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이야.

by 윤도토리

질문을 하나 던져보고자 한다.


회사에서 함께 일할 동료로 머릿속이 단순한 사람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 중 한 명만 고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지금의 나에게 한 명을 선택해야 할 상황이 온다면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지금 생각으론 마음 편하게 그의 머릿속 꽃밭에서 함께 뛰어놀고 싶다. 나중에 또 어떤 이로 인해 이 선택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으나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의 선택은 그렇다. 회사라는 곳이 마땅히 우리의 몸과 머리를 통해 만들어지는 산출물을 대가로 돈을 받아 가는 곳일 텐데 생각이 없는 사람을 고르다니, 프로페셔널 하지 못한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옆자리 동료의 이야기를 살며시 꺼내 보면서 나의 선택을 합리화하고자 한다.




꽤 오랜 기간 함께 한 동료가 있었다. 똑똑하고 본인의 일도 잘 해내는 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 동료의 행동에서 뭔가 모를 불편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는 항상 타인의 속내를 해석하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타인이 말한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안에 숨어있는 의미 혹은 저의를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큰 해를 끼치지는 않았다. 나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을 한다거나, 일적으로 나를 방해 한다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한 기간 동안 나 역시 서서히 경증의 편집증 환자가 되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며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분석하는 그의 옆에서 내가 오히려 세상을 너무 평면적으로 바라보는 것인가 하는 쓸데없는 자아 반성 습관까지 얻게 되었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빡빡하고 피곤해졌다.


예를 들어보자. 나의 경우는 회사에서 윗사람이 기존의 업무와 결이 다른 새 업무를 시키면 우선은 그냥 하는 쪽이다. 새로 업무를 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배경지식 정도만 확인하고 웬만하면 그냥 바로 일을 하는 편이 편하다. 나는 그냥 급하니까 나한테 시켰겠지 하고 생각하고 빨리 처리해서 털어버리는 것을 선호했다. 하지만 그 동료는 항상 무언가 숨은 의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팀장님이 좀 전에 그 일 왜 시킨 거 같아?
이번에 팀 쪼개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시킨 건가?
왜 B한테 안 시키고 너한테 시켰대?
B는 다른 팀으로 가는 건가?
이제 네가 이 업무 전담하는 거야?


자잘한 새 업무 하나가 내게 떨어졌을 뿐인데 쉼 없는 질문 폭격이 쏟아졌다. 정작 수많은 질문 중 업무와 직접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다른 이들의 말속에 숨겨져 있는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이, 두뇌 회전이 빠르고 멀티태스킹에 능한 그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정도의 관심과 에너지가 없는 나로서는 그의 사고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힘들었다. 나는 그냥 주어진 업무를 하고 싶을 뿐인데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나 역시 팀장님의 말을 하나하나 해석해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과 부채감이 쌓여갔다. 단순한 나의 뇌 구조가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문제였다. 머리와 마음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그의 추론이 맞는 경우는 드물었다. 열심히 생각해 낸 추론들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다. 팀장님은 그냥 그날 내가 눈에 띄어서 나에게 그 일을 시킨 것이고 조직이나 인력의 조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고, 회사에서 매일같이 생겨나는 메일, 회의, 지시, 보고 속에서 나도 점차 그처럼 숨은 의도를 해석해야 할 것 같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어느 날은 그 동료가 나에게 와서 이런 말을 꺼냈다.


사원 A랑 B랑 사이 너무 안 좋아 보이지 않아?
A가 B를 싫어하는 것 같아.


A와 B는 동갑내기 사원으로, A가 일 년 일찍 입사해서 선배였으나 둘이 대학, 전공, 업무 영역이 같아 친구처럼 지내곤 했다. 내가 보기엔 그 둘 사이에는 어떠한 문제도 없어 보였다. 동기가 없던 팀에서 선후배지만 동기처럼 의지하며 지내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동료의 눈에는 왜인지 모르게 A와 B 사이에 보이지 않는 어떤 기 싸움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기 싸움이 있는지 없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둘 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일을 잘 하고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아닌 것 같다고 둘이 사이 좋아 보인다는 나의 답변에 그는 지난번 무슨 이야기를 나누던 중 B의 말에 A의 얼굴이 굳는 것을 목격했다고 했다. 그래 그럼 사이가 안 좋은가 보지. 사이가 좋건 좋지 않건, 내가 보는 그 둘은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굳이 내가 둘의 관계를 추정해가며 그들의 사이를 성급히 판단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로 인한 실익도 없어 보였다. 그 둘이 뒤에서는 은밀하게 사이가 안 좋은 것이 사실이라 하여 당장 나에게 오는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그 둘 사이를 관찰하고 분석했다. 그 후로 시간이 지나고 둘은 현재 퇴사를 한 뒤 각각 다른 회사에서 지내고 있다. 둘이 아직까지 만나면서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보면 결국 둘 사이에 무언가 크게 불편한 부분은 없었던 것같다. 동료가 목격한 굳은 표정은 (굳은 표정이 사실이라면) 그냥 일시적인 얼굴 근육의 강직이거나, 아니면 잠시 미간을 찌푸릴 정도의 사소한 것이었을 것이다. A와 B의 관계를 유추하고 추측하고 억측하는 동료의 그 에너지가 대단하긴 했지만, 점차 그가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타인의 의도란 어차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의도를 파악해서 얻는 실익 대비 투입되는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다. 본인은 매사에 숨은 진의를 파악하는 자신을 눈치 있고 상황 파악에 능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으나, 내가 보는 그는 피해 의식이 강하고 예민하며 무엇이든지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꼬인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꽤 오랜 기간 같은 팀에서 함께 했는데 이 같은 사고방식에 나까지 물들어 한동안 꽤 힘들었다. 필요치 않게 머리를 쓰는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나를 단순하다고 욕할진 몰라도 나에게는 그런 몇 단계에 걸쳐 의도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재능이 없었다. 나는 발화의 결과에 대해서만 신경을 쓰고 싶었다. 내가 타인의 속내와 행간의 숨은 의미를 해석하려고 노력해봤자 어떻게든 꼬아서 말하는 사람들의 진의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나는 타인의 생각을 맞추기 위해 소모되는 에너지가 아까웠다. 매일을 퀴즈쇼의 참가자처럼 살고 싶진 않았다. 그것도 계속해서 오답을 내는 참가자처럼은.


안쓰러웠던 건 이처럼 단순하기 짝이 없는 나에게서까지 어떻게든 속내를 파악하려고 애쓰던 그의 모습이었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하였는데 왜 그 말을 믿지 못하고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홍시 맛이 난다고 한 것뿐인데 그는 내가 왜 곶감이 아니라 홍시 맛이 난다고 한 것인지, 어떤 의도로 홍시 맛이 난다고 한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파헤치고 연구했다. 나보다 지능이 높아서 내가 모르는 나의 행간의 의미라던지 비언어적인 시그널들이 보이는 것일까. 아무것도 없이 계속해서 뭔가를 찾아내며 땅을 파는 모습을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내가 아무런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그 말조차 믿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기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