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선 못한 말들이라는 시리즈의 글을 적으면서 얼마나 나 자신이 졸렬하고 속 좁은 사람인지 절실하게 느껴졌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십 년이 넘는 지난 일들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아직까지 마음에 담아놓는 것도 모자라, 그걸 하나하나 되새기며 글로 쓰다니. 게다가 한 편도 아닌 열 편 남짓을 말이다. 세상에 얼마나 깊고 고심하여 한 자 한 자 눌러쓴 글들이 많을 텐데 나는 나의 삐짐을 글로 썼다. 종이와 펜 없이 인터넷에 썼으니 나무에게 미안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어쨌든 나는 이 정도인 사람인 것이다. 부끄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뭐 세상엔 나 같은 꽁한 사람들도 꽤 많지 않을까?
그런데 더 꼴불견인 것은 아직도 다 못한 말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글로 쓰기에는 소소하지만 그래도 잊히지 않는 작은 일들이 아직도 생각난다. 에필로그를 빌려 마지막 하소연을 하고자 한다. 부디 이 글을 마지막으로 지난 일들은 좀 털어버리고 대범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우리라고 묶지 말아 주길
이 건 공감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대화 중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까지 ‘우리’라고 묶는 사람들이 꽤 많다. ‘우린 그런 거 못해.’ ‘우린 그거 싫어’ 라는 식이다. 가끔은 맞는 경우가 있어 할 말이 없을 때도 있는데 그 경우는 더욱 기분이 나쁘다. 최근에는 ‘우리는 저런데 못살아’ 라는 말을 들었다. 뭐 몇십억이 훌쩍 넘는 아파트를 보면서 나눈 이야기 었기에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싫다. 로또가 되면 살 수 있을 수도 있지! 세 번 정도 1등에 당첨되면 무리 없이 살 수 있을 테니 또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나의 동의 없이 나의 상황을 독단적으로 판단하는 것 같아 들을 때마다 영 기분이 좋지 않다.
날 자꾸 만지지 말아 줘
만나면 자꾸 내 얼굴과 옷을 쓰다듬는 언니가 있었다. 특히 술을 마시면 더욱 심해지곤 했는데, 방금 전까지 기름진 피자를 집어먹던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두드리곤 했다. 이상한 종류의 친근감의 표현이었던 것 같다. 정이 많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싫었다. 내 등에 보이지 않는 기름 자국이 쌓여가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사는 동네가 달라져 요새는 거의 보지 못한다. 코로나 전에 멀어진 것이 더욱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관심은 적당히 가져주면 안되니?
나의 업무에 대해 너무나 신경을 쓰는 사람이 있다. 우리 회사는 문서 공유 시스템을 활용해 일을 하기 때문에, 내가 의도적으로 문서 잠금을 하지 않는 이상 내 업무 현황과 결과를 다른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다. 우리 팀 한 동료는 매일매일 내가 한 일을 확인한다. 나의 상사도 아니고 업무가 겹치지도 않지만 내 업무보고서를 확인하는 것이 취미인 것 같다. 보고 나서 대부분 칭찬을 해주긴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딱히 더 나을 건 없다. 그저 나에게 관심을 조금 덜 가져주면 좋겠다.
너도 돈 좀 써줘
친구들 중 한 명은 유난히 돈을 쓰지 않는다. 같이 밥을 먹으면 당연히 내가 내길 기대하고 미적미적 가방을 정리한다. 슬픈 것은 이미 그녀는 결혼을 하고 아이도 있어 축의금과 임신 축하선물 등으로 그녀에게 쓴 돈이 꽤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넌지시 이야기하며 내 지갑을 열게 만든다. 이것만 빼면 참 좋은 친구라 그냥 내가 평소엔 좀 더 부담하곤 했다. 그런데 살짝 화가 난 일이 있었으니 그녀가 얼마 전에 새 집을 샀다는 것이다. 집을 사면서 샤넬 가방도 하나 장만했다고 자랑을 했다. 이사와 샤넬의 상관관계는 모르겠지만 살짝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집들이에는 두루마리 휴지만 사 갈 예정이다.
니 이야기는 적당히
지인 중 한 명은 만나면 본인의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한다. 게다가 전혀 궁금하지 않은 남편의 친구의 지인 이야기까지 술술 늘어놓는다. 내가 그 사람들을 살면서 한 번이라도 볼 일이 있을까 싶다. 게다가 굉장한 만연체를 구사하는지라 한 에피소드에 최소 30분은 소요된다. 그 이야기들을 듣고 나면 몇 시간은 훌쩍 지나있다. 그제야 내 안부를 묻지만 나는 지쳐서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다.
모든 걸 대결로 만들지 말아 줘
한 지인에게 나의 근황을 이야기하면 그것이 뭐든지 간에 대결이 되어버린다. 얼마 전에는 뭐하냐고 연락이 와서 미용실에서 새치염색 중이라고 하니 갑자기 대결이 시작되었다. 너 흰머리 많아? 몇 갠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지?) 100개 넘어? 내가 훨씬 많을 걸? 난 100개는 돼. 카톡으로 그녀의 흰머리 사진이 쏟아진다. 나는 그저 미용실에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게다가 새치 따위로 그를 이기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뭐든지 나보다 많이, 잘, 빠르게, 일찍 하고 싶어 하는 지인이었지만 흰머리까지 이기고 싶어 할 줄은 몰랐다.
휴, 이제야 내 마음속에 묵은 꽁함을 다 털어놓은 것 같다. 겨우 요딴 걸 화라고 쌓아두고 있었다니 내 인생의 얄팍함을 드러내는 느낌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할 때 나는 옷에 기름을 묻히는 친구 때문에 꽁해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냥 세상에는 이런 것으로도 쉽게 화가 나는 사람도 있구나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혹은 화가 나도 겉으론 말도 못 하고 이렇게 뒤에서 분노를 삭이는 사람도 있구나라고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잡스러운 주제라도 어쨌든 한 시리즈를 완성했음에 뿌듯한 마음이다. 어디선가 나만큼 예민한 누군가가 나도 저런 적이 있었는데라고 생각해주었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