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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행성 Sep 20. 2024

맨하탄 네일샵의 그녀들

내가 있던 맨하탄의 네일샵에서 일하시던 분들은 대부분 30대 중반에서 40대 초중반 분들이었어. 제니, 샐리, 에이미 이런 영어 이름들을 쓰고 계신 언니들이었는데, 각자의 사연들을 가지고 뉴욕에 오신 분들이었지. 손님들이 몰리는 시간이 지나면 가게 앞 과일 노점에서 과일을 사서 야무지게 깎아주시던 생각이 난다. 좋은 언니들...살면서 자몽을 제일 많이 먹은게 그 때야. 과일도 많이 먹으면 살찐다...

당시 이 언니들은 한국돈으로 팁 포함 월 500만원 내외로 버셨던 것 같아. 언니들 말씀으론 뉴욕은 나이든 (한국)남자들이 밥벌어먹고 살 일이 별로 없대. 그래서 집안의 가장들이나 마찬가지였지. 그래서 남편분들은 네일샵에서 쓰는 자재들 딜리버리하거나.. 뭐 관련된 자잘한 일들 하시는 분들이 많았어.


거기 계신 분들은 대부분 영주권이 있냐 시민권이 있냐가 중요했어. 그때문에 엉뚱한 남자와 결혼하고 이혼한 분도 계셨고, 또 반대로 결혼했다가 남자가 영주권 취득한 순간 떠나가서 싱글맘이 된 분도 계셨지. 왜 그렇게들 어렵게 미국에서 자리잡고 버텨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어. 각자의 사연이 있겠지만, 다들 하도 영주권 시민권에 목숨 거니까 나도 괜히 취득하고 싶어지기도 하대 ㅎㅎㅎ


우스개 소리로 뉴욕에 있는 한국 여자는 다 이대 출신, 한국 남자는 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말이 있었어. 진짜로 그런지 확인되진 않지만, 20여년 전인데 그렇게 가족들이랑 다 같이 미국으로 건너갈 결심을 할 정도였다면 보통 용기있는 사람들은 아니었을 거야. 그치?


다들 알다시피 뉴욕의 물가는 엄청나게 비싸. 그래서 저 정도의 급여를 받아도 사실 아주 넉넉한 형편들은 아니었던 것 같아. 우리 나라 국민임대주택 들어가려면 연 수입이 얼마 이상이면 안 되는 그런 거 있잖아? 뉴욕도 그런게 있는데 최근 듣기론 그 연 수입이 1.3억 정도 된다고 들었던 거 같아.


그래서, 관광객으로 놀러가거나 넉넉한 유학생 신분으로 가는 뉴욕과 없는 형편에 버텨내야 하는 뉴욕은 전혀 다른 팍팍한 도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너무 럭셔리하고 화려한 볼거리가 많다보니까 상대적으로 나의 가난이 더 부각되는 부분이 있더라고.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친구 말론 미국은 다른 물가는 다 올려도 수퍼에서 파는 기본 식빵, 계란, 우유 가격만큼은 최저 수준을 유지시킨대. 저소득층이 굶어 죽진 않아야 하니까 그렇다나.

나도 뉴욕에 있는 동안에는 저 식빵, 계란, 우유 많이 먹은 거 같아 ㅎㅎ 확실한 건 과일은 한국보다 싸다 지금도.


여튼 그렇게 1년가까이 버티다가 한국에 돌아올 때 나는 결심했어. 다음에 뉴욕에 돌아올 때에는 저얼대 가난한 상태로 돌아오지 않겠다. 내 주머니에 거기서 살면서 모은 돈 2000불 정도를 넣고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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