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리 Feb 10. 2017

재심, 클리셰 너머의 진심.

꾼으로 거듭난 강하늘을 중심으로


“아,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프로그램(사실 옛날부터 인기는 많았다)인 ‘그것이 알고 싶다’의 대박 유행어(?)다. 사실 나는 저 유행어를 직접 TV로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잘 못 보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냥 무서워서 못 보는 줄 알았는데 최근에야 진짜 이유를 깨닫게 됐다. ‘현실을 마주하기가’ 무서워서였다. 특히 억울한 사건이 나올 때면 내 얘기 같이 가슴이 답답해지고 화가 나서 잠도 잘 못 자기 때문에 내가 택한 방법은 ‘회피’였다. 진짜 그알 때문에 인간의 현실도피와 합리화 과정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재심’이라는 영화가 제작 중인걸 알았을 때, ‘헉. 집에서도 안 보는 그알을 영화관에서 볼 수는 없지, 암.’ 이라며 또 한 번 도피를 시도했으나 결국 두 배우의 눈에 붙잡혀 스크린 앞에 꽁꽁 묶였다.

 





프로파간다의 올바른 사용법

‘재심’은 일명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으로 유명한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주인공은 범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10년이나 복역하고 세상에 나온 현우(강하늘)고, 재심을 통해 현우의 누명을 벗기려고 고군분투하는 변호사 영준(정우)과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말하자면 버디무비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엔 법정에서의 공방전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재심까지 가는 과정의 험난함을 그린 영화였다. (나는 왜 그리도 초조하게 러닝타임을 계속 확인했던가… 먼산…)





그 험난함이 어떤 것인지,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피로했기에 굳이 글로까지 옮기고 싶지는 않아서 자세히 논하지는 않겠다. 다만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MAX치로 열이 뻗칠 수 있는 요소는 다 모아놨다는 건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요새는 열 받는 일이 하도 많아서 내성이 생겼는지 초반에는 아주 화가 나다가,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이성을 되찾으며 이런 생각에 빠지게 됐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딱 봐도 만만한 ‘다방 꼬마’에게 누명을 씌워 잡아넣으면 승진할 수 있었던 경찰. 이를 발판 삼아 약촌 촌구석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존나 검사같이 생긴’ 검사. 현우모(母)의 절규보다 매달 나오는 월급이 더 중요했을 국선 변호사. 좀 더 들어가서, 더 킹의 한강식, 자백의 김기춘, 청문회의 우병우는 도대체 왜 끝없이 나타나는가.


당연히 이런 생각을 나보다는 김태윤 감독이 수 만 배 더 많이 했을 터다. 나 같은 보통의 인간에게 이런 문제 인식이나마 심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미친 듯이. 그는 이 사건을 처음 알게 되고 영화로 만들 생각을 하면서 되도록 많은 사람이 현실을 똑바로 보게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또 저런 괴물들은 시시 때때 도처에 나타난다는 것, 잠시라도 관심을 놓으면 언제 저런 일이 또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 그 피해자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궁극적으로는 ‘기억’ 해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해주고 싶었겠지. 이를 위해서 감독은 정공법을 사용한다. 이른바 ‘프로파간다’를 정면에 배치하여 영화의 전체적인 플롯부터 마지막의 카운터 펀치에 이르기까지 좋게 말하면 모범적으로, 나쁘게 말하면 나이브하게 구조를 짜내었다.



입만 열면 돈, 돈 거리던 이영준이라는 속물 변호사가 이 사건을 맡으면서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를 스스로 느끼며 점차 변화해가는 서사. ‘돈이 최고 짱짱맨’ 구호로 함께 대동 단결했던 로펌 대표에게 ‘당신이 받는 수 억의 수임료보다 내가 받은 몇 푼 안 되는 누군가의 전 재산이 더 가치 있다’고 일갈하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어쩔 수 없는 카타르시스. ‘인생 한 방’을 노리던 그의 첫 모습과, 그토록 염원하던 로펌을 뻥 차고 나오던 뒷모습의 완벽한 수미상관.






내가 느끼기에, 이 캐릭터 자체가 재심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형상화한 영화의 주제 인 것 같다. 대단히 뻔한 클리셰 범벅의 인물이지만, 클리셰가 왜 클리셰겠는가? 먹히니까 클리셰다. 욕 먹으면서도 글쟁이들이 계속 그런 인물을 만들어 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워낙 평소에도 ‘오그라드는 것’은 못 보는 성미라 잠시 주먹을 쥐게 한 장면들도 있었지만, 현우의 '전 재산' 수임료를 보란 듯이 내밀던 준영의 풀샷에서는 두손 두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의 ‘선동’이 내게 먹힌 것이다.

 






얄미운 장백기에서 고행의 아이콘까지

(주의: 그간 미뤄두었던, 배우 강하늘에 대한 감상이 봇물 터지듯 폭발할 예정입니다. 대따 기네요.)


강하늘의 최대 강점은 ‘연기변신’이랄게 없는 배우라는 거다. ‘연기 변신!’이라는 기사 타이틀을 쓰기에 망설여지는 배우. 누군가는 저 타이틀을 썼다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백스페이스를 눌러 지워나갔을 것이 분명하다. 강하늘은 이미, 벌써, 연기 스펙트럼이 너무 넓기 때문에 ‘변신’이라는 표현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그냥 강하늘이다.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시로써 나눌 줄 아는 시인(동주)이었다가, 한 떨기 꽃 같은 청각장애 작곡가(좋아해줘!)였다가 타락하고 비열한 진(순수의 시대)도 되더니, 또 어느샌가 누명 쓴 동네 양아치가 되어 소리 없이 나타난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 중 어느 것 하나 어색하지가 않다. 현존하는 90년대생 배우 중, 오늘 양아치를 연기했다가 바로 내일 청춘 드라마를 찍어도 1도 어색하지 않은 배우. 강하늘 외에 또 있을까? 선뜻 다른 배우가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 강하늘은 좀 억울한 배우일 수도 있다. 왜 그런 사람 있잖은가. 원래 잘하는 애인걸 모두가 알아서 굳이 '잘했다' 말해주지 않는. 나 자신만 해도 동주를 보면서, 스물을 보면서 굳이 강하늘의 연기에 대해 더 언급할 필요를 못 느꼈다. 아 강하늘은 뭐 원래 잘하니까. 분명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약간 극의 '디폴트'같은 구성요소라고 해야 하나.. 그렇기에 그런 동주의 곁에서 용감하게 필모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박정민에 대해 논했고, 찌질한 경재의 곁에서 더 찌질한 연기를 펼친 김우빈을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그 소감들에 글로는 옮기지 않은 내 안의 마지막 평은, 그들의 호연이 강하늘의 든든한 연기 없이는 어차피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거다.



말 안 해도 다 알기에 불필요한 사족이라 여겼지만, 이번 영화를 보고는 도저히 언급하지 않을 수 없어 굳이 이렇게 긴 썰로 풀어내어 본다. 강하늘은 관객이 기대하는 바를 정확히 연기해 낼 줄 아는 좋은 배우라고.



배우에게 내려진 ‘평범함’이라는 축복
배우 강하늘에게 이런 후한 평가를 내리게 된 배경은 뛰어난 연기력 외에도 그의 신체조건도 큰 몫을 한다. 그의 외면은 소위 말해 ‘특수성’을 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연기자는 얼굴은 물론이고 상체와 하체, 전반적인 비율 및 손과 발까지 모두 연기의 도구로 아주 적절하게 관리하며 사용할 줄 알아야 된다는 주의인데, 강하늘만큼 웬만한 상황에 다 들어맞는 신체조건을 가진 연기자도 참 드물다.



예를 들어 강동원이나 조인성은 다리가 너무 길고 얼굴이 매우 작다. (물론 그래서 제가 많이 사랑합니다.하트.) 그래서 사제 역할을 하면 따로 제작된 사제복이 필요한 ‘모델 사제’가 되고, 검사 역할을 하면 3분쯤 몰입하다, 7분은 '아니 근데 저런 검사가 대체 어딨어!'라고 슬그머니 딴생각을 하게 되는 ‘그림 같은 검사’가 된다.



그런데 강하늘은 어떤가. 아주 평균에 가까운 신체조건과 더불어 운동을 하면 확실하게 근육이 잘 붙는 체질이라 정말 막노동 근육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가도 (재심을 보며 최종적으로 확인함) 또 근육이 빠지면 그냥 병맛 옆집 오빠인 경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 간극의 벽이 아주 낮아서, 그는 양아치였다가 동주도 될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배우이다.



이건 조금만 생각해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는데, 강하늘보다 조금이라도 더 작거나 혹은 5센티라도 큰 사람 / 강하늘보다 좀 더 말랐거나 좀 더 근육질인 사람을 떠올려보자. 그럼 우리 머리 속에서 한 가지의 이미지로 생각이 기우는 걸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포지션을 점하고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상 가장 거침없이 글을 쓰는 기자들이 존재하는 이 시대에, '연기 변신'이라는 상투적이지만 확실한 표현을 쓸 수 없게 하는 배우. 그런데 그 사이, 영화 재심마저 공개되어 버렸다. 그렇다는 건 이꼬르, 이제 다음에 또 강하늘이 1)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극의 등장인물로  2) 다소 양아치스러운 역할로  3) 수감자의 신분으로 등등이 포함된 n개로 파생될 수많은 캐릭터를 맡았을 때도, ‘변신’이라는 타이틀을 쓸 수 있는 기회는 또다시 날아갔다는 것이다. 이 젊은 배우는 어느새 이렇게나 많은 경우의 수를 보유한 꾼으로 성장해 버렸다.







덧붙이며, 이동휘는 언제까지 약방의 감초일까
뷰티 인사이드를 보고 나와 짧게 찌끄린 글귀를 다시 찾아보니 말미에 이렇게 쓰여있다.

'.. 덧붙여서 다음엔 이동휘 배우 멜로 연기도 보고 싶음. 잘할 거 같은데..'

대동소이하게 반복되는 캐릭터 결에 대해서는 배우 자신이 가장 아쉬워할 것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기에 이번엔 '3인자 급의 분량 확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음에 의의를 두기를 바란다. 부디 감독님들께서 한 번쯤 이동휘의 다른 얼굴에 과감하게 배팅함으로써, (혹여 망하면 제 탓은 아니나) 잭팟이 터졌을 때의 쾌감을 꿈꾸며 인생역전에 도전해 보시라 권해드리고 싶다.

히로인들의 천국이었던 영화 아가씨에서, 그가 '호..호..호로새끼!'라고 외치던 그 찰나의 순간만큼은, 모든 공기를 이동휘로 꽉 채웠던 그 느낌적 느낌을 놓치지 마시길. 하이리스크 하이 리턴!








마침 친일과 망각(뉴스타파 기자단 저, 2016)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역사는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기억이라는 문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이 사건을 한 때의 이슈로 삼고 소비하고 지나간다면, 똑같은 일은 또 반복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내가 바라는 건 그저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일 뿐인데 이거 하나 이루기가 이렇게 어렵나, 한숨이 푹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영화 중간중간에 조금 피식거릴 수 있는 숨구멍을 만들어 놓아서 (정우는 사투리 일상 연기의 신이다!) 관객이 느끼는 절망을 한 번씩 끊어 준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누가 그런 숨구멍 좀 뚫어줬으면 좋겠다.  






(+) 이건 사견인데, 영화의 정식 개봉 전에 중간중간 다소 거슬리던 음향과 음악들을 조금 더 손봤으면 한다.


(++) 아아, 이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떠올랐다. 극장을 나오면서 꽤 화가 났었지만, 강하늘의 노래와 정우의 어마어마한 마지막 5분의 호연으로 분을 삭였던 영화 쎄시봉의 날카로운 추억이.


매거진의 이전글 다른 길이 있다, 다른 길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