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기분 나쁜데 참고 있는 거야.

by 윤도토리



회사 동기 둘과 함께 출장 차 지방에 다녀온 날이었다. 새벽에 가까운 꽤 늦은 시간에야 공항에 도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까맣게 어둠이 내려진 밖으로 나와 택시 승강장으로 향했다. 택시가 잘 안 잡히던 날이었는지, 택시비를 아끼려던 마음이었던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 셋은 택시를 셰어해서 집에 가기로 했다. 어찌어찌 택시를 잡고 나서 우리 셋은 집으로 향했다. 동기 한 명은 집이 공항 근처라 금방 택시에서 내렸다. 나머지 한 명의 동기와 내가 여독으로 지친 몸을 시트에 기대며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거리 승객이 아니었던 것이 못마땅했는지, 이리저리 돌아가는 게 고생스러웠는지 나이 지긋한 기사가 몇 마디 말을 내뱉었다. 이런 식으로 합승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목적지가 다른 세 명이 한 택시를 탄 것이 잘한 일은 아니니 나는 그냥 눈을 감고 아저씨의 책망을 듣고 있었다. 다른 장소, 다른 시간이었다면 나도 몇 마디 받아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택시라는 이동 수단에서 드물지만 강력하게 겪은 사건들이 나의 자제력을 강화시켜줬다. 지켜보는 이 없는 한산한 도로 위 밤늦은 시간이라는 것도 한몫 거들었다. 분명히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한 귀로 흘리려고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함께 타고 있던 동기가 눈을 뒤집은 채 화를 내기 시작했다. 대충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말라는 신고를 하겠다는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저씨의 잔소리 강도에 비에 과한 반응이어서 나는 물론 기사 아저씨도 말문이 막혀 버렸다. 둘 다 대꾸도 못한 채 동기의 쏘아붙임을 듣고만 있었다.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지금까지는 어쨌든 2:1의 상황이었다. 택시 기사가 화를 참지 못해 성을 내거나, 만에 하나 폭력을 쓰거나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우리가 한 명 더 많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동기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는 마침 집 근처에 다다르자 짜증을 내면서 집으로 내려버렸다. 나는 차 안에 혼자 남았다.


매우 불편한 동행이 시작됐다. 다들 자잘한 짐이 많아 나는 조수석에 타고 있던 터라 더욱더 마음이 불편했다. 밤늦은 시간에 화가 난 택시기사의 옆자리에 앉아 시속 100km로 달리는 일은 쫄보인 나뿐만 아니라 웬만한 이들에게도 편하지 않은 경험일 것이다. 아저씨는 그렇게 내려버린 동기의 욕을 나에게 하기 시작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동기를 함께 욕하면서 택시 기사의 편을 들었다.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겨우 겨우 아저씨의 마음을 풀어주고 나서야 나는 집에 도착했다. 참으로 마음 불편한 새벽의 드라이브였다.




나는 화가 났다. 애초에 우리에게 뭐라 뭐라 잔소리를 한 택시 기사보다 동기가 원망스러웠다. 굴절된 분노라고 할 수 도 있겠다. 애초에 택시 기사가 먼저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그를 욕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낸 화의 정도는 적당한 기분 나쁨으로 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동기가 낸 화와 그 이후의 상황은 나에게 기분 나쁨이 아닌 무서움을 가져다주었다. 동기가 화를 내고자 마음을 먹었을 때 그녀가 내리고 나서의 상황은 고려대상이 아니었을까? 새벽에 본인이 화를 잔뜩 돋워 놓은 택시 기사와 함께 남은 길을 동행해야 할 나에 대한 걱정보다 그 당시 자신의 화를 표출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일까. 동기는 실컷 화를 내고 속 시원하게 잠에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잔뜩 긴장한 탓이었을까 피곤함으로 온몸이 지쳐있었지만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사람은 누구나 화가 난다. 화가 나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은 다르다. 화가 나도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있고, 화가 나면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화가 나지 않아도 화를 내는 사람이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우선 두 가지 경우만 생각해보자. 대게 사람들은 화가 날 경우, 내가 화를 내도 사회적으로 용인될 상황일지에 대한 판단을 한다. 이러한 상황 판단이 되지 않는 상황을 이성을 잃는다 말한다. 과연 그 택시에서의 상황이 그 동기에게는 이성을 잃을 정도의 상황이었을까? 누가 보더라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 동기는 상황판단을 했어야 했다.


내가 내리고 나면 도토리가 혼자 남으니 화가 나지만 참아야겠다.


이 것이 올바른 판단 아니었을까? 혹은 어떻게든 한 마디를 해야 속이 시원했겠다면, 화를 내고 나서 나와 함께 택시에서 내리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화를 내는 데에 나라는 변수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나는 가만히 있다 봉변을 당하고 말았다.


화를 잔뜩 내면서 내린 그 동기는, 설상가상으로 택시비도 주지 않았다. 나만 괜히 비싸고 무서운 택시를 타고 말았다. 그날 밤 택시에서 화를 내던 동기의 모습이 떠올라 차마 택시비 달라는 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택시비가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