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가 조금이라도 섞여 있는 공동체 생활은 언제나 뒷담화를 원동력으로 발전해나간다. 어떠한 조직이든 뒷담화의 대상이 되는 공동의 적이 존재할 경우, 나머지 구성원끼리의 결속력은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기 마련이다. 제3자에 대한 크고 작은 이야기의 교환이 없는 단체는 평화롭고 바람직하며 무료하고 성기다. 소속감을 느끼며 참여해왔던 모든 단체활동에서 항상 뒷담화를 목격할 수 있었다. 학교, 회사, 동아리, 동호회… 나 역시 다양한 집단에서 주기적으로 뒷담화 주체 혹은 객체가 되어가며 소속감을 키워가곤 했다. 조직과 그 구성원의 성격, 그리고 나의 철듦 정도에 따라 뒷담화의 강도와 양상이 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가끔 회사 동료와 커피 한 잔 하면서 싫은 상사의 이야기를 한껏 떠들고 나면 오후 시간을 견딜 만해 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 친구가 있었다. 어른이 되고 동호회 비스무리한 취미활동을 하면서 만난 친구였다. 처음으로 동호회라는 것에 가입한 나에게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동호회 안에서 주의해야 할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짚어주었다. 조목조목 그들의 죄목까지 달아서 말이다. 어떤 언니는 잔소리가 너무 심하니 조심해라. 저 남자애는 술을 마시면 주사가 심하니 친하게 지내지 않는 게 좋다. 뉴비로써 누가 누군지 얼굴과 이름이 잘 매칭되지 않는 상황에서 단번에 쏟아진 많은 정보들은 완전하게 소화시키긴 어려웠지만 그래도 모임의 길잡이가 될만한 좋은 충고라고 생각했다. 이유도 타당한듯싶었고 우선은 낯선 사람들이니 경계하는 것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몇 번의 모임에 참석한 후 조금 더 친해진 사람들끼리 함께하는 소모임을 하나 만들어졌다.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 그녀도 모임의 일원이었다. 소모임의 매우 초반, 보통이라면 취미라든지 가족관계라든지 하는 일이라든지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기 적합한 시점에 그녀는 본인의 인생의 깊은 이야기들을 하나둘 털어놓기 시작했다. 세상에 아무리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지만, 관대한 마음으로 보더라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 만한 인생사는 아니었다. 복잡한 가정사와 비극적인 사건들이 섞여있는, 뭐라 리액션을 하기 매우 조심스러운 이야기들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친해졌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남들에 대한 이야기도 좋아하더니 본인의 이야기도 저렇게 털어놓는구나. 그래도 나름 어떤 의미에선 한결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보따리는 날이 지나도 바닥을 보이지 않았다. 모임에 나오는 거의 모든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공유해주었기 때문이다. 분명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활동을 하는 것 같은데 어디서 그런 정보들을 얻어오는 것인지 그 능력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새로 들어온 신입회원들까지 놓치지 않고 정보를 수집하여 공유하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이야기는 단순히 그들에 대한 기본 정보나 근황을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누구랑 누가 어디서 따로 만나는 것 같더라. 누구는 어린 남자애들한테 친한 척을 하더라. 새로 들어온 걔는 눈치도 없어 보이고 맘에 들지 않는다. 나중에는 거의 품평에 가까운 말들이 터져 나왔다. 이쯤 되니 그녀와 자리를 함께하는 날이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또 누구의 욕을 들을까 마음이 답답해졌다. 나는 사실 타인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다. 그녀가 말한 뒷담화의 대상 중 대부분은 평소에 좋고 싫고에 대한 판단이 어려울 정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물론 나도 가끔 심기를 불편하게 하거나, 나와 정말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될 때면 그들에 대한 험담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 나에게 의미가 없는 타인들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일일이 관심을 갖고 정보를 수집하여 호불호를 판단하기엔 나의 에너지가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군지도 잘 모르는 신입 회원에 대한 추측에 기반한 뒷담화라던지, 딱히 알고 싶지 않은 누군가의 사생활이 내 귓속으로 끊임없이 들어오는 그 환경 자체가 나에게는 일종의 폭력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그 작은 소모임을 나올 결단을 하지는 못했다. 나머지 인원에 대한 애정과 뒷담화가 잠시 멎은 시간에 주고받는 취미와 관련된 건설적인 이야기들이 나를 즐겁게 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남들의 뒷담화를 듣고 있던 나도 공범일 수 있겠지만 적당히 대꾸만 하고 험담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의 기준으로 삼고 그 관계를 유지해왔다. 죄 많은 사람은 혀가 길다더니 변명이 구차하긴 하지만, 간만에 자의로 참여하는 취미 모임을 잃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소모임 술자리가 한창이던 날 나머지 친구들이 사정이 생겨 일찍 집에 들어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자리를 파할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어찌어찌하다보니 그녀와 나 둘만이 남게 되었다. 적당히 이야기를 들어주다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술잔을 비우던 그 때, 역시나 그녀는 남 이야기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 대상이 평소와 달랐다. 좀 전까지 함께 있던, 같이 술잔을 부딪치던 또 다른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둘 꺼내기 시작한 것이다. 영리하게도 그녀는 그들에 대한 직접적인 욕 대신 걱정을 털어놓았다. 우선 오래 만난 애인이 있던 A에 대한 걱정이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엔 A의 애인이 결혼 생각이 없어 보인다며 A가 상처받을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A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자연스럽게 B가 소비성향이 과해 대출을 잔뜩 받았다는 이야기로 넘어갔다. 너무나 매끄러운 전개에 하마터면 이것이 뒷담화라는 것을 까먹을 뻔할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신혼인 C가 섹스리스라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가 그녀의 나오는 순간 나는 동호회를 탈퇴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자리를 서둘러 마무리 하려고 하자 그녀는 나에게 항상 벽을 치고 있는 것 같다며 나도 이제 모임의 주축 멤버이니 나의 이야기를 좀 더 털어놓으라며 재촉했다. 용궁으로 가자는 별주부의 꼬임에 빠지지 않기 위해 나는 토끼처럼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우리 모두 성자는 아니다. 살면서 남에 대한 이야기나 험담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나는 뒷담화에도 선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일종의 의리라고 해야 할까? 누구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나에게 유형 혹은 무형의 피해를 주는 사람들. 이런 이들에 대한 욕까지 제한하는 건 너무하지 않는가. 완벽한 인간은 아님을 인정한 대가로 그 정도 면죄부는 부여받을 수 있는 것으로 하자. 하지만 나는 의리 없는 뒷담화가 싫다. 신나게 뒷담화를 한 사람과 다음날 하하 호호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나는 나의 뒷담화의 대상에게 일관적으로 적대적이고 싶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말의 존엄성을 지키고 싶다. 그리고 나는 걱정의 탈을 쓴 뒷담화가 싫다. 뒷담화는 뒷담화일 뿐이다. 그녀는 본인이 ‘아끼는’ 이들의 순진한 고민을 관심과 걱정으로 포장한 뒷담화의 재료로 이용했다.
나는 그날 이후 바쁘다는 핑계로 소모임 단톡방을 나왔다. 그 모임의 누구에게도 내가 떠나는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 날 나가게 한 장본인인 그녀에게는 물론, A, B, C에게도 말하기 어려웠다. 비겁하게도 그녀가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것이 불편해 모임을 떠난다는 말을 할 용기가 차마 나지 않았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녀에게 나에 대한 몇몇 정보를 쥐여주고야 말았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시끌벅적한 술자리 속에서 몇몇 시답잖은 말들이 입 밖으로 뱉어지곤 했다. 그러한 중요하지 않은 나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부풀려지고 더해져 동호회 사람들 사이를 떠돌아다니는 상상을 하곤 한다. 누군가는 신나게, 누군가는 반쯤 꺼림직하게 그 뒷담화를 즐길 것이다. 그 뒤로 그 취미는 혼자서 즐기고 있다. 예전보다 재미는 덜하고 쓸쓸하긴 하지만, 더 이상 뒷담화가 귀에 꽂히는 일은 없으니 한결 머리가 가볍다. 여기까지 쓴 뒤에 내가 쓰고 있는 일련의 글들이야말로 궁극의 뒷담화라는 걸 깨달았다. 앞에서 말 못 하고 구질구질 인터넷에 올리는 뒷담화라니, 사실 가장 비겁하고 뒤끝 있는 종류의 뒷담화인 것이 아닌가. 이참에 앞서 말한 뒷담화에 대한 면죄부를 뻔뻔하게 써먹어보면서 황급히 글을 마무리 지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