없는 배우 변요한의 또 다른 가지를 발견한 것이다.






독립영화 수십 편을 먹어 치우고도 계속 허기져 보이던 이 배우의 첫 상업영화 주연 데뷔작의 테마가 ‘seize the day’ 라는 것 또한 ‘참 변요한답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그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차고 넘치지만, 다음 작품에서 보여줄 그의 ‘위태로움’을 또 그려낼 여지를 남기기 위해 문장 하나와 함께 배우 변요한에 대한 소회를 마치려고 한다.



‘냉정과 열정의 가르마를 5:5로 가르고, 넉살과 진지함을 뒤섞은 기름을 곱게 발라 캐릭터의 머리를 꼼꼼히 빗어 올린, 단정한 광기의 손님이 문을 두드린다.’



단정한 광기의 손님.



평소 내가 좋아하는 백은하 기자의 글인데, 개인적으로 그를 표현한 가장 완벽한 수식구라고 생각한다.










'꼭 해피엔딩이어야 하나? 중요한 건 이야기인데.'

엄마와 나는 평생 살갑게 대화해 본 적이 없다. 진짜 없다. 통화한 지 너무 오래됐나 싶어서 전화하면 돌아오는 말은 다짜고짜 ‘왜, 무슨 일 있어?’였다. (이거 진짜 뻘쭘하다. 우리 모두 전화는 반갑게 받아주자.)



그런데 최근 들어 우리 둘이 공유하는 조금은 아픈 경험이 생겼고, 요새 그녀는 내게 밑도 끝도 없이 고맙다고 말하곤 한다. 그래서 뭘 고마워하는지 솔직히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나도 고맙다고 말한다. 항상 내가 그녀에게 하는 마지막 말일 수 있다는 생각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어, 내가 더 고마워.'









음 그래서,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당신은 과거로 돌아가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나요?


그럼 이제, 그런 순간을 만들지 않을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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