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의 조언을 원한 적 없어

by 윤도토리

회사 동기들과 점심을 먹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적극적으로 먼저 점심 약속을 잡던 친한 동기들은 일찌감치 퇴사 각을 세우고 저마다 더 좋은 곳으로 이직을 해버렸다. 친한 동기들이 떠나버리자 적당히 애매한 친목을 유지하던 동기들만 남았다. 마음 같아서는 더 편한 팀 사람들과 밥을 먹고 싶었지만, 회사에서 끌어주는 건 동기밖에 없다는 직장생활의 오래된 잠언 중 하나를 마음속에 되새기며 내키지 않는 점심 자리에 나갔다. 저마다의 근황을 주고 받던 중, 내 차례가 되었다. 우리 회사는 본인이 원하면 다른 팀으로 이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는데, 그즈음 나는 오래 몸담고 있던 팀을 나와 새로운 영역의 신사업 팀으로의 이동이 확정되어 있었다. 신입사원 시절 일을 가르쳐주던 사수가 신사업 팀의 팀장으로 가게 되면서 감사하게도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주었던 차였다. 기존 팀에서 엄청난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나는 길지 않은 형식적인 고민 후 제안을 받아들였다. 동기들에게 새 팀으로 이동하려고 한다고 이야기하자 한 명이 정색을하며 이야기했다.


거기 비전 없다고 하던데?


그 뒤로 그녀의 신사업 부서에 대한 브리핑이 이어졌다. 새로운 사업을 하는 신생 부서인 관계로 정보도 많지 않았었는데도 불구하고 꽤나 자세한 설명이었다. 대부분이 본인 혹은 주변인들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의견이었다. 재무팀에서 일하는 그녀가 보기에 그 사업이 얼마나 회사의 돈을 빨아먹을 ‘예정’인지에 대해서 말 그대로 침을 튀기며 이야기했다. 내가 보기엔 그 팀과 원수라도 진 모양 같았다. 본인의 의견에 덧붙여 본인이 친한 선배도 부정적인 전망을 내뱉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고직급자의 의견을 덧붙여 본인의 의견에 확신을 더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 그 외에도 뇌피셜이 함유된 다양한 근거를 보태어가며 장황하게, 그 팀은 미래가 없어 보이니 그냥 지금 팀에 잔류하라는 조언을 투척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조언을 원한 적이 없었다.




나는 이미 그 팀에 가기로 확정이 되었다고 동기들에게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그 팀에 갈까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가 아니었고, 그 팀에 갈까 말까 고민 중이니 조언을 구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었다. 나는 다만 그 팀에 가게 되었다는 나의 소소한 근황을 공유한 것이다. 또한 나는 그 누구의 조언이 필요한 단계가 아니었다. 그녀가 아무리 그 팀에 대해 비난을 하더라도, 이미 팀 이동은 확정된 상태로 가기로 한 결정은 번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팀에 간다고 해서, 그 팀이 그녀의 말대로 회사의 등골 브레이커 같은 존재가 된다고 해서, 혹은 시원찮은 성과를 낸다고 해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조직을 이끄는 임원진도 아니고, 다만 일개 직원에 불과할 뿐이었다. 어쨌든 나는 같은 회사에서 같은 연봉을 받고 같은 시간을 일하는 것이다. 달라지는 것은 명함의 팀 이름 한 줄 뿐이었다. 전혀 모르는 새로운 팀이었다면 새로운 동료에 대한 걱정 정도는 들지 몰랐겠지만, 그 팀에는 나를 불러준 팀장을 비롯해 내가 아는 사람이 몇몇 있었다. 나는 걱정보다는 새로운 팀에 대한 기대로 설렘에 가득했다. 그녀가 초를 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동기가 정말 그 팀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녀가 정말 나의 미래가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하더라도 ‘신사업이라 어려울 것 같은데 잘 되었으면 좋겠다.’ 정도의 우려와 응원을 담은 한마디면 족했을 것이다. 나는 충분히 그녀의 걱정과 우려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렇게 내 미래의 청사진에 침을 튀겨가며 굳이 원하지도 않은 잔소리를 할 필요는 없었다. 씁쓸한 점심시간이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다. 사내 메신져의 알람이 떠 있었다. 본인이 너무 나쁘게 이야기한 것 같아 미안하다는 내용이 메신져였다. 밥을 먹고 정신을 차리니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일까?


몇 남지 않은 동기 인맥을 망치기 싫었던 나는 화를 참으며 ‘그래^^’라는 한마디를 보냈다. 웃음 속에 숨겨진 나의 짜증을 그녀가 읽어주었다면 좋을 것 같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지금도 그 신사업 팀에서 일하고 있다. 신사업 팀인 만큼 중간에 시행착오도 많았고, 엄청난 성과를 내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껏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외부 인력이 많아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는 것 같은 활력을 주었으며, 심지어 같은 돈을 받으면서 업무 시간은 훨씬 줄어들었다. 이 정도면 만족이다. 그리고 그때 그녀가 언급한 ‘신사업 팀을 부정적으로 보는 선배’도 얼마 뒤 우리 옆 부서로 와서 지금껏 열심히 일하고 있다.


퇴직금 예상 수령액이 늘어날수록, 나도 새로 들어오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가장한 잔소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다. 혀끝까지 맴도는 잔소리가 입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나는 내가 들었던 쓸모없던 조언들을 떠올린다. 그들의 조언 아닌 조언이 이렇게나마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